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금돼지와 최치원 전라도 순창 금돝이굴
icon 삼거리
icon 2004-09-09 20:45:45  |   icon 조회: 1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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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단산 금돼지와 최치원



아득한 옛날이다. 호주(湖州)라는 고을에 검단산이 있었고 이 산에는 금빛을 한 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금돼지는 몇천년을 묵은 것이어서 온갖 조화를 다 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돼지가 고을 원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내려와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온 고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고을 원의 부인을 잡아가는 일이었다.

이 호주 고을에 새로운 원이 부임하기만 하면 금돼지는 사람으로 변하여 읍내에 내려와 어떤 술책을 써서라도 원의 부인을 납치해 가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원은 온 고을안에 방을 써부팅고 현상금을 내걸었으나 조화가 무궁한 금돼지의 행방을 알아 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소문은 호주고을은 물론 머리 서울까지 퍼져 사람들은 호주고을 원으로 가기를 꺼려하였고 혹시 임명을 받아도 병이나 집아느이 일을 핑계하면서 도무지 가려고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호주고을을 폐읍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을 원을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도 없는지라 무척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데 마친 그때 아주 담력이세고 힘께나 쓰는 장수 한 사람이 호주 고을 원을 자청하게 되었다.

이 신관사또는 호주고을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고나속들을 불러놓고 금돼지의 행패에 대하여 물어 보았지만 어느 누구한 사람 속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원은 잠시동안 이궁리 저궁리를 하다가 관속들을 향하여 "듣거라,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가서 오늘 해지기 전까지 명주실 오천발만 구해 가지고 오너라"하고 명령을 내렸다. 관속들은 도무지 영문을 몰라 궁금하였지만 신관사또의 명의 지엄하므로 그날 저녁 때까지 명주실을 구해왔다.

그날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원을 명주실을 가지고 내실로 들어가 실 한끝을 자기 아내의 치마주름 끝에 단단히 매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의 곁에서 자는 체 눈을 감고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한밤 자정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옆에 누워서 곤히 자던 아내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려 살펴보고서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원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옆에 끼고 있던 명주실을 슬슬 풀어 주었다. 명주실은 계속하여 풀려 나갔다. 오천발이 다 풀리자 실은 더 당겨지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날이 밝자 원은 그 명주실을 따라 집을 나섰다. 그 실은 검단산 깊은 골짜기로 자꾸만 뻗어 나갔다. 한참 따라가니 명주실은 어느 작은 굴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원체 겁이 없고 담력이 큰 원인지라 컴컴한 굴 속을 조심조심 걸어갔다. 얼마를 굴속으로 들어가니 그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원은 몸을 꾸부리고 살금살금 더 들어가니 촛불이 보였고 불 아래 수십명의 여인들이 수심이 가득한 채 앉아 있고 그 중에 자신의 아내도 보였다.

원은 너무나도 반가워서 "여보"하고 부르면서 아내에게 뛰어갔다. 원을 본 아내는 깜짝놀라면서 "당신이 이곳에 웬일이십니까? 만약 금돼지에게 발각되면 큰 일이나 어서 돌아가세요"하였다. 그러나 굴 속에 들어온 사람이 신관사또라는 것을 알자 먼저 잡혀왔던 여인들이 구하여 달라고 애원하는지라 원은 궁리를 한참 하다가 "자. 여러분 이렇게 하십시다. 오늘 금돼지가 들어오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알아 보십시오.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는 당신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하고 단단히 다짐을 하고 있을 때 굴 입구쪽에서 금돼지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은 즉시 몸을 피하여 숨고 여인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돌아오는 금돼지를 맞아 들였다. 금돼지는 만족한 듯 코를 벌름거리면서 원의 아내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여인들은 시녀처럼 금돼지의 허리며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등도 두드리자 금돼지는 흡족하여 눈을 사르르 감았다.

그때 한 여인이 금 돼지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당신도 무서운 것이 있습니까?" 금돼지는 그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물어 본 여인을 노려 보면서 "아니 갑자기 내가 무서워 하는 것은 왜 물어 보느냐"하고 벌컥 성을 내었다. 그러나 여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이제 우리는 당신을 평생토록 모셔야 할터인데 혹시 모르고 당신이 싫어하고 무서워 하는 것이 있다면 멀리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물어본 것인지 별 뜻이 없으니 노여워 하지 말아요." 하자 금돼지는 껄껄 웃으며 "아. 고맙소, 나야 세상에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소마는 다만 한가지 사슴가죽만 보면 무섭단 말이요"했다.

