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 노대통령은 憲裁 결정의 뜻을 읽어야 한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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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04-05-16 14:19:48  |   icon 조회: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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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설은 조선일보 http://www.chosun.com 에있는것이며 2004년 5월15일조선일보 A 31 면에도 있는것임.


[사설1] 노대통령은 憲裁 결정의 뜻을 읽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노 대통령은 권한이 정지된 지 63일 만에 직무에 복귀하게 됐다.
우선 다행스러운 것은 대통령 탄핵 심판이란 우리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이 어떠하든 간에 탄핵정국의 당사자인 노 대통령과 야당은 물론, 국민 모두가 이번 결정을 통해 헌법의 존엄성과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고 한 단계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헌재는 국회가 제기했던 탄핵소추 이유 가운데 노 대통령의 여러 발언과 행동이 헌법수호 의무를 저버리고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측근비리에 대해선 대통령이 지시·방조·관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경제파탄 부분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가 대통령의 잘못으로 인정한 선거법 위반 부분은 탄핵 발의가 이뤄진 직접적 계기였다는 점에서 당시 노 대통령이 이 부분에 대해 국민과 야당에 적절하게 사과만 했더라면, 역(逆)으로 야당이 이 정도의 사안을 탄핵으로까지 밀고갈 것인가를 보다 심사숙고했더라면, 세계의 주목거리가 됐던 이번 탄핵사건은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간략히 말하면, 헌재는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그러나 이같은 법 위반을 이유로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게 부여한 신임을 박탈해야 할 정도의 중대사안은 아니라면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의 이런 결정을 노 대통령이나 지지자들은 물론이고 탄핵을 추진했던 측도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번 헌재의 결정을 가장 무겁게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국정운영과 정치활동에서 헌재 결정의 의의를 깊이 새겨야 할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다.

헌재는 노 대통령이 4·15 총선을 앞두고 반복해 특정정당에 대한 지지를 적극 표명한 것은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또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들이 선거법에 위반됐다는 선관위의 결정을 비판한 내용은 법치국가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자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국민투표의 형태로 묻고자 한 것 역시 헌법에 의해 부여받은 국민투표 부의권을 위헌적으로 행사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이와 관련해 헌재는 ‘우리 헌법에서 대표자의 선출과 그에 대한 신임은 단지 선거의 형태로써 이뤄져야 한다’고 밝혀, 대의제의 헌법적 의미를 명확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한 것은 대통령의 이같은 헌법과 법률 위반 행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거나 법치국가 원리를 근본적으로 문제삼은 중대한 위반행위라 할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파면은 위반행위에 대한 상응한 징벌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헌재가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반행위와 그에 대한 처벌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한가지 의문은 남는다. 그것은 대통령이 명백하게 실정법을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 아닌 한 이를 벌하거나 교정할 방법이 없는가 하는 점이다.

헌재는 이런 법적 공백(空白)상태의 고민을 결정문 곳곳에 노 대통령에 대한 경고와 주문, 심지어 훈계하는 표현까지 담는 것으로 완화해보려고 시도한 듯하나, 이것이 근본적 의문을 풀어주지는 못한다.

노 대통령이 앞으로 국정 수행에서 유념해야할 대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헌재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 노 대통령에게 ‘자신을 지지한 국민 일부나 정치적 세력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로서 조직된 공동체의 대통령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라고 상기시킨 대목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이 노사모 집회에서 행한 시민혁명 발언과 관련해서도 ‘특정시민단체에 대한 편파적 행동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의 집단과 그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집단으로 나라가 양분되는 현상을 초래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공동체를 통합시켜야할 책무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특히 기각 결정을 밝히기 직전에 “대통령의 권한과 정치적 권위는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것이며 헌법을 경시하는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대통령은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로서 자신 스스로가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고 준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기관이나 일반 국민의 위헌적 또는 위법적 행위에 대하여 단호하게 나섬으로써 법치국가를 실현하고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법 위반사실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노 대통령의 법의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노 대통령은 이번 헌재 결정의 이런 이면(裏面)의 뜻을 바로 읽어야 한다. 헌재의 이같은 결정은 또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할 일부 교사나 공직자들까지 법을 경시하고 법에 대한 불복종운동에 나서는 세태에 대한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헌재란 국민을 대신해서 헌법을 지키는 최종심판기관이다. 이 헌재가 “대통령이 법률을 위반하고 헌법 수호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하고 나아가 대통령의 가벼운 법 의식을 논리정연하게 지적한 것은 파면 결정이 초래할 분열과 혼란을 피해가려 하면서도 헌법의 정신에서 대통령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절박감과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헌법 아래에 있으며 대통령부터 법을 경시할 때 법치가 바로 설 수 없다는 평범한 원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은 내려졌지만, 헌재 결정의 정당성이 역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는 앞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정치방식이 헌재 결정 이전과 얼마나 달라지느냐에 달렸다. 헌재로부터 이런 경고를 받고도 노 대통령이 또다시 같은 헌법위반과 위법을 되풀이한다면 헌재의 이번 결정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헌법기관으로서의 헌재의 위상을 훼손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번 헌재 결정을 실체적으로 완성할 책임과 의무는 노대통령 어깨 위에 지워진 것이라 할 수 있다.
2004-05-16 14: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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