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조) [3] -2. 북한의 통일 전략, 대남공작과 남한의 반미운동
icon 현명한소수홈피독자
icon 2004-07-23 00:33:09  |   icon 조회: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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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명한 소수의 홈페이지 http://www.wisemid.org 의 한국인의 성격과 행태 편에 있음. [1] 에서 -- [6] 까지 중에서 [3]에 해당하는 것임.

韓美軍事同盟과 南北韓 關係
-韓半島의 平和定着을 위한 UN의 役割- ----[3]

한승조 고려대 명예 교수


2. 북한의 통일 전략, 대남공작과 남한의 반미운동

1) 한국의 젊은이 들은 왜 주한미군철수를 주장 하는가

근래에 와서 한국의 친북 용공세력 안에는 6.15합의를 관철할 수가 있는 정치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反美運動을 시대의 至上命令으로 떠밭으려는 켐패인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남조선혁명을 단행하려는 북한당국으로서야 그런 명령이나 지시는 당연히 나릴 것이나 남한의 젊은 세대가 그런 지시를 받들고 그런 운동에 앞장서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한의 운동권 및 젊은 세대가 자신도 모르게 친북용공 반미세력의 대중투쟁에 참가하게 되는 의 그 원인을 나는 다음과 같이 분석될 수가 있다고 본다. ①젊은 세대 특유의 정체성위기(identity crisis)가 한국에서는 좌경적인 극단주의로 표출되고 있다. 젊은 시절은 누구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 고민을 겪게 되는데 그 고민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혁명적인 사상과 구호에 자신을 매몰시키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과격주의 행태의 전신분석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설명하려는 노력인바 이런 이란론적인 학술 이론은 여기서 생략하고자 한다.

②청소년기의 정체성위기나 정서불안으로 인하여 과격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은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이른바 386세대가 한국의 전치권력의 핵심부에서 국가와 사회의 변혁운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치권력까지 장악하게 되었는가? 더구나 이들이 反美主義 정서를 퍼뜨리며 주한미군의 철수를 끈덕지게 주장하게 되는 원인을 한국의 사회분위기와 젊은 세대의 정신문화와 결부시켜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현재 이른바 386세대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이들의 성장배경과 정치성향에 대한 고찰이 없을 수가 없다. 이들 세대는 1960년대에 테여 났으며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기성세대와 그 문화에 반발하고 저항하며 자기 나름의 청년 문화를 갖는다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을 비릇한 선진민주국가에 거의 공통된 현상이며 또 성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들 세대는 부모세대와는 달리 물질적인 풍요와 전쟁이 없는 평화의 환경 속에 부모와 사회의 비교적 따듯한 보호와 돌봄을 받는 가운데 비교적 순탄하게 생활환경 속에서 자라났다는 점에서 비교적 같은 성향을 가졌다고도 말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 세대는 어떤 면에서 선진민주국가의 젊은 세대와 다른 면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386세대가 성장하고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사회환경이 다른 나라의 젊은 세대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사회변화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과 사회적 심리적 강등의 격렬성에서 찾아지는 것 같다. 그때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에서 한국의 산업이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편 북한공산주의의 대남 공작에 의하여 군부의 지원을 받는 박정권과 전두환 졍권의 고도성장정책에 대한 저항 투쟁이 강력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나라의 성장발전이 너무 빠르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이 국민적인 긍지와 만족감의 원인이 되고 그것이 정치적 사회적인 결집력을 더 한층 강화하는 원인이 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것이 도리어 격렬한 저항투쟁의 불씨가 된다는 것은 한국인의 파토스적인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면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나 아닌 남이 좋은 일을 잘 하고 있으며 구가를 위하여 큰 공을 세우는 것을 가만이 두고 보지 못하는 한국인 특유의 邪心이나 私感,, 그리고 삐뚜러진 黨派心理. 이런 정신상태가 당대의 시대적인 환경 속에서 민주화투쟁이라는 명분으로 표출하려는 저항세력은 알게 모르게 북한공산주의의 의식화교육과 혁명투쟁의 수법을 몸에 익히며 성장해 왔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이 때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을 군부권위주의 정권이라고 폄하되어 있었는데 반독제 민주화투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반정부, 반체제투쟁을 계속했던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 북한의 대남공작에 의하여 알게 모르게 이용당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북측을 위하여 활동하고 또 그들 편에서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반체제활동을 북한과는 전혀 무관한 自生的 共産主義者들이라고 자처하거나 또 그리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젊은 활동가들이 결과적으로 한결같이 반미친북의 사고방법, 또는 이데올로기와 정서를 가지고 행동해왔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들 386세대의 반정부 내지 반체제 활동가들은 이념적으로 다양했다. 자유주의자, 복지활동 지망자들, 좌파적인 민족주의자, 기독교사회주의자, 불교적 사회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김일성의 主體思想派, 등등 다양했음에도 군부권위주의 내지 반공적인 보수주의자들에 對抗하여 싸운 연대의식과 戰友愛는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들이 2000년대에 와서 대부분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出世하고 成功할 수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가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대학시절에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몰두하고 있었을 당시 이들은 학생들이나 노동자, 농민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선전하고, 선동하며 조직화하는 능력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선거활동에도 유능할 뿐만 아니라 부정선거의 術數도 고도화된 솜씨를 익힐 수가 잇었던 것 같다. 학생 인구의 1%도 될까 말까하는 좌경학생이 대학의 학생회장과 학생회 간부자리를 모조라 장악하기 위해서는 부정선거의 기법을 몰라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386세대의 核心幹部들은 또 젊어서부터 高度의 管理技術을 몸에 익혔던 것 같다. 그들은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에서 학우들의 특성과 능력을 파악하여 學友들간의 연대의식은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長技에 따라서 그 방면으로 나가도록 격려하고 가능한 지원도 하였던 것 같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각 분야로 진출하여 각자의 전문성을 개발해 나갔지만 대학의 지하 써클에서 터득하고 익혔던 그들의 좌파적인 세계관, 사회 및 역사의식, 반미친북적인 정서는 상호협력과 합심 단결을 쉽게 하였으며 사회적인 요직을 맡아서 활동하는데 촉매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이들이 한국의 정치, 행정, 정당, 노동, 법조계, 법원, 언론, TV 및 라듸오 방송, ,영화, 연극, 문화예술,등 각 분야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이 바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같은 좌파 정권의 출범을 가능케 했던 人的인 資源이었으며 그런 자칭 進步的 세력의 정치사회 체제를 어느 정도 지탱해 나가게 하는 요인이 될 수가 있었다.