"아이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까짓 사슴가죽이 무엇이 무섭습니까?" 여인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자 금돼지는 "그런 소리 하지마라. 나는 사슴가죽만 보면 사지가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며 꼼작할 수가 없다"하면서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옳지. 저놈이 사슴가죽을 무서워 하는구나" 원은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사슴가죽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허리끈에 차고 다니는 고을원 직인주머니였다. 정신을 차려 자세히 살펴보니 천만다행으로 그것은 사슴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원은 인장주머니를 들고 뛰어 나가면서 "이놈아, 네가 무서워 하는 사슴가죽 여기 있다"라고 소리쳤다.

금돼지는 사슴가죽을 보자 정말로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하여 금돼지를 처치하고 자기의 아내와 여인들을 구해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수개월이 지나자 원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어다. 금돼지의 새끼를 밴 아내는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원의 간곡한 위안과 만류로 그럭저럭 만삭이 돼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신라 때 유명한 문장가요,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 여동골 마을 뒷산인 높이 767m의 검단산에 얽힌 전설이다. 이 산은 백제때 검단(儉丹)이란 중이 살았으므로 검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고운암(孤雲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최치원이 공부를 하던 곳이었다고도 한다. 이 산줄기 중에 신선봉(神仙峰)이 있다. 즉 대원리 높은 지미 마을 뒷산으로 청원군과 보은구, 그리고 괴산군 3개군의 경계에 있는 산봉우리다. 이 봉에 검단과 최치원이 신선으로 변하여 주자 내려와 놀다 갔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다. 이 마을에 젊은 나무꾼 한사람이 도끼를 가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나무를 한참 하다 보니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두는지 나무꾼은 도끼를 옆에 두고 정신없이 두 노인의 바둑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가 서산 마루에 걸치자 두 노인의 바둑은 끝났다. 그리고 두 노인은 서로 손을 잡고 하늘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정신을 차리고 옆에 놓아 두었던 도끼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갈 양 도끼를 찾아 보았더니 어느새 도끼자루가 썩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 왔으나 아내는 온데 간데 없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하도 기가막혀 따져 보았더니 자신의 아내는 이미 50년전에 죽고 손자 내외가 아이들과 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무하러 가서 두 노인의 바둑구경을 하는 사이에 100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더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는 후부터 바둑을 둔 두 노인은 신선이 된 검단과 최치원이고 신선이 놀다 간 봉우리라 하여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은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인산 할아버지께서 최치원 선생님 언급한 내용



1. 그래서 중국의 되놈들은 우리 동방 오랑캐를 미워서 동방의 위대한 인물을 전부 깎아 내립니다. 그런 일이 많이 있어요. 대련(大連) 소련(少連)도 그러겠지만 최고운(崔孤雲:崔致源) 선생님도 거기에 가서 절도사(節度使)라고, 일개의 절도사 한 사람의 부하생활 한 적이 있어요. 그건 모든 문헌에 입증되는 거. 이러니 우리 나라의 동방의 성자(聖者) 최고운도 되놈들이 저희 부하로 이용한다.

그러면 어찌 되느냐? ......(신약본초 97~98쪽)



2. 우리 나라에 신선이 있는데, 신인 신선이 있는데 그 양반이 동해 양반이라, 이런데. 그 양반을 만나본 사람 이름이 안기생(安期生)이라. 안기생은 동해상의 신선인데 그 양반이 신선을 만났다고 해서 동해 신선은 안기생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안기생 뒤에 적송자(赤松子), 다 그 뒤의 같은 양반들이신데 그러나 이조에 양봉래(楊蓬萊)두 있어요, 이런데. 그리고 신라에 고운(孤雲) 선생님두 신선이라고 말씀하시지. 그러면 이땅에 신산(神山)이 있음으로해서 신선(神仙)이 있다. (신약본초 124쪽)



3. 단군할아버지가 전해 준 걸 고운(孤雲) 선생님이 풀어 놓은 윷밭이 있어요. 요새 보통 놀고 있는 윷밭이오. 건 우리 나라 고유의 윷인데. 그걸 고운 선생님은 단군할아버지 《천부경》(天符經) 해석에 그 윷밭을 그려 준 일이 있어요. 그런데 윷밭은 아래 위에 북극 남극이 있고 동서가 있는데. 그러면 일적십거(一積十鉅)다. (신약본초 234쪽)



