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왜 우리끼리 탓하나 - 함영준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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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04-07-08 11:36:57  |   icon 조회: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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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왜 우리끼리 탓하나


함영준 국제부장 yjhahm@chosun.com

입력 : 2004.06.30 18:40 43'

▲ 함영준 국제부장

고(故) 김선일씨 피랍 살해 사건 이후 우리 사회가 보여준 대응 방식은 꽤 복잡다단하다. 우선 ‘너무 감정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무 죄도 없이 이역만리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것은 백 번 원통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김씨를 ‘애국자’나 ‘열사’ 반열에 놓고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느니, “정부가 보상하라”는 등의 주장이 나오며 사회가 흔들리는 모습은 지나치다고 생각된다.
2년 전 이맘때 서해교전으로 전사한 고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전몰군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냉철히 따져 보면 김씨는 미군 군납업체 직원으로 회사 일을 하다 불행을 당한 반면 윤 소령 등은 나라를 위해 목숨이 희생된 것인데도, 정작 여론은 김씨 사건에 훨씬 동정적이었다.

외국을 보자. 이미 2명이 참수로 희생된 미국에선 애도는 하되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여론도 누굴 처벌하라, 누가 책임져야 한다는 등의 감정적 발산보다는 ‘잔혹한 테러에 대한 규탄’이 기본 흐름이다. 3명이 납치됐다가 무사히 구출된 일본의 경우 여론은 도리어 비판적이었다. ‘왜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결과적으로 나라에 폐를 끼쳤으며, 이후 자위대 철수 주장은 또 뭐냐’는 것이다.

김씨 사건을 보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은 ‘이 사건으로 우리 내부 분열이 격화되지 않을까’라는 점이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유감스럽게도 외환(外患)을 맞았을 때 우리끼리 똘똘 뭉쳐 헤쳐나가기보다 도리어 안으로 손가락질하며 ‘내 탓’ ‘네 탓’을 따지고 싸우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때가 바로 그랬다.

이번에도 그런 징후들은 발견됐다. 성급하게도 김씨 사건이 발생하게 된 모든 탓을 나라(정부)에 돌리려고 하거나, 특정부서(외교부) 수장을 제물로 삼으려고 하는 분위기 말이다. 결코 정부나 공무원들을 두둔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이번 사건은 어디까지나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들의 만행으로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 납치사실에 대한 AP통신의 문의를 묵살한 외교부 직원이나, 이미 김씨가 참수된 지난 22일 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희망어린 관측을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목도한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을 십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정부 탓’이라는 식의 대응은 성숙한 자세는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김씨 추모 집회가 이어지고 결국 파병반대와 반미(反美)로 이어지는 상황 전개를 보면서, 김씨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동기도 내재돼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효순·미선양 사건 때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사건 추모나 전교조의 반전(反戰)수업을 주도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 사건을 사회·정치적 투쟁의 소재로 모는 것 같다는 의심도 든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正體性)을 훼손시키고 모든 악의 근원은 미국이라는 단순 논리를 전파해 아직 세상경험이 짧은 젊은이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진정 마음이 무거워지는 점은 이처럼 어지러운 세태를 바로잡고 국민들을 일깨워 한국을 다시 발전의 궤도로 끌어올릴, 진정한 리더십이 과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위로는 청와대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10인 10색, 100인 100색으로 갈라지고 있으며, 일반 여론도 제각기 논리와 넘치는 감성(感性)을 주체 못하고 쏟아내기 바쁘다. 마치 ‘대한민국은 없다’를 보여주는 것 같은 현 상황을 탈출케 할 리더십은 어디 있나.
2004-07-08 11: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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