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의 국가적 자살과 키신저의 눈물 -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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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04-05-13 09:46:31  |   icon 조회: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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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의 국가적 자살과 키신저의 눈물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

2004-05-11 15:58:53

1973년 노벨 평화상은 미국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와 越盟의 정치국원 레둑토에게 돌아갔다. 두 사람은 파리 평화협상 때 양국을 대표하여 월남전의 휴전문제를 놓고 3년간 협상한 관계였다. 노르웨이의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수상 결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지난 1월27일 파리에서 평화협정이 서명되자 전세계적으로 평화에 대한 희망과 환희가 물결쳤다. 휴전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알프레드 노벨의 理想에 맞추어 일했는 바, 국제분쟁은 전쟁이 아닌 협상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월남전 당사자들이 전쟁으로 상처 받은 인도지나 반도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평화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월남의 휴전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 도덕적인 책임을 공유할 것을 희망한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키신저와 레둑토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된 1년 반 뒤 월남의 평화협정은 월맹의 일방적인 남침으로 깨지고 월남은 공산화 통일되었다.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공산주의자들의 전략도 모르고, 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생리도 모르는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두 사람에 대해 알프레드 노벨의 이상을 구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은 차라리 코미디이다.
두 사람은 노벨 평화상을 받으러 오지도 않았다. 레둑토는 미국이 휴전협정을 위반하는 한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키신저는 수상을 수락하기는 했으나 反戰 시위대의 출현을 겁내 수상식엔 불참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 보냈다. 노르웨이 노벨평화상 위원회의 수상자 결정 이유문을 읽고 있노라면 이들이 전쟁의 속성, 국가의 생리, 공산주의자들의 적화전략에 대해서 너무나 무식한 데 놀라게 된다. 순진하다고 할지, 위선이라고 할지.

키신저와 레둑토가 합의한 월남휴전협상안을 미리 읽어본 朴正熙 대통령은 柳陽洙 駐越대사에게 “이런 문안에 합의하면 월남은 1년안으로 공산화된다”면서 귀임하면 티우 대통령을 만나 충고해주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柳陽洙 대사에게 티우 대통령은 자신도 朴대통령과 동감이라면서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키신저와 레둑토는 월남정부를 빼돌리고 월남민의 운명을 결정할 비밀협상을 진행해왔는데 그 협상안이란 것이 가관이었다.
그때 17도선 이남의 월남 땅에는 약14만의 월맹 정규군이 침투해 있었다. 이들이 월남출신의 베트콩을 지휘하고 있었다. 월남정부를 따돌리고 미국과 월맹이 합의한 휴전안에 따르면 이 월맹군의 현위치 주둔을 허용하면서 駐越미군의 全面철수를 규정했다. 더구나 월남에 세워질 연립정부는 월남과 월맹, 베트콩 3者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구성된다고 되어 있었다. 이런 연립정부는 공산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정부가 될 것임을 티우도 간파했다. 티우에게 이 휴전안을 수용하도록 강요한 것은 키신저였다. 그는 재선된 닉슨 대통령이 취임식을 갖기 전에 월남평화협정을 발효시키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결국 티우는 키신저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티우 대통령이 요구한 보장책으로서 미국은 닉슨 대통령이 “휴전협정을 깰 때는 미국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때웠다. 그 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하고 미국 의회가 월남에 대한 일체의 원조를 동결시키는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월남은 버림받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1975년 봄 월맹은 정규군을 앞세운 남침으로써 월남을 적화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포드 대통령 아래에서 안보 보좌관이던 키신저. 그는 월남에 있던 미국인들과 월남인 협조자들을 사이공 함락 전에 무사히 탈출시키기 위해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상대로 “월맹측에게 잘 이야기하여 탄손누트 공항을 포격하지 말도록 부탁해달라”는 간청까지 했다. 강대국 미국의 체면을 좀 세워달라는 당부였다.
자신이 합의해준 평화협정을 미국측이 지키지 못한 바람에 월남이 무너져내리고 있던 그날 키신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1999년에 나온 그의 회고록 ‘Years of Renewal’에서 인용)
“4월21일 구엔 반 티우 월남 대통령은 미국이 (월맹으로 하여금) 평화협정을 준수하도록 만들지 못했고 월남에 대한 원조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비난하면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는 티우가 협상을 통한 결과도출에 방해물이었다면서 이제는 파리협정에 의한 해결이 가능해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티우는 미국을 증오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나를 미워했다. 내가 월남에 있어서 미군 개입을 종결시킨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용기와 명예심으로써 조국을 위해 일한 그를 존경했다.
反戰 운동가들이 주장한 것과는 달리 그는 결코 평화의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와 그의 조국은 이런 운명을 맞기엔 억울했다. 내가 만약 가련한 처지가 된 우방국에게 우리 의회가 원조를 중단하는 결의를 할 것이라고 예견했더라면 나는 1972년 마지막 단계의 협상에서 (그에게) 무리한 압력을 넣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후회를 했다”