4. 그래서 《천부경》에 단군할아버지가 처음엔 누구냐? 환인(桓因)이었는데 이 양반이 히말라야에서 곤륜산에서 이렇게 떨어져 오는 산맥이 그 대륙을 거쳐 가지고 백두산에 왔는데. 그래서 백두산에 올라가 보시오. 만주 들이 얼마나 장한가. 앞에는 전부 산이고 뒤에는 전부 들이오. 송화강을 봐도 흑룡강까지 보입니다, 이런데. 그러면 백두산의 웅거(雄據), 대륙의 웅거하는 백두산, 백두산은 거기에 환인이 오셨는데 이 양반은 천상에서 오신 건 사실이겠고.

그러면 히말라야 곤륜산을 거쳐서 오셨느냐? 신인(神人)들이니까 보이지 않게 댕기니 거 거쳐 와도 괜찮을 겁니다. 또 그 다음 세대는 환웅(桓雄)이데. 환웅인데 곰 '웅'(熊)자라. 그럼녀 백두산에는 임금'왕'(王)자 석 '삼'(三)자가 된, 임금 '왕'자 대호(大虎) 있어요.

그런데 흰 줄이 석 줄 되게 있거든. 그건 '왕'자 대호라고 하지만 실제 보게 되면 흰 줄이 셋이 있어요. 그럼 그건 삼이라. 그건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온 거이 천부인은 윷밭이오. 고운 선생님이 해석해 놓은 거라. 천부인은 윷밭이라. 윷밭을 그려 놓고 보게 되면 천부인이라. 그 인(印)을 셋을 가지고 오신 양반일 바로 환검(桓儉)이야.

이래서 백두산에서 전부 탄생하셨느냐? 단군은 반드시 단군 하강비(下降碑)가 있는 묘향산, 단군대가 있는데. 단군봉에 가보면 전부가, 박달나무가 참박달은 백색이오. 눈같이 희어요. 그래서 그 앞의 설령봉(雪嶺峯)을 이름이 설령이고 눈 '설'(雪)자 고개 '령'(嶺)자 설령봉, 그 다음에 옥황상단 앞에 설령암(雪嶺庵)이 있어요. 묘향산 팔경에 들어요.

그러면 박달이 눈같이 흰 박달은 지구상에 묘향산밖에 없어요. 다른 덴 그렇게 좋은 참박달이 없어요. 그러니 단군 하강비가 거기에 있고, 이런데. 거기에 지금 부처님도 모셔 놓은 건 중간에 승려들이 한거고. 선비들은 그런이가 없어요.

그래서 환검은 천부인을 셋을 가지고 왔다. 그건 뭐이냐? 윷밭을 들고 왔느니라 이거야. 그것을 천부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왜 셋이냐? 환인도 오셨고 환웅도 오셨다. 그래서 당신은 아버지, 할아버지가지 대신해 오셨다는 거야. 이래서 천부삼인이 있어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거기서 칠성봉에 올라오면 태양은 바로 그 앞에 있어요. 능라도(綾羅島)를 맑은 날엔 아주 앞에서 보이오, 이러니. 만주에 가기는 좀 어렵고 그 당시에 인구가. 아주 창조시에 만주까지 가셨느냐? 거 칠성봉에 올라가 앉으면 능라도가 눈앞에 보이는데, 천하의 명승지라.

그 능라, 대동강 능라도를 볼 적에 천하의 명승지인데. 그러면 모란봉(牡丹峯)이나 을밀대(乙密臺)나 다 볼 때 그 천하의 명승지를 만년 가도 거 도읍해요. 그런 무서운 터를 두고서 그 양반이 만주 가느냐? 만주에, 백두산에 가 만주를 보면 평양 같은 명승지는 없어요. 천하의 절경인데. 그러면 단군할아버지는 신인(神人)인데, 신인이 그런 천하의 절경을 두고 만주들에 갔겠느냐? 난 그걸 부인하지도 않지만 시인할 생각도 없어요. 꼭 옳다고도 할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단군할아버지는 아마 평양에 오셨을 거다, 짐작은 하지요.(신약본초 239~240쪽)

5. 《천부경》이란, 백두산에 대한 얘기부터 묘향산인데. 백두산은 오란[오랜]이름이 아니고 그 전엔 태백산이고 그 전엔 돝이산[돼지산]이라. 그건 상고에 인류가 귀할 적에, 토인족(土人族)이 생겨날 적에 짐승 잡아먹을 수 있는, 가장 짐승이 많은 곳이 백두산이라. 그래서 거기서 짐승을 잡아먹고 있는데, 그 사람들 별호가 돝이족이라.

