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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4379 조 회 603
이 름 박성조 날 짜 2004년 7월 2일 금요일
자유는 민족보다 우선한다
【편집자 注】朴聖祚(박성조) 베를린자유大 교수는 7월1일 「도이치 현대사」(A History of West Germany, 데니스 L.바크․데이비드 R.그레스 共著, 徐志源 譯, 비봉출판사 刊) 출판기념회에서 『독일 통일의 원동력을 보는 새로운 시각 :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朴교수는 이 강연에서 戰後 西獨의 정치․경제발전과 통일의 원동력을 「개인의 自由」에서 찾았다. 朴교수는 『「체제에 상관없는 통일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이 얼마나 깊숙이 「가치관의 위기」에 빠져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면서 『금강산 관광․개성공단․가족상봉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自由라는 가치관을 절대 버릴 수 없는 마음․이성․지혜 및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朴교수의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오늘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명저의 한국어 출판을 축하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Dennis L. Baark, Stanford University와 David R. Gress, Arhus University는 "A History of West Germany"
(초판: 1992,이판: 1993 ; 역자: 서지원; 비봉 출판사)
이 책은 1945~1992 간의 서독의 정치, 경제, 외교사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는 이것을 “Zeitgeschichte" 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를 적당한 한국어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가장 가까운 우리말로 표현하면 ”비평적 최근세사“ 또는 ”시대사“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의 노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두 저자는 이 책의 저술에 무려 8년이라는 시간을 들였으며, 역자 서지원 역시 번역에만 2년이라는 시간을 꼬박 투자해야만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두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Baark는 1962년 Peter Fechter라는 젊은이가 동독으로부터 철조망을 넘어 자유를 찾아서 베를린으로 도망치다가 동독군인에 사살 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그때부터 전공과목을 연극학에서 역사학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 이후, 그는 대학에서 Hans Herzfeld 교수 지도 하에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Stanford 대학에 재직 중입니다.
또한, Gress는 덴마크 역사학자로써 덴마크와 유럽의 근세사, 특히 정치, 경제, 문화,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인접국가 독일의 연구에 몰두 하고 있었습니다.
두 학자는 Hoover Institution에서 1984년 이 책을 위한 공동연구를 시작하였고 이 작업을 1992 년에 완료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945년 이래 서독의 역사는 현대 세계사 중 가장 매력적인 대하드라마 가운데 하나”이다.
“강력한 외세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자국민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어느 시대에도 꿈꿀 수 없었던 ...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
“경제적, 문화적 갈등, 정치적 딜레마, 그에 따른 도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자유에 대해, 또 그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용기라는 가치에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20세기의 기적 중의 하나가 “독일 통일”이라고들 합니다. 여기서 저자들은 자문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일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햇병아리로써, 과거 전쟁만을 일삼아 왔던 독일(서독)이 어떻게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그렇게도 빨리 배워 경제적 번영, 평화, 그리고 인권을 구현하고 더 나아가서 유럽 통합의 과정에서 주도적 모범 국가가 될 수 있었는가?
독일 역사에 대하여는 내․외국인들의 많은 저작 활동이 있어 왔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Hegel, Treitschke 등을 기억 합니다. 전후 나치의 만행을 반성하는 일련의 흐름에서 Meinecke, Herzfeld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어떤 외국 학자들은 나치 독재 발생 원인을 독일의 권위국가와 독일인의 정치문화 속에서 찾고 있습니다. Craig, Calleo, Arendt 등이 주장하였고, 최근에는 대표적으로 Goldhagen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접근방법은 독특합니다. (서)독일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속에서 성장 하여 통일을 이루고 더 나아가서 어떻게 유럽과 세계 평화 유지에 기여하게 되었는가를 말해줍니다. 저자들은 한국판 서문에서 독일과 한국 간의 유사점을 지적하면서 “독일의 경험이 한국의 통일에 타산지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가 접하는 책은 “도이치 현대사”라는 타이틀 때문에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것을 다루는 “종합사”(compendia)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의 초점은 “어떻게 독일 통일이 가능 했던가?” 라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은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고, 문화주의적
접근방법인가 혹은 기능주의적 접근 방법인가 하는 단순한 “통일의 접근법”으로부터 탈피하여, “개인의 자유”를 “독일의 기적과 결부”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이러한 분석이 우리에게 아쉽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에서는 막연한 “동족”, 또는 “남북경협”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처럼 부각 되면서도, 최소한의 통일의 공감대라고 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은 경시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지금의 한국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적”이 정의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단이 목적을 신성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의 의견이 “체제에 상관없는 통일을 선호 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이 얼마나 깊숙이 “가치관의 위기”에 빠져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흔들리면 자연적으로 국가관이 의문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 인가하는 문제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면서도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항상 중요한 “역사상의 인물들, 사건 등을 현시점에서 어떻게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논쟁 속에 있어 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것을 간단히 현행법이나 도덕, 윤리, 또는 소위 말하는 “객관적 정당성”(만일 그것이 있다면)에만 일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 뒤에는 항상 현실적인 권력(Power)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분석”의 이러한 가능성은 항상 우리를 미로 혹은 오해, 더 나아가서 새로운 사고등 상이한 결과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술도 아니고, 시오노 나나미 류의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도 아닙니다.
