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의 비전향장기수 3명이 가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전향을 거부하다 사망한 것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 이 위원회는 이들의 죽음을 ‘반인륜적 전향공작에 굴하지 않은 양심의 죽음’으로 규정하고 이 문구를 보도자료의 제목으로까지 올려놓았다.
대한민국을 적화(赤化)시키기 위해 암약하다 체포된 후에도 끝까지 전향을 거부한 남파간첩의 죽음을 이 나라 대통령 직속기관이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한다면 대한민국의 가치와 이념, 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북한 세습체제는 남한의 ‘민주화’를 위해 수십년간 수많은 ‘민주 인사’를 양성, 남파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논법이 어디 있는가.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마저 위태롭게 하는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의문사위는 문제의 인물들이 당국의 야만적인 고문에 저항함으로써 전향제도 폐지와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시 수사당국의 가혹행위는 마땅히 규탄받고 지금이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불법행위의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그 상대가 곧바로 정의라는 식의 논리는 있을 수 없다. 수사당국의 가혹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과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해 이 나라를 북한 세습 독재체제로 통일시키려고 공작했던 공작원들을 민주인사로 떠받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1조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의문사위의 결정은 스스로의 존립기반이 되는 ‘민주화 운동’의 개념에 먹칠을 하고 진정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의 명예를 욕되게 하고 말았다. 의문사위의 이런 결정을 보면 이 정권 전체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과 우려를 갖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의문사위의 보고를 받고 어떤 조치를 취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