그래서 그 돝이족의 별명을 따라서 백두산이 돝이산이라. 그래서 백두산에서 돝이족이 많이 쫓아댕기며 잡아먹는 짐승은 뭐이냐? 돼지라. 그래서 돼지 이름을 또 '돝'이라고 했어요. 돝이 식량이니가. 돝이족이 살던 곳이니까 백두산은 돝이산. 또 돝이족이 식량하는 짐승 이름이 돝이라고 했는데. 그러며 여기서 그 이유가 뭐이냐?

돝이라는 건 우리 나라, 억울하게 최고운(崔孤雲) 선생님이 그런 누명을 쓰고 있어요. 그건 나는 어려서 잘 알고 있어요. 저 세상에서 영물(靈物)로 왔으니까. 그걸 눈으로 보고 정신적으로 기억해 둘 수 있었는데. 그러나 내가 어려서 원래 알다 보니, 구한국 말에 이 세상에 나오고 보니 도저히 말을 해선 안되고 행동으로 옮겨도 살아남지 못해요. 왜족의 세상에 커야 되니.

그래서 내 일생은 비참하게만 살게 돼 있어요. 거 할 수 없는 거라, 이랬는데. 우리 나라, 역대의 억울한 양반들 다 알고 있지만 그 중에 고운 선생님은 더욱 억울해. 순창 금돝이굴[전북 순창군 적성면 소재 금돼지굴]이라는 거이 그렇게 억울한 누명을 가진 장본이라. 근원이 그거지요, 이런데.

그러면 돝이산일 태백산 된 것도 단군 때고 또 묘향산이 태백산 된 것도 단군 때라. 거 왜 그러느냐? 백두산에서 떨어져 가지고 우리 나라의 제일 신령한 영봉(靈峰), 묘향산인데. 서산대사(西山大師)도 묘향산을 보고 참으로 웅장하고 참으로 묘하다, 빼어났다고 역장역수(亦壯亦秀)라. 그러면 지리산을 보고 장이불수(壯而不秀)라. 웅장하긴 한데 그렇게 묘한 건 없구나.

금강산을 보고 수이부장(秀而不壯)이라. 묘한 데도 많은데 그렇게 웅장하진 않구나. 그리고 오대산을 보고 부장불수(不壯不秀)라. 웅장한 것도 못되고 묘한 것도 없구나. 금강산을 보고 수이부장이니까, 아주 묘한데 웅장한 건 없어. 묘향산을 보고 역장역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묘향산에서 탄생하신 단군은 그 탄생하실 시절에 곰의 가죽을 가지고, 묘향산에 곰이 많아요, 지금도 많아요. 곰의 가죽을 가지고 옷을 입고 계셨다 이거라. 그래서 곰하고 비슷한 양반이나 그 대단한 광채를 지니고 있는 천신(天神)이라. 그런데 그 양반이 3천년 후에, 3천여 년이오. 후에 98대 되는 회계를 따져 가지고 다시 전라도 순창 금돝이굴에 나타났는데 거 석굴(石窟)이라, 이런데.

그때에 하늘에서 서기(瑞氣)하고 황금빛이 찬란한 양반이 오는데, 이게 누구냐? 꼭 돼지 같은 사람이다 이거라. 곰의 가죽옷을 입고 왔기 때문에 그런데. 그 양반이 황금빛 찬란한 그 모습으로 내려올 적에 쳐다보는 사람이 눈이 시어서 못 보게 되니 얼핏 보는데 이상한 짐승은 짐승인데, 그게 도대체 뭐이냐? 알기 쉬운 말로 돼지 같다고 했다. 그런데 황금빛이 찬란하니까 금돝이라고 했다. 그때의 말은 돝이라는 게 돼지인데. 그래 금돝이라고 해가지고 그 후부터 금돝이굴인데.

