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은 왜 적화 되었는가? - 채명신 前 주월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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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04-05-11 21:07:55  |   icon 조회: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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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홈피독자

2004-05-06



왜 월남은 적화되었나 - 전 駐越 한국군 사령관 蔡命新 사령관

이 글은 조갑제 홈페이지 http://www.chogabje.com 의 최신정보파일에 있는 것임.


번 호 4011 조 회 843
이 름 채명신 날 짜 2004년 5월 5일 수요일

왜 월남은 적화되었나

*토론방에 실린 전 駐越 한국군 사령관 蔡命新 사령관의 글이다.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이 남침을 해왔습니다. 28일엔 서울이 함락되고 7월2일 영등포까지 진출했습니다. 한국동란이 일어난 겁니다. 인민군은 남침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고 중공으로부터 훈련받고 전투 경험도 풍부한 조선인 부대까지 인계 받았습니다. 이 부대는 인민군의 최강의 부대입니다. 그 부대를 포함한 7개사단이 242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물밀 듯 쳐들어왔습니다.



급박한 상황보고, 총장도 장관도 안받아

그런데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었느냐 하면, 사병들은 70%가 농촌일손돕기 휴가 또는 휴일외박을 나갔고 그때 여기 앉아계신 선배님 가운데 그 파티에 나가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6월24일 토요일 저녁에 용산에 있는 육군본부에서 장교클럽 낙성파티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여기에는 서울 지역에 있는 모든 고급장교, 그때 고급장교는 중령급 이상을 말하는 건데, 그리고 전방에 연대장과 사단장까지 초청이 됐습니다.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고 이것이 댄스파티로 이어져서 25일 새벽2시까지 계속 됐습니다. 그렇게 하고 두 시간 후에 기습을 받은 겁니다.

기습을 받아 가지고 전선이 일대 혼란에 빠졌는데 도대체 전쟁을 지도할 지도부의 기능이 마비돼있는 상태에서, 한 예를 들면 전방에 급박한 상황보고자가 채병덕(蔡秉德)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벨을 울렸더니 총장님 전속부관의 하시는 말씀이 총장 각하께서 어저께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깨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성모(申性模) 국방장관 공관에도 벨이 요란하게 울릴 것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그 전화를 받은 장관의 보좌관이라는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이 장관 각하께서는 일요일엔 어떤 전화도 안 받으십니다 하고 수화기를 놔버렸습니다.



「인민군」 서울대병원 9백여환자 사살

이러한 상태에서 어떻게 전쟁이 돼나가는 겁니까. 우리는 순식간에 전투부대가 괴멸당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휘부가 마비된 상태에서 해가 중천에 떠가지고서야 진짜 전쟁이로구나, 벌써 11시에 공산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포천시에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거 정말 전쟁이로구나 하고 허둥지둥 후방에 있는 부대를 전방으로 몰았지만 압도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에다가 치밀하게 계획된 공산군의 공격을 막을 도리가 없고, 탱크를 막는 것은 고사하고 탱크를 때려부술 수 있는 아무런 수단도 없었어요. 요새같이 데모 잘하는 학생들이 있었다면 쇠파이프 들고 화염병 가지고 탱크 부대 앞에 나가서 막았겠습니까.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요. 서울시민들이 보따리 들고 거리로 뛰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기가 막히죠. 우리 정부나 군 당국은 거짓말 보도를 했습니다. 시민여러분 지금 인민군이 일부 쳐들어 왔지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용감한 우리 국군이 반격을 해서 추격 중에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했어요.

28일 동이 트기 전에 공산군은 일제히 시내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서울대학병원에는 지난 3일 동안 싸우다가 부상당한 우리 국군장병들이 운동장이고 뭐고 공터를 꽉 메운 상태에서 담요 한 장도 없이 맨 땅에 앉아 가지고 신음하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공산군 일부가 서울대학병원에 쳐들어 가 가지고 어린 애를 낳으러 간 산모등, 민간인들도 거기에 9백여명 있었다고 그럽니다, 기관총으로 모조리 사살을 하고 시내에 돌입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28일 11시 반경에는 완전히 서울시내는 공산군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일부 병력은 서대문 형무소에 가 가지고 죄수들을 전부 석방했습니다. 6.25 때 가장 신나고 해방된 기쁨을 만끽한 자들은 바로 형무소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에요.

이 자들이 그냥 한 5-6명씩 작당을 해 가지고, 지금 같으면 좋은 집들이 너무 많아 가지고 어떤 집을 털어야 될지 어리벙벙하지만 그때는 반반한 집이라면 눈에 띌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그 집에 들어가서 이놈 새끼들 다 나와, 이 새끼들 지금까지 잘 쳐먹고 잘 살았지, 우리 인민군대가 해방을 시켰어, 그래가지고 빨간 띠를 있는 대로 머리나 팔에다 감고 전부다 혁명 투사로 둔갑을 하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너 집에 있는 이만한 반지 금덩어리 은덩어리는 다 가져와, 하나라도 감췄다가는 때려죽인다, 몽둥이 들고 다니면서 그러니까 있는 것 없는 것 다 갖다놓고 살려달라고 비는 겁니다.



