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 날짜 2004년 6월 17일 조회수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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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금융감독기구의 소망스러운 개편방향
예상되었던 대로 금융 감독체계에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감독기구 담당자들에게도 현행 감독체계가 여러 가지로 불편해진 것 같습니다. 이런 불편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한편에서는 감독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이를 정부기구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감독기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이것이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이렇게 양분된 주장이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일단 물밑으로 들어갔습니다만,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금융제도의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감독체계의 올바른 개혁이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높이고 금융산업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이 감독체계의 올바른 개혁방향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개혁이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금융 감독기구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를 역사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 업무 중에서는 은행업무가 제일 먼저 출현하였는데, 이 은행 업무는 금은세공업자(goldsmith)의 금 예수업무에서 시작되어 예수한 금의 일부를 대출하는 방법을 통해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은행들이 대출을 회수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서 파산하는 은행이 생겼고, 이로 인해서 은행에 대한 고객의 불신감이 커졌습니다.
고객의 이런 불신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은행들은 이미 설립해서 활용하고 있었던 어음교환소의 기능을 확장하였습니다. 즉 어음교환소 가맹은행 중 어떤 은행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금을 차입할 경우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증서를 발행하고(은행의 은행 역할), 그 증서로도 부족할 때에는 추가로 자금을 더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하고(최후의 대부자 역할), 그리고 그런 기능이 효과적일 수 있도록 어음교환소 가맹은행들을 감독하는 업무를 어음교환소에 부여하였습니다.
이처럼 은행들의 신뢰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확장된 어음교환소의 기능이 후에 화폐의 독점적 발행권 등과 더불어 한 기관에 부여되면서 중앙은행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얻어지는 교훈은 첫째로 은행감독기구가 은행산업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객에 대한 이들 은행의 신용하락을 방지하는 한편 은행들의 건전한 영업신장을 위해 은행들의 주도 아래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처음에는 은행감독업무와 중앙은행업무가 합쳐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중앙은행업무와 은행감독업무가 합쳐져 있을 때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업무와 은행감독업무가 처음 분리된 것은 제2차대전 후 서독에서였습니다. 심각한 인플레로 혼이 난 서독에서 독립성이 강조되는 중앙은행 설립이 논의되면서, 지나치게 비대한 중앙은행의 탄생을 싫어했던 아데나워 수상이 이 두 업무의 분리를 고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찌되었던 서독에서 처음으로 중앙은행에서 은행감독업무가 분리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서독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Bundesbank)가 통화정책을 너무도 잘 수행하여 가장 인플레가 없는 경제를 실현시켰고, 이러한 안정된 분위기는 세계가 부러워했던 서독경제의 기적이 일어나게 만든 토양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에서 은행감독업무를 분리시키는 것이 독립적인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통화정책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독립시키면서 감독업무를 영란은행에서 분리시킨 것도 이런 사고방식의 연장이었으며, 유럽연합 전체의 금융감독기구 구상에서도 이런 생각이 커다란 비중을 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합금융감독기구가 설립될 당시 영국에서는 다른 요인도 작용하였습니다. 즉 당시 영국에서는 금융업무별로 각각 분리 독립된 자율규제기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융시장의 통합이 불가피한 추세로 인정되었고 이를 위해서는 각각 분리 독립되어 있는 자율규제기구를 통합하는 것이 촉진제가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분리 독립되어 있는 자율규제기관 간에는 정보교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통합하는 것만으로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준 의장을 지낸 폴 볼커는 이런 방법으로 통합감독기구 내의 정보교환이 잘 이루어질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었습니다. 이런 의견의 영향력 때문인지 유럽연합 전체의 금융감독기구 구상에서도 통합문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통합금융감독기구를 설립하게 된 것은 위와 같은 영국의 구상보다는 일본의 통합감독기구 구상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일본식 금융제도를 그대로 물려받은데 더해서,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기관들을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조달경로로 활용하는 방식도 그대로 답습하였음은 주지되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서는 대장성의 영향력이, 우리나라에서는 재무부의 영향력이 막강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서, 일본에서는 대장성의 이런 막강한 힘을 빼기 위해서 통합감독기구의 설립이 추진되었는데 반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은행에서 감독기능을 빼앗기 위해서 통합감독기구의 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의 관료주도적인 감독체계가 그것도 재무(경)부의 권한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립되게 된 것입니다. 다만 그런 개편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의 감독기관들을 그대로 인수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과도적으로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라는 이원적 감독체계가 채택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설립배경은 금융감독의 본래적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영국이 통합금융감독기구를 설립하면서도 이런 본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 감독기구를 철저하게 민간기구화 하였고 그 감독방향도 금융기관의 고객인 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감독기관이 금융기관의 고객인 기업에게까지 간섭 개입하는 일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감독기관으로서는 은행들이 기업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는지 보고만 있으면 될 것입니다.
이런 금융감독 방향은 금융기관의 고객인 기업과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금융 산업의 발전을 최대한 지원하는 방향일 것입니다. 카드회사문제를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재앙을 안기는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하고도 그 시행이 적기에 이루어졌느냐의 문제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감독당국입니다. 이 당시 감독당국이 갑자기 카드업계를 규제하지 않았다면 카드업계가 우리 금융산업의 혁명을 선도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규제가 엄격할수록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LG카드 위기가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관료주도적인 금융감독 방향이 어떤 효과를 가져 왔느냐는 얼마 전 IMD의 국제경쟁력 비교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쟁력비교 대상국가 60개국 중 우리나라가 40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는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재벌기업 자금의 금융산업으로의 유입이 없이는 우리 은행들이 명실상부하게 민영화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고 있는 것은 은행의 실질적 국가소유구도를 영구화하려는 기도이며, 이런 상황에서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이 발전할 수 없음은 통계적으로도 증명되어 있습니다. Barth(Auburn 대학교) 등은 정부의 은행소유정도가 심할수록 규제도 심하고 경쟁도 약해짐을 109개국 자료를 이용하여 계량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금융기관들이 수수료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면 우리 금융산업은 발전할 길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산업의 효율적인 구조개혁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는 세계 50대 금융기관을 우리나라로 유치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우리나라를 금융의 동북아중심지로 만들려는 것이라면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런던과 비견되는 금융 중심지가 되려다 실패한 프랑크푸르트와 동경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금융과 산업분야에서 획기적인 자유화를 하지 않는 한 성공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금융감독기구조차 올바로 개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자유화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금융감독기구가 순수 민간기구라도 금융시장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일본식 관료주의와 좌파적 국가개입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금융감독기구는 이미 공룡화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금융감독기구를 순수한 민간기구로 만드는 것으로도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는 데는 부족하다고 할 것입니다.
금융산업의 발달을 최대한 보장하는 길은 금융 이노베이션을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경쟁을 촉진시키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감독기구가 통합되어 있는 것보다는 분할되어 있는 것이 더 좋고, 자본규제와 같은 간접적 감독이 더 좋습니다. 또 카드업무처럼 발전초기단계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지간하면 모르는척하는(benign neglect) 정책이 좋다고 합니다. 감독업무는 효율적일수록 규제가 적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금융감독위원회에 속해 있는 권한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통합시켜 원래 중앙은행기능과 감독기능이 통합되어 있음에 따른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게 하면서, 금융감독업무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