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철도참전 전사자 287위 제5회 합동추모제
icon 자유시민
icon 2004-07-19 04:19:13  |   icon 조회: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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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승조 교수 홈페이지 http://www.wisemid.org 에 있는 것임


625 철도참전 전사자 287위 제5회 합동추모제

일 시: 2004년 7월 12일 11시
장 소: 용산 구민회관 대강당
주 최: 철도 참전 유공자회
후 원: 국가보훈처, 철도청, 재향군인회


사 단 법 인 철 도 참 전 유 공 자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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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순
□ 개 식
□ 국 민 의 례
□ 경 과 보 고
□ 추 념 사 --------- 류기남 (집행위원장)
□ 추 모 사 -----------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 김세호(철도청장)
---------- 이상훈(재향군인회장)

□ 헌 화 및 분 향
□ 집 행 위 원 장 인 사

□ 국 가 안 보 강 연 --- 채명신 (前 주월 한국군 사령관)

□ 폐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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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철도참전 유공자회 (회장 류기남) 주최로 6.25 참전 철도전사자

287위 제 5 회 합동추모제가 2004년 7월 12일 서울시 용산 구민회관에서

400 여명의 유공자들과 유족들이 참석하고 엄숙하게 거행되었다.

자유시민연대 김구보 사무총장의 사회로 11 : 00 정각에 개회하였으며, 류기남 회장이 내빈들을 소개하였으며, 국민의례에 이어 철도참전유공자회 대전
지부 ( )회장이 경과보고가 있었으며 (경과보고는 아래에 있음),

이어서 류기남 회장의 추모사가 있었다. 추모사에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 류기남 회장의 추모사 전문은 아래에 있음)

< 존경하는 유족과 동지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우리는 철도참전 전사자 287위의 호국영령들의 뜻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합동추모제를 지난 2000년 7월11일부터 매년 거행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가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호국영령들의 넋을 달래고 님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잘못 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만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

국가보훈처장을 대신하여 보훈처 서울지청장과, 철도청장을 대신하여 철도청 서울지청장, 그리고 재향군인회 회장을 대신하여 재향군인회 서울지회장이 추모사를 했다.
추모사에 이어 헌화 및 분향이 있었고 류기남 집행위원장 인사가 있은 후에,
대한참전유공자회 회장이며 前 월남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의 안보강연이 있었다.

채명신 장군은 안보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6.25 참전 철도전사자 287위의 영령들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오늘의 이 엄숙한 추모제를 준비하신 류기남 회장님과 임원들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대한민국이 오늘처럼 번영하고 세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은 6.25 참전철도전사자 287위 의 전사들과 철도참전 유공자 여러분들의 공로와 여러분들과 함께 북한의 인민군을 격퇴하며 전사한 대한민국의 국군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으로 구성된 UN군 전사들의 공헌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세계의 16개 나라의 병사들이 대한민국의 병사들과 함께 공산군의 침략을 물리쳤습니다.
북한의 무모한 남침을 억지하기위해서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친북 좌익 세력들이 도처에서 한미동맹관계를 훼손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철도 참전유공자 여러분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친북 좌익세력들의 불순한 언행(言行)을 규탄하는데 나서야할 것입니다. >

추모제에 추모하는 뜻의 화환을 보낸 분들은 다음과 같다.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 김세호 철도청장, 이상훈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
정기승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 류기남 대한참전단체연합회장,
채명신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회장, 방상준 한국유격군 총연합회회장
임광규 자유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조용기 대한사학법인연합회 회장,
정동진 홍익회 회장, 유병옥 철도유족회 회장,
문봉제 실향민중앙협의회 회장, 정병욱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회장,
인순창 대한민국 건국회 회장, 정종환 한국철도시설공단이사장,
유병옥 철도유족회 회장,



경 과 보 고

◎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김일성 공산괴뢰 집단이 불
법 기습 남침을 해옴으로서 동족 상쟁의 비참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 정부는 긴급 국무회의를 개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
하고 반격작전 명령과 동시에 교통부 철도공무원들과 철
도운영에 관련된 시설장비 일체를 징발에 관한 특별 조치
령에 따라 철도공무원30,000여명 중 19,300여 명이 현직
에서 징발되어 수송역군으로서 전시 군사수송작전에 일익
이 되어 휴전 성립시 까지 757일간 군무원으로서 한국군
및 UN군과의 일체가 되어 군사수송작전에 임하였으며 수
백만의 이재민 관련 인사와 후퇴작전에도 수송체제를 완
벽하게 그 임무를 수행했던 것입니다.