키신저의 때늦은 후회는 사치라고 하겠다. 그의 판단착오 때문에 월남이 공산화되고 수천만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수십만 명의 보트피플이 동지나해와 남지나해에서 상어의 밥이 될 운명이었으니까. 키신저의 후회는 자신의 양심을 증명하는 것이 될지언정 亡國의 국민들을 달랠 수는 없었다. 키신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월남의 공산화를 막지 못한 것은 미국내의 소위 평화운동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反기성, 反문화의 성격도 띠고 있었던 평화운동은 언론과 의회에 큰 영향을 끼쳐 월남에 대한 지원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973년6월 미국 의회는 인도지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기간, 즉 휴전협정 서명 후 1년 반 동안 월맹은 새로이 13만 명의 정규군과 탱크 대포를 17도선 이남으로 침투시켰다. 이 명백한 휴전협정 위반에 대해서 닉슨은 티우에 대한 약속(휴전협정을 어기면 월맹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편지)을 지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월남에 대한 경제지원도 73회계연도의 21억 달러에서 다음해에는 10억 달러, 75년엔 7억 달러로 줄었다. 키신저도 월맹이 휴전협정을 준수할 마음이 없고 휴전기간을 공산화로 가는 과도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국내정치 상황 때문에 효과적인 대응수단을 동원할 수가 없었다. 어떤 외교정책도 국내정치의 사보타지에 직면하면 실천될 수가 없는 것이다.

월남에서 미국이 진 것은 군사력이 약해서도, 경제력이 약해서도 아니다. 전쟁의지가 약했기 때문이다. 17도선 이북 월맹에 대한 육군의 투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폭격으로 월맹의 전쟁의지를 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敵 군사력의 원천을 온존시키고 월맹의 수족인 월남내의 월맹정규군-베트콩하고만 싸우는 데 미군 군사력을 투입했으니 미국은 결전을 포기하고 지엽적인 전투에 매달린 셈이다. 이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 즉 미국의 전쟁의지를 약화시킨 것이 反戰운동, 평화운동,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은 언론과 의회의 제동이었다.

감상이 끼여들 수 없는 무장대치상황을 놓고 평화란 이름으로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게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우리는 평화와 민족을 앞세운 말장난에 속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자주성, 인간과 국가의 존엄성을 함께 지켜가기 위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경제력과 군사력. 이런 힘을 건설하는 것이 평화협정이나 노벨평화상보다도 더 중요하다.
노벨평화상을 백개나 받아도 그 결과로써 국민들의 행복과 안전이 위태로와진다면 그 상은 키신저의 노벨상처럼 영원히 역사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金正日에게 핵무기 개발과 對南공작용 비자금을 바친 金大中 전 대통령이 받은 노별 평화상과 월맹에게 월남을 희생물로 바친 키신저가 받은 평화상을 비교해보라.
·미국의 위선적 평화운동과 월맹의 협상공작이 합작해낸 駐越미군 철수와, 한국내 친북세력과 북한정권의 합작품인 駐韓미군 철수 요구를 상호 비교하라.
·파리 휴전협정에 의해 베트콩과 월맹정규군이 월남내에서 聖域을 확보했다는 점과 보안법이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지면 남한내에 金正日 추종세력이 거점을 확보하게 되고 이미 국회에 친북·사회주의적 세력이 들어와 있다는 점과 비교하라!
·당시 월남의 티우 대통령은 그래도 孤軍奮鬪(고군분투)하는 애국자였지만 한국의 지도부에서는 그런 反共애국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도 비교해보라!
이상의 비교 고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론은 한국도 월남과 비슷한 국가적 자살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율일 것이다. 당시 월남은 부유했고 월맹은 가난했다. 부패한 부자 나라가 가난하고 악착 같은 나라에게 먹힌 사례는 많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 http://www.chogabje.com









• MBC는 이렇게 보도한다 • 송만기씨 4집 앨범 판매 • 盧 탄핵.측근비리 기자회견 • 민씨 일가 의혹





( 2 )



조상모 (higgs)
:2 :1

나는 부시가 한국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분노했는데, 부시는 한국이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더군요.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현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말이 옳을 것입니다......혼란도의 극치. (2004-05-11 17:24:34)





김태근 (grace153)
:22 :0

조선생을 음해하는 빨갱이개잡것들은 들어라! 나는 조선생의 우국충정을 확신하며, 그를 수구보수로 낙인찍으려는 자들은 당면 대한민국의 위기를 깨달아야 할것이며 더 이상 이념타령으로 천금같은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지 말지어다. 오직 멸공뿐이다. (2004-05-11 16: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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