두 저자는 독자들을 “신 사고 영역”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역사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서 출발하여, 최종적으로는 원점으로 되돌아옵니다. 역사 속에는 사람이 공유하는 가차관이 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전통이 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Fukuyama의 직선적 사관과는 달리 “역사는 끝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원점에 회귀하는 것입니다. (인간의)정체성은 이러한 역사적 원점에 부단한 회귀를 통하여 형성되고 확신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미래”는 단순히 “내일부터”가 아니고 역사에 내재되어있는 현재의 필연적 연속 입니다. 바꿔서 말하자면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원점”으로 돌아 갈수도 없고, 따라서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는 항상 선별적입니다. “과거전체가”가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욕구는 역사를 선택합니다.
이렇듯이 역사는 “선별되고”, “가식화되고”, “망각되고”, “(정신을) 깨끗이 정화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항상 일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좋은 과거 행적”만을 “자화상”으로 만듭니다.
저자들에 따르면, 과거 2차 대전 이전의 독일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역사가 부인됩니다. 따라서 앞서 말한 의미에서의 “역사의 미래성”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liberte, egalite, fraternite는 명실 공히 외래어였습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 따위는 존재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독일은 “역사로부터 버림 받은 아기”로 불려왔습니다. 독일의 역사는 권위주의, 독재, 전쟁의 연속 이었습니다. 또한 독일 역사의 원점은 단지 “민족”, “동족” 일뿐 이었고, 미래를 위한 자랑거리는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Martin Greiffenhagen이 말하기를 독일은 전후에야 비로소 새로운 역사적 원점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후 서독사회가 경제적, 정치적 성과주의로의 성공적 전환을 통하여 전통적 권위주의로부터 탈피하는 동시에, 역사를 “동족의 운명공동체 족보“라는 착상으로부터 해방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Martin Greiffenhagen 1997)
즉, 독일보수주의는 서구 민주주의국가 가지고 있는 투명하고 부단한 진화적 개혁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독일 보수주의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전에 히틀러와 같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독일 보수주의는 권위주의적 국가관, 자연법적 수구사상 및 기술위주의 혁신주의를 지향하는 애매모호한 결합체일 뿐입니다. (Martin Greiffenhagen 1981). 기술혁신을 주장하는 보수주의 와 사민당의 “신중도 이론(혁신주의)” 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정당의 연립 대신 정강의 연립은 한창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보수․진보 논쟁”이 유럽의 흐름에서 본다면 구시대적인 Carl Schmitt식의 정치 이해 ("친구냐, 적이냐“ 하는 이분법)를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착상입니다.
또 다시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서구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독일은 서구의 공통적인 가치관의 “이방인” 이었고, 서구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단순한 수입품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로부터 가치관적으로 소외되었던 독일인은 더욱더 독일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면서 “독일인은 더욱 독일인”이라는 구호를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관을 구축 하는데 약점으로 작용하는 “독일 인의 같은 원천과 유래”-이를 “유래 약점” (Herkunftsschwaeche) 라고 부른다 - 를 약화시키고, 독일인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준 것은 독일의 리더들이었습니다. Max Weber가 말한 리더의 “카리스마”는 능력, 검소, 일하는 열정, 책임감 이라는 차원에 국한 되지 않고, 앞을 내다 볼 수 있으면서도 자만과 오만에 빠지지 않는 자들인 것입니다. Adenauer, Schumacher, Brandt, Heinemann, Heuss, Scheel, Erhard, Schmidt, Kohl, von Weizaecker등은 서독을 “자유가치관 공동체(Wertegemeinschaft)” 속으로 통합 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 리더들의 공통점은 “말”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사람들을 “열광”케 하였습니다. (“nicht Verzauberung durch Worte, sondern Begeisterung durch Handlungen")
온갖 빛깔로 아무리 아름답게 염색한 수사라도 현실정치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Kant는 정치가의 행동과 도덕을 일심동체로 보았습니다. 이백년 전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Zum Ewigen Frieden)라는 논문에 “도덕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우리의 필수적인 행동지침의 진수로서 객관적인 중요성에서 보면 이미 실천하는 현실이다." 그는 부연하기를 ”정직함은 모든 정치 보다 훌륭하다“라고 말했습니다. (Kant 1795) (”Die Moral ist schon an sich eine Praxis in objektiver Bedeutung, als Inbegriff von unbedingt gebietenden Gesetzen, nach denen wir handeln sollen..........Ehrlichkeit ist besser denn alle Politik")
오늘 이 책은 우리의 생각을 다시금 정리하고 미래의 원점을 찾도록 경고 하고 있다. 수만리 먼 곳에 있는 독일의 경험은 한국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을 위해 무었을 해야 하는가?
“금강산”, “개성”, “가족상봉”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라는 가치관을 절대 버릴 수 없는 마음, 이성, 지혜 및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건전하고, 활기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전 독일 전경련 회장 Hans-Olaf Henkel은 그의 저서 “자유의 힘”(Die Macht der Freiheit)에서 “세계화경쟁은 국가간, 기업간의 경쟁이 아니고 자유와 자유간의 경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자유”를 다시 발견 합시다.
끝으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신 서지원 전 청와대 행정관께 감사와 축하를 동시에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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