◎ 한편 50년 6월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미 극동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는 629일에 비행기편으로 수원비행
장에 도착하여 영등포지구등 전선을 시찰하고 동경으로
복귀하여 한반도 한국전쟁에 미 지상군을 투입할 것을 본
국정부에 요청하여 6월30일 파병승인을 받은 맥아더 원수
는 최초의 파병부대로 일본 규슈(九州)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8군 예하 부대인 제24사단장 윌리암 F 딩 소장을
임명하고 사단의 주력부대는 해상 선박을 이용하여 참전
토록하고 제21연대 제1대대장 찰스 B 스미스 중령을 특
공대장으로 임명하여 그의 부대원 406명을 긴급투입토록
하여 7월1일 부산수영비행장에 공수하여 부산역에서 환영
대회와 철도참전용사들은 미 특공대 한국전 참전을 대환
영하면서 당일 밤 8시 야간 열차편으로 다음날 7월2일 아
침8시 대전역에 도착 최전선으로 배치하였으며 제24사단
장 딩소장은 7월3일 오전 10:00 대전비행장에 도착 내한
하여 충남도청에 전방 사령부를 설치하고 한국전을 총지
휘하였으며 철도참전용사들은 우리국군과 UN참전 16개국
병력과 장비수송작전에 만전을 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625한국전에 최초의 특공대장으로 참
전했던 차스 B 스미스 준장이 67년 전역 했다가 지난 5
월23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찰스 B 스미스 장군님의 명복을 비는 바
입니다.

◎ 625한국전쟁에는 전국의 도로가 거의 다 파괴되어 철도
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따라서 병력과 군수물자
그리고 피난민 수송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 철도는 전쟁수
행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다하였으며 파괴된 교량을 복
구하면서 악전고투한 철도참전용사들의 공적은 실로 지대
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철도는 항상 적의 공격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가운데 많은 철도참전용사들이 전사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철도참전용사들은 적군과 조우했을때 자신을 방어
할 아무런 수단도 갖고 있지 못했지만 오직 철도의 사명
과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에서 끝까지 싸웠던 것입니다.

◎ 철도참전용사회는 1992년 10월26일 창립하였습니다. 명
예로운 참전유공자 회원들이 국가에 헌신한데 대하여 명
예를 선양하고 응분의 예우를 위하여 우리회가 최초로
“참전군인 등 지원에 관한 법률”제정을 정부와 국회에 강
력히 탄원하여 1993년 12월 27일자로 국회통과 제정하게
되어 정부에서는 1996년부터 시행하면서 이후 3회에 걸
처 법을 개정하여 현재“참전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로
집행하고 있습니다.

◎ 우리회는 그동안 10여년간에 걸쳐 조사하여 2000년에 우
리와 같이 싸우던 153위의 전사한 전우들의 기록을 발굴
확인한데 이어 2001년에 다시 134위의 전사자를 추가로
확인하고 국방부와 육군본부의 확인절차를 마치고 전우들
의 유해와 위패를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대전현충원에 안
장 및 위패를 봉안중에 있습니다.

◎ 또한 625한국전쟁중에 철도참전용사중 전상자는 현재 50
여명이 확인되었으며, 생존회원은 3851명이 서울, 대전,
부산, 영주지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본회 회원들은 사망시 본인 희망에 따라 경북 영천, 전북
임실 호국묘지에 안장하고 있으며 경기 이천에 건설중인
묘역은 건설중에 있습니다.

◎ 본회는 철도참전 전사자 287위의 호국영령들의 명예를 선
양하고 그 순절한 뜻을 기리는 한편 유족들을 위로하는
합동추모제를 2000년 7월11일부터 매년 거행하고 있습니
다.

◎ 현재까지 철도전사자 자료 발굴작업을 추진한 바 각 소속
별로 전사자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 속
전사자수
소 속
전사자수
교통부본부
김훈배
서울철도국
조용관 외 46위
대전철도국
전탁성 외 99위
부산철도국
윤영철 외 66위
순천철도국
신긴창 외 39위
안동철도국
김인규 외 15위
서울공작창
황보용
영등포공작창
문호륵 외 1위
부산공작창
예홍기 외 2위
철도건설국
문춘석 외 2위
삼척운수국
이호상 외 5위
전기수선공장
전수공


총 287위입니다.