이 양반의 신통력으로 거 고운 선생님 자당(慈堂:어머니)은 그쪽으로, 그때 봄날이라. 나물캐러 댕기는 부인들이 보았다. 같이 댕기니까. 그래서 이 양반이 그 부인 몸에 접(接)하고 그 광채는 없어진다? 그래서 그걸 신태(神胎)라고도 하고 영태(靈胎)라고도 하는데. 그 숫자가 《제왕세기》에는 굉장히 많아요. 동방에서 태어난 순임금, 강태공, 중국에도 많은 숫자. 우리 나라의 고운 선생님이 그렇게 영으로 화(化)해서 잉태된 분이라. 그래 세상에 나고 보니 그때엔 진골(眞骨)이 행세하는 때라. 거 우리[김일훈 선생은 언양 김씨]조상에 헌안(憲安)왕이라고 있어요, 헌안. 헌안 원년에 태어나신 분이라.

그래 가지고 그 양반을 금돝이굴에서 태어났다고 돼지새끼다 하는 말까지 해요. 그건 그 양반은 위대하지만 거 억울한 누명이라. 천상신(天上神)으로 화해 와도 그 당시 형편이 그리 돼 있어요. 진골이 아닌 양반이고 진골은 또 당나라 되놈이 잡아가니 안되고. 그래서 그 양반이 정체가 확실하다면 중국에서 잡아다가 중국사람 됐을 거요. 어려서 키워 가지고.

그런데 이 양반이 어려서부터 천하의 문장이라. 또 기지여신(其知如神)하고, 이랬는데. 그 양반이 당나라에서 우리를 멸시할 적에, 그 양반이 당나라를 놀라게 한 것은 아홉 살이라. 아홉 살에 그랬는데. 아 이 양반을 열두살에 당나라에서 데려간 걸, 우리 나라 학자님들은 당나라 유학이라고 했어요. 열두 살에 유학갔다. 그래 당나라에서 한 일이 많아요. 그러나 당나라에서는 오랑캐라고 해 가지고 종으로 취급해요.

그러면 그 아홉 살에 당나라를 놀라게 한 건 뭐이냐? 당나라에서, 신라같은 오랑캐 속에도 아는 사람이 혹여 있을 지 모르지 않느냐? 그래서 솜에다 계란을 싸 가지고 옥함에 넣어 보냈는데. 그걸 알아맞추라 하니까 나라에선 모르지만 고운 선생님은 어려서 보내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그래서 고운 선생님이 지어 바친 글이 그건데. 그 글은 단단함중물(團團含中物)이, 둥글고 둥근 옥함 속에 있는 물건은, 반백반황금(半白半黃金)이라, 절반은 희고 절반은 황금빛이로다. 야야지시조(夜夜知時鳥)나, 밤마다 때를 알고 있는 새나, 함정미토음(含情未吐音)아라. 소리는 내고 싶어도 정은 머금고 있어도 소리는 못 낸다. 소린 내고 싶어도 울 수가 없어. 이놈이 옥함 속에 있는 병아리라. 그 속에서 울어 낼 수 없는 처지라.

그래서 그 가련한 처지를 당신하고 비해서 같다는 거라. 그래 중국 사람들이 보고 놀랜 것이 이렇게 신통자재한 신인(神人)이 있구나. 그게 바로 최고운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이걸 처리할 수 있느냐? 중국으로 데려 오자. 그래서 신라왕이 거 진성여왕 때요. 신라왕 명령, 거 황명(皇命)이오. 명령을 내려 가??고 데려간 것이 열두 살이라. 그래서 후세의 선비들은 유학이라고 했어요, 이런데.

이 양반이 당신이 만들어 놓은 묘향산 암상(岩上)에 그 흔적이 있는데, 거 석흔(石痕)이라. 이 흔적이 있는데, 그 흔적은 당신이 한 거라 당신은 보면 알아. 그래서 그 흔적을 보니 당신이 한 거라 당신은 보면 알아. 그래서 그 흔적을 보니 그 당시에 과두법이 있는데 과두법에 의해서 과두문이라. 하후씨의 구루비도 과두법에 과두문이지만 그건 과두문하곤, 전자버(篆字法)으로 되어 있었고. 전자법하고 과두문하곤 차이가 있어요. 진상 이사(秦相李斯:진나라 재상 이사)가 쓴 건 진짜고 하후씨 구루비가 진짜인데.

그럼 요임금 당시의 과두문은 어쨌더냐? 버럭지의 형용을 숯거맹이[숯검정으로]그려 놓는 것뿐인데. 이것은 요순 때에 제대로 글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순임금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하후씨는 구루비에다가 완전 전자에 가차운 과두문을 기록해 놓았어요. 그건 세상이 다 아는 구루비니까, 이런데.

