버려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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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것들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1.08.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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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기도와 함께 그 날 해야 할 일과 일의 순서를 머릿속에 생각하게 된다. 직장인과 학생들은 출근과 등교를 하고 주어진 일과 공부를 할 텐데, 일주일에 8시간의 일을 하고, 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난, 아침식탁을 대충 소홀하게 차리는 것으로 바로, 기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 내게 주어진 일 중에 밖의 일은 그런대로 잘 하는 것에 비해, 비중이 큰 주부의 역할과 의무는 너무 어려워하고 제대로 못한다.
주부의 일은 무척 많다. 계절에 맞는 옷 정리, 빨래, 집안 청소, 다림질 또 가장 중요한 가족의 먹을거리를 챙겨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살 때는 가족의 체온이 남겨진 침구를 정리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것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재미있어 하며 즐겼다. 그런데 지금 남편과 둘이 살면서 음식 만들기를 비롯하여 주부가 해야 하는 일들을 대충하면서 어떤 날은 주부의 일을 하나도 하지 않는 날도 있다. 일종의 직무유기랄까?
이렇게 게으름과 타협하며 안주하던 내게, 주부의 일을 정말 못하고 안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며칠 전, 선배언니네 이사한 집을 가게 되었다. 푸른 식물이 집안분위기를 생기 있게 이끌어 주었고, 방과 거실 주방 등의 가구 배치 등 집안 곳곳이 잘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가족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앙징스런 작은 사진이 배치되어 있는 방에서는 추억이 흠씬 묻어났다. 그 속에서 그 들 가족구성원들이 깔깔거리는 행복의 합창과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추억의 방 옆은 기도 방이다. 성스러움이 넘치는 그 곳에 들어서니 마음의 정화와 모든 걸 다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믿음이 부족하지만 기도가 절로 하고 싶어졌다. 그 밖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사랑과 안락함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난 갑자기 남편에 대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정리정돈이 된 집안 분위기 속에 평온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아이들처럼 집안을 늘어놓고 잘 치우지도 않았으며 남편의 잔소리에 화를 내기 일쑤였으니...또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랑의 양념까지 넣어 잘 만들어 줘야 하는데, 음식은 한 끼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고, 때우는 날들을 보낸 것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족한 나의 안목도 탓을 하였다.
특히 직장을 다닐 때는 그런 것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았다. 하루의 삶, 그리고 나 자신의 일에 대한 충실함 같은 것에 치중을 두 던 것이 차츰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들은 집안을 잘 꾸미고 살림을 잘 하는 주부였다.
난 그 집안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아냈다. 추억, 사랑, 믿음과 평화 그리고 행복 등 긍정적인 씨앗들이다. 그 씨앗들을 한 손으로 움켜쥐어 다른 손에 받아 보았다. 그런데 너무 신비로운 것은 내가 잡은 씨앗의 빈자리가 금방 채워짐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꿈이 있는 씨앗을 나누어 준 선배언니가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온 난 그 씨앗들을 내 집 곳곳에 심기 위해 나섰다. 먼저 밭을 확보하기 위해 정리정돈과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되새기며 좀 더 단조롭게 살아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다 보니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쌓아놓고 살아가는데 먼저 그런 것들을 선별하여 버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방 세 칸 중에 가장 정리정돈이 되지 않았던 방의 살림살이를 들어내 보니 엄청나게 많았다. 그 방만 치우는데 이틀이 걸렸으니 난 지금껏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살림선수라면 몇 시간이면 다 했을 것이다.
늘 집안을 기쁨과 평화의 씨앗을 가꾸려면, 먼저 쓸고 닦고 청소를 잘 해야 될 것 같다. 앞으로 살림의 시간을 우선적으로 배정할 것을 다짐해본다. 그리고 보여 지는 것이 아닌 내 마음과 가슴도 정리정돈을 해야겠다. 내 탓을 네 탓으로 돌렸던 것, 미움과 원망 게으름, 집착, 욕심 등 부정적인 씨앗을 버려야겠다. 그리고 익숙함이 좋다는 등 이런 저런 핑계를 되며 내 의무와 자신의 계발을 소홀히 하는 것들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또 나도 선배언니처럼 남에게 뭔가의 씨앗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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