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다급했던 모양이다. 같은 글을 2개 매체에 함께 기고하다니. 11일 오마이뉴스에 이효성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성균관대 교수)의 특별기고 “공정성은 ‘기계적 균형’과 동의어 아니다”라는 글이 보도됐다.
비슷한 시각, 미디어오늘 인터넷판에도 같은 필자, 같은 글이 “언론학회 ‘탄핵방송’ 분석의 오류”란 다른 제목으로 실렸다. 한국언론학회의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 분석’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된 바로 다음날, 방송위 부위원장이 이를 비판한 것이다.
탄핵 방송 관련 방송사 징계여부를 논의할 16일 방송위 산하 보도교양 제1심의위를 앞두고 상급기관인 방송위의 제2인자가 “보고서 내용이 오류다”라는 개인적 입장을 미리 말해버린 것이다. 방송위 부위원장은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방송법 25조는 방송위원들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건 심의 과정에 일종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을 만한 일이다.
구세주를 만난 쪽은 탄핵방송 편향성 비판 대상이 됐던 공영방송 TV들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인 12일 KBS·MBC 메인뉴스는 이 부위원장 기고 내용을 중심으로 언론학회 보고서의 문제점을 일제히 비판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날 KBS ‘뉴스9’에는 아예 음성출연까지 했다. 전화인터뷰를 통해 다시 방송사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이 부위원장 글 내용도 논란이다. BBC 제작자 지침을 그가 잘못 번역·해석했다는 네티즌 지적도 이어졌다. 그는 그 글에서 ‘BBC 제작자 지침’ 등을 예로 든 후, “탄핵방송의 공정성을 분석한 언론학회의 연구는 안타깝게도 이 점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공정성을 수학적 균형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론학회는 이 보고서에서 50대50, 산술적으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주장하지 않았을 뿐더러 모니터 대상이 된 프로그램에 대해 분석 틀 내에서 평가를 내리고 판단은 가능한 한 독자에게 맡겼다. 이 보고서는 이효성 부위원장이 말한 BBC의 ‘Due Impartiality(정당한 불편부당성)’의 개념을 참고로 했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부위원장의 글은 BBC 공정 보도의 기본 정신이랄 수 있는 “우리는 편들지 않는다(We Don’t Take Side)”는 원칙 자체보다, 제작자 지침 가운데 첫 번째 나오는 규정들보다 하위에 나온 항목들을 기술적으로 부각시킨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
보고서에서 지적했듯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이 앵커 멘트 11번 모두를 탄핵반대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이나, KBS ‘미디어포커스’가 7명의 인터뷰 모두를 탄핵반대 두둔 내용으로 도배한 것을 두고 과연 공정했다고, 산술적 균형과 공정성을 동일시 말라고 얘기할 수 있겠나. 더구나 탄핵 찬성세력을 오만한 강자이자 비이성적 정치집단으로, 탄핵반대 세력을 탄압받는 약자이자 민주주의 수호자로 묘사했다는 보고서의 질적 분석에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우리 공영방송의 이 같은 보도 행태가 이 부위원장이 주장하는 BBC식 공정성인가.
이 부위원장은 과거에도 교수 신분으로 이처럼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곤 했다. ‘깨끗한 정치, 민주적 권력:노무현 현상의 진단’을 비롯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여러 글들을 통해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신방과 교수가 본 노무현 인기의 비결’(2002년 4월)에서 이 교수는 “(언론권력에 맞섬으로써) 노무현 고문은 단순한 정치인(politician)이 아니라 존경받는 정치가(stateman)가 되었고, '이인제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을 한숨에 잠재우면서 16대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후 그는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았다.
이 교수가 과거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치자. 그런 후에 노 대통령 아래서 고위 관직을 지낸다는 것은 전통적 관점에서 학자의 처신은 아니다. 과거 386세대들은 그런 학자를 ‘어용교수’라 불렀다.
물론 그가 지금 평범한 교수라면 이번의 경우에는 견해를 충분히 밝힐 수 있겠다. 그러나 친노적 성향을 이미 보였던 그가 공직자 신분에서 중립성 시비까지 받으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처신이다. 무엇보다 강자인 정권과 방송사에 ‘불편한’ 보고서란 이유로 방송위 심의가 정도를 벗어나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