그럼 고운 선생님은 그걸 분명히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하신 거니까. 잘 알고 있는데. 그렇지만 후세에서는 전설이 잘못되어 가지고 금돝이 손이라고 봤거든. 또 순창 금돝이굴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그게 단군이 재림한 곳인데, 단군 재림에 대한 기념은 안하고 고운 선생님을 욕되게 하는 말밖엔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실을 난 어려서 전생에 신(神)세계 인간이니까. 어려서 잘 알기 때문에, 알고 있으나 그 당시에 내가 말하면 그 귀신세계는 자세히 말해 줄거요. 지금 정신이 희미하고 혼탁할 때엔 물론 대략을 기억하겠지요, 이런데.

그것을 내가 《천부경》해석을 할 적에 그걸 그대로 쓸 수 있느냐? 거기에는 말 못할 비밀이 원래 많아요. 그래서 금돝이 내용은 그게 아니다 하는 말은 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기 전까진 3천여년이라. 그 동안엔 어찌 돼 있었느냐? 그런 걸 세밀히 밝힐 수도 없고 나도 그걸 붓을 들고 쓸 순 없어요, 내 재간 가지고는. 누구도 거 표현이 안될 게요. 소설가를 시켜도 소설은 만들 망정 제대로 표현은 할 수 없어요.

이래서 고운 선생님의 98대, 단군이 재림하신 걸 나도 쓰기를 98대 손(孫)이라고 썼어요. 그게 아니고 98대에 재림하신 분이라. 그래서 그거이 《천부경》이 세상에 나타난 거라. 당신이 쓴 거니까 나타나지, 신인이 아니면 나타낼 수 없어요. 그래서 그 증거는 상고에 돝이산에서부터 시작한 증거라.

이래 가지고 내가 단군 98대 손(孫)에 최치원이라. 그건 나도 오늘 현실에 그 이상을 밝히면 너무 허망해. 그래 가지고 허황하다고 할 수도 있고. 학자들은 그 당시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 전설을 믿어요. 그럼 이조 5백년의 전설이 그렇게 허황한데 4천년 전의 전설은 허황하지 않겠어요? 이것이 난해한 문제라. 그래서 고운 선생님의 행적을 말하는 것도 난(難)해. 또 《천부경》속의 어려운 이야기는 더욱 들어가면 난해요. 해석은 도저히 안돼요.

그래서 고운 선생님 억울한, 단군 재림하신 분인데도 금돝이 아들이라 하고 있어요. 지금도 세상은 다 알고 있는 거니까. 또 묘향산에 단군대와 같이, 순창 금돝이굴이 단군대인데, 단군대라는 표현은 없고 금돝이굴이라, 이거이 우리 지금까지 살아온 겁니다, 살아온 건데.(신약본초252~257쪽)



6. 애매하게 욕먹는 거, 고운 선생님이 위대한 단군의 재림하신 분이래도 결국에 그 누명을 벗지 못하고 갔어. 내가 지금 애매히 욕먹는 거. 이 욕을 면하기 어려워요. 내내 계속해요. (신약본초 268쪽)



7. 고운 선생님도 종말은 솔처자입가야산(率妻子入伽耶山)이라고 했는데 그 증거도 분명치 않고. 그 당시의 진성여왕 때도 거 혼나는 거이 한두 번이 아니고 정배(定配)를 결국 보내기까지 하고. 그래 이 양반은 산속으로 둔갑을 하고 말았는데. 내가 그 양반을 고통 준 왕의 이름을 알아요, 아는데.

그 양반들이 우리 조상이라. 공자님도 당신 조상 욕을 안해요. 나도 인간인데 육신 가지고 인간으로 있으며 할아버지 나쁘다고 하기 참 힘들어. 그래서 할아버지 잘못을 알면서 감춰 두는 건 나도 마음이 괴로워요. 고운 선생님같은 대성자(大聖者)를 그렇게 괴롭힌다? 무슨 얘길 해도 반박이라. 간(諫)하면 전부 반박, 받아들여지는 건 시원찮은 거나 받아들이고 아주 위험한 건 받아들이지도 않고. (신약본초 270~271쪽)