요컨대 이른바 386세대라고 하는 오늘의 한국정치를 주도하는 정치세력은 박정희 및 전두환등 이른바 군부권위주의정권에 저항하여 俗稱 反獨裁 民主化투쟁에 참가하여 구속되고 퇴학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경험을 축적한 運動圈출신의 배경을 가진 작은 혁명투사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소속의 운동조직에서 활동했던 그들이 조직해 놓은 지하당 조직의 소속하여 투쟁을 계속해 왔던 容共, 親北, 反美의 이데올로기의 소유자들이며 이들이 북한공산주의의 反美투쟁에 호응하여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해온 것은 어김이 없는 사실이라고 하겠다.


2) 북한의 통일 전략과 대남공작

북한의 한반도 통일 전략은 북한공산주의가 추구해왔던 南朝鮮革命, 곧 反帝 反파쇼 人民民主主義 革命이라는 말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 反帝란 미국의 제국주의, 곧 反美를 뜻하며 이의 다른 이름이 民族解放(national liberation)이다. 반파쇼는 反獨裁의 다른 이름으로 민족해방 (반독재)인민민주주의혁명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70-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대열 안에는 이른바 NL파, 북한공산주의를 직접 추종하는 主體思想派를 NL파라고 부르며 반면에 자생적 공산주의파를 PD(인민민주주의)파라하여 일명 트로츠키파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북한의 통일전략은 보수 우파들의 통일방안과는 달리 놀라운 不變性과 一貫性을 유지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현재 6.15 합의 또는 선언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聯邦制 統一이란 말도 그 뿌리를 찾아보면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에서 제시된 북조선의 民主基地론에 뿌리에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1946년 8월28일 부타 30일까지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에서 김일성은 ‘조산노동당의 중심임무는 하루 빨리 조선의 민주주의적 완전독립을 달성하는데 있으며 이를 위해 첫째 북조선의 민주주의 根據地를 더 한층 강화하고, 둘쩨 남조선의 민주적 정당, 사회단체들을 도움으로써 우리의 민주적과제를 전국적으로 실행하는데 있다,....우리는 남조선 까지 완전 해방시킴으로써 전체 조선의 완전 독립이 달성되는 것이다’ 라고..말했다.

이것이 이른바 북조선의 ‘民主基地論’ 인데 1960년 8월 14일의 남북 연방제 통일방안이 제창도 된 것도 이러한 사상에 기초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1980년 10월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북한의 통일방안이라고 할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구상을 더 명백히 했다. 또 말하기를 한국에서 민주죽인 정권이 수립되어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을 패지 함으로써 모든 정당과 단체의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될 수가 있다. 그런 전재 하에서만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의 남북의 연방제가 실현될 수 있다.

, 2,000년에 들어와서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아울러 6.15선언을 실천할 수가 있는 정치여건 및 환경의 조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남북통일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은 1964년에 내세워진 것이 이른바 통일의 3대 혁명론이었다. 1964년노동당 중앙위원회는 ‘조국통일 위업과 남조선혁명을 발전시키는 전략적 방침과 투쟁과업’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① 북조선의 혁명역량, ② 남조선에서의 혁명역량, ③국제적인 혁명역량의 강화였다.

,,,남조선에서의 대남공작의 주요목표가 남조선혁명을 지도할 지하당의 구축과 친북용공 반미세력의 양성에 집중되었다. 국제적인 혁명역량이란 일본이나 미국에서서 반 부시선전과 선동과 북한비호세력의 양성인데 일본에서는 여기서도 지난 30-40년간의 북측의 공작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드린 것으로 평가되어야만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의 주간지 Time의 표지에는 김정일이 호쾨하게 웃는 그림이 나와 있으면서 지금 거의 다 죽어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김정일이 무엇이 좋아서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일까하는 멘트가 붙어 있었다. 김정일이 오늘의 위기상황에서도 좋아서 죽을 지경인 것은 ① 북조선의 혁명역량이 자기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으며, ② 남조선의 혁명역량은 남한을 아무 때나 접수할 수 있을 만큼 강화되어 있으며 ③국제적인 혁명역량도 미국의 Bush정권을 굴복시킬 수가 있을 만큼 키워내는데 성공했다는 성취감 내지 만족감 때문일 것 같다.

현제 북측의 대남공작은 3가지 핵심어(keywords)로 요약되어 있다. ① 자주는 반미 자주화를 뜻하며, ②민주는 공산주의와의 연합(용공)을 뜻하며 ③통일은 공산주의의 완전승리와 그를 향하는 통일전선 운동의 성공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설정이나 발상 자체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는 하나님 만이 아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안전 할 것 같다.
2004-07-23 00: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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