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칼럼] '대학 이전'이 수도보다 급하다 - 송복 명예교수
icon 조선일보독자
icon 2004-07-08 09:26:27  |   icon 조회: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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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복칼럼] '대학 이전'이 수도보다 급하다

▲ 송복 명예교수

현대를 지식기반 사회(knowledge-based society)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 자본이라면 지식기반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은 지식이다. 얼마나 많이 지식을 축적하고, 얼마나 새롭게 지식을 생산하느냐에 그 국가의 명운이 걸린다.
지식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얼마나 집중적으로 쏟아부었느냐에 지식의 차원이 결정된다. 하느님은 공평해서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다. 이 24시간을 어떤 식으로 쓰고 있느냐가 지식생산의 핵(核)이다. 이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금 우리 학생들은 완전히 패배하고 있다. 이 패배는 원천적으로 우리 사회의 잘못된 교육제도에서 비롯된다.

우리 학생들은 교육선진국들처럼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다닌다. 기숙사에서 학교강의실 혹은 도서관까지의 시간이 5분 정도라면 우리 학생들이 집에서 통학하는 시간은 왕복 평균 하루 2시간이다. 방학 때도 도서관에 나가 공부한다고 하면 연평균 700시간 이상을 거리에서 허비한다. 이 허비시간을 대학 4년을 통산해서 보면 300페이지 분량의 책 300권 이상을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덜 읽고 졸업하는 것이 된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우리 학생들은 처음부터 경쟁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 우리 학생들은 책읽는 습관마저 몸에 배어 있지 않다. 일본에서 지하철이나 고속철은 ‘달리는 도서관’이다. 그들 학생의 손에는 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우리 지하철이나 고속철은 ‘달리는 침실’이다. 애나 어른이나 모두 졸고 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이제 만사를 제치고 국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 다른나라 학생들처럼 시간을 100% 이용할 수 있는 학교제도를 국가가 ‘명운을 걸고’ 만들어 내야 한다. 바로 대학도시(campus town)의 건설이다. 이 건설은 수도의 지방이전보다 몇백 배 효과를 내는 대학의 지방이전에서 시작된다. 서울의 큰 대학들을 지방으로 이전시켜(이미 많은 대학들이 지방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 대학도시를 만들면, 유치원·초·중·고교까지 자연히 따라붙어, 미국에서 보듯 인구 6만~7만명 규모의 도시가 형성된다. 30개 대학이 이전할 경우 2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지방으로 분산된다.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경비도 지금 계산되는 천도 비용의 몇분의 1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대학도시의 건설이야말로 1석3조의 효과를 갖는다. 무엇보다 지식을 쌓고 연마할 수 있는 시간을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엄청나게 낭비되고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이 말고 또 있겠는가. 수도권 인구분산에서도 대학도시의 건설만큼 획기적인 방법은 없다.

수도이전으로 분산되는 인구는 120조원(국토연구원 계산)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들이고도 겨우 50만명이다. 이보다 비교되지 않는 적은 돈으로 그것의 4배 이상의 인구분산효과를 가져온다면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더구나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면에서 대학도시만큼 순기능적인 것은 찾기 어렵다. 그에 반해 현정부가 성사시키려는 수도이전과 국토의 균형발전 사이에는 그 어떤 함수관계도 찾을 수 없다. 그것을 잴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우리 국민 중에는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명운을 걸고’ 수도이전을 밀어붙이려 한다. 지식의 생산, 인구의 분산, 국토의 균형발전, 그 어느것 하나 대안이 될 수 없는 무망하기 짝이 없는 일에 무모하기 한량 없는 행동을 현 정부는 자행하고 있다. 이야말로 한 정부의 명운이 아니라 천년만년 이어갈 한 국가의 명운이다. 이를 국민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소리도 내지 않고 의견도 수렴않고, 그 무망 무모 무지를 그저 따라만 갈 것인가.

(송복·연세대 명예교수)
2004-07-08 09: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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