2004년 7월 12일

社團法人 鐵 道 參 戰 有 功 者 會










추 념 사

존경하는 유가족과 동지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매년 이 자리에 설 때마다 먼저 가신 동지들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이렇듯 가신님들을 기리고 추모할 수 있는 자리라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우리에게 위안이 됩니다만, 그래도 남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데 하늘에 계신 영령들에게 우리는 늘 송구하기만 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철도참전 용사들은 누구보다도 악조건 하에서 싸웠습니다. 6‧25 당시 철도는 유일한 수송수단이었습니다. 철도가 아니면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할 수 없었고, 따라서 철도 없이는 전쟁 수행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철도는 적의 가장 중요한 공격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 철도참전용사들은 언제나 죽음 앞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의 공격도, 죽음의 위협도 우리 철도참전용사들을 굴복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우리 철도참전용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했고, 기어이 이 나라 대한민국을 공산 침략자들로부터 구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 최선봉에 철도참전영령들이 서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유족 여러분!
저는 얼마 전 모 잡지사로부터 ‘내가 겪은 6‧25’라는 글을 써 달라는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했던 동지들을 떠 올렸습니다.

당시 유엔군이 대전에 입성한 것은 50년 7월4일이었습니다. 유엔군은 대전을 넘어 조치원까지 진출했지만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침략자들에 밀려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최후의 열차를 대기시켜 놓고 딘 소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 일인지 딘 소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적이 대전까지 내려온 상황이어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딘 소장을 포기한 채 옥천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령관을 구출하기 위한 미군 특공대가 구성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철도참전자 중 누군가가 특공대를 태우고 사지(死地)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그 이름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관사 김재현 동지, 조수 황남호 동지, 조수 현재영 동지, 신호수 장시경 동지 등이 그들입니다.

특공대원 20명을 태운 석탄차에 태우고 동지들은 옥천역을 출발했습니다. 특공대는 적의 사격을 무릅쓰고 대전역 구내로 진입하여 딘 소장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30여 분 간 사투 끝에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관차가 움직이려는 순간 기관차를 포위하고 있던 적의 사격이 집중되었습니다. 특공대가 응사했지만 중과부적이었습니다. 결국 특공대 20명은 그 자리에서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기관사 김재현 동지도 적탄에 즉사했습니다. 나머지 동지들도 총상을 입었습니다. 기관사 김재현 동지는 총탄에 맞는 순간에도 기관차를 발차시키는 레버를 잡아당겼던 것입니다. 그 덕분에 기관차는 주인 없이 혼자 옥천역까지 전속력으로 달릴 수 있었고, 나머지 부상을 입은 동지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령관을 구하기 위해 이미 적진으로 돌진해 들어간 미군용사들이나, 나라의 부름으로 참전한 우리 철도참전용사들이 감연(敢然)히 사지(死地)로 가는 길에 나선 것이나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철도참전용사들은 이렇듯 목숨을 돌보지 않고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와 번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우리 철도참전 영령들은 길이길이 기억되고, 그 높은 뜻이 기려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피 흘려 우리를 도와준 동맹국 미국에 대한 악감정을 확산시키려는 세력이 활개를 치는가 하면, 6·25 참전자들에 대한 국가나 사회의 예우도 말이 아닙니다.

더욱이 민주화에 기여한 사람들은 국가유공자로 예우함과 동시에 엄청난 보상까지 해주는 터이기도 합니다. 민주화도 나라가 있고 난 연후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나라를 위기에서 건진 6·25 참전자들은 국가유공자로 예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누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목숨을 걸고 싸우려 할 것입니까.

이런 개탄스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먼저 가신님들에 고개를 들 면목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님들이 피로 지켜낸 이 나라 대한민국이 또 다시 위기에 처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그럴 경우 우리가 먼저 가신님들을 만났을 때 뭐라 해야 할지 착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유족과 동지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우리는 철도참전 전사자 287위의 호국영령들의 뜻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합동추모제를 지난 2000년 7월11일부터 매년 거행하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호국영령들의 넋을 달래고 님들의 뜻을 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잘못 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만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04 년 7월 12일

사단법인 철도참전유공자회 회장 류 기 남
2004-07-19 04: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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