8. 신무천황(神武天皇)이라고 하는 일본 역사의 인물이 있는데, 그 자가 있다는 걸 내가 책을 보는 거 아니고 정신 속으로도 있다는 건 알아요. 그런데 그건 누구냐? 이 《천부경》에 오·칠·일, 오·칠·일묘연(五七一妙衍)이라고 있는데 오·칠·일이라는 게 뭐이냐? 오칠이 삼십오(5 x 7=35), 단군 35대 손(孫)에 가서 가장 아시아의 유일한 인물이 하나 나온다. 그 신무천황이라는 자가, 그 미개족들이 창조시에 이야기한 거 돼 그러지, 참말로 훌륭한 인물이야. 그래서 아시아의 유일한 신무천황이라는 자가 나온다는 거지.

그건 그때 신무천황이 아니고 그 양반 말씀은 유일한 영걸지주(英傑之主), 영웅호걸, 영걸지주가 탄생한다. 그걸 의미한 거라. 오·칠·일이 묘연이야. '묘'라는 건 단 하나인 비밀을 말하는 거고, '연'이라는 건 단군 때까지 35대만을 이어 가지고 오다가 그런 인간이 나온다. 그래 '묘연'이라고 붙였어요. 그건 고운 선생님의 해석이라, 이런데.

그래서 그 왜족이래도 단군할아버지가 내 35대 만에 내 핏줄에는 신무천황이란 그런 영걸지주가 나오느라, 그걸 표현했으니 그걸 볼 때에 고운 선생님도 탄복한 거고 나도 어려서 그 절구(絶句)를 탄복한 거요. 우리 할아버진 그런 분이다. (신약본초 275~276쪽)



9. 공자님 학설을 전부 보게 되면 《주역》(周易)에는 계사단상(繫辭彖象)에 땅은 네모났다는 말씀하고 하늘이 돈다는 말씀하는데, 그건 확실히 사리에 어두운 말씀이고 글에 들어가선 만고의 성자(聖者)라. 글엔 만고성자(萬古聖者)되시는 분이나 사리(事理)에 고운(孤雲) 선생님 같은 분에 비하면 대단할 것도 없어요. (신약본초 296쪽)



10. 노자(老子)의 성모는 이(李)씨 부인이고. 동방에 그 다음에 성령으로 잉태한 분들 중에는 단군(檀君)이 재림(再臨)하신 최고운 선생님이 계시고, 그 양반이 재림 후에 이 신라 말에 솔처자입가야산(率妻子入伽耶山)이라고 건 《사기》(史記)에 다 있는 말인데, 가야산 산신으로 계세요. 계셔 가지고 계룡산은 신도(新都:새서울)인데, 계룡산 도읍할 적에는 그 후손 중에 성자가 탄생하고 그 후에 가야산 도읍 시절엔 그 양반 후손 중에 아주 천하에 드러나는 대성(大聖) 탄생한다 하는 거이 그 상고에 다 증거 있는 말들이고.(신약본초 892쪽)



11.고운 최치원 보충자료



(질문) 요즘 천부경(天符經)에 관심을 가지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특별한 경위가 있습니까?

(仁山) 내가 천부경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고 최고운 선생이 가장 애를 쓴 경전이 바로 천부경이지. 우리나라 선배 양반들 중 흔치않은 최고운 같은 양반이 머리 쓴 것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것뿐이야.

(질문) 그러면 고운 선생이 단군 당시의 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仁山) 눈이 있었다고 봐야지. 고운 선생은 중국에서 사신이 옥함 속에 솜으로 싸서 계란을 넣어가지고 와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 속에서 이미 병아리가 부화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맞춘 양반이지. 옥함을 가지고 온 중국사신도 몰랐던 사실이야. 그런 머리를 가지고 있는 양반이 상고를 더듬어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겠지, 없겠는가?

(질문) 당시에는 고운 선생 외에도 불교계에 높이 평가하는 원효대사나 의상조사도 계신데...

(仁山) 원효대사나 의상조사도 훌륭한데 의상조사도 고운선생의 고견(高見)에 늘 탄복했어. 그래서 의상조사가 고운선생으로부터 비문(碑文)을 얻은 사실도 있지. 또 성주산(聖住山)의 백월보광(白月寶光)같은 무서운 양반도 고운 선생을 모시고 비문을 받았어. 그런 것을 모두 미루어보건대 도가 높은 이들은 고운 선생을 상당히 존대했어.
2004-09-09 20: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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