죄수들 빨간띠 두루고 「혁명투사」로

얼마나 신납니까. 지금까지 뭐 하나 훔쳐 가지고 들어간 절도범도 있을 거고 강간범 등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이거 마누라 내놓으라면 마누라 내놓고 딸 내놓으라면 딸 내놓고, 있는 것 다 내놓고 제발 살려만 달라니 얼마나 신납니까. 신나는 거죠. 그렇다고 이놈들이 그걸 인민군한테 바치겠습니까. 정말 6.25 나가지고 신바람 나고 해방된 기쁨을 만끽한 것은 형무소 뛰쳐나온 죄수들이였어요.



두가지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

그런데 여기에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여기에서 지금 제가 기적이요 수수께끼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인민군 남진지체와 신속한 미군투입에 관한 것입니다.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그대로 남진했더라면 미군이 한반도 도착하는 것이 1주일만 늦었던들 대한민국은 없어요. 그런데 공산군이 남진하지 않았어요. 4일간이나 서울에 머물렀다고요.

미군이 1주일, 여러분 우리가 중동이나 아프리카 북부에 PKO 한 2-300명 공병부대나 의료 지원부대를 보낼 적에도 최소한도 6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하물며 대 육군의 전투부대가 미국 본토를 기준으로 할 때 1만km나 떨어진 한반도에 일주일 이내에 투입된다는 것은 전쟁의 역사상 전무한 일이에요. 앞으로도 후무할 겁니다. 이 두 가지 기적에 의해서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또 하나의 전쟁은 우리가 참전한 월남전 입니다. 그런데 월남 참전에 대해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최초에 비둘기 부대의 경비대장을 했던 이광로 장군이 앉아 계십니다만 이 분이 전투부대장으로서는 맨 처음 월남에 간 분입니다. 한데 여러분 한국군이 월남 가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이건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얘기입니다만 제가 그때 육군 작전참모부장을 했습니다.

작전참모부장이라는 게 전쟁 문제를 다루는 총참모입니다. 제가 주월사령관 명령을 받기 7일전입니다만 한번은 대통령께서 저한테 채장군은 게릴라전을 많이 해서 잘 알겠지만 월남전에 한국군이 가면 잘 할 거야. 그래서 제가 각하 뭘 근거로 우리가 가면 잘 할 거라 자신을 가지십니까, 내가 그랬더니 채장군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우리는 문제없는 것 아니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월남전에 가서 베트콩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게 답변을 드렸다고요. 그러니까 대통령께서 안색이 달라지시면서 아니 채장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거예요.



"베트남 가서 이길수 없습니다"

그랬는데 상황이 달라지게 됐어요. 왜 달라지게 됐느냐 면 여러분들 잘 아시잖 습니까. 1965년초에 플레이쿠 미군 특수부대의 기지가 습격을 받아 가지고 피해를 입었죠. 그리고 얼마 후에 사이공에 있는 미군 전용호텔이 베트콩에 폭파당해 가지고 엄청나게 많은 미군들이 피해를 입었어요. 돈킹만에서 움직이던 미국의 7함대를 월맹의 어뢰정 3척이 공격을 해왔습니다.

존슨대통령이 거기에 대한 보복으로 즉각 폭격을 시작했고 65년 3월15일에 해병대 3500명을 다낭에 상륙시켜 가지고 본격적인 지상전투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미국이 본격적으로 7함대도 개입했다고 하면 그다음 월남전에 투입할 수 있는 미군 부대가 어떤 부대가 있겠느냐. 뻔히 다 아는 거죠 지도만 보면 훤히 아는 거예요.

하와이에 있는 해병사단이 먼저 들어가고, 그 다음에 텍사스주에 있는 예비사단, 그 다음에 캘리포니아 북쪽에 있는 1개 사단 그 다음 어디가 들어가느냐. 한반도에 있는 2개의 미군 사단을 돌리는 겁니다. 가장 우선 순위가 높아요 지리적으로도 좋고.

그런데 그 당시 우리의 안보현황이 어땠느냐 하면 6.25 때보다도 남북간에 힘의 격차가 컸습니다. 북쪽이 더 유리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유리했습니다. 군사력 뿐만 아니라 막강한 중국과 소련의 배후세력이 동맹관계에 있죠. 거기다가 우리는 춘궁기가 되면 수천 수만명이 굶는 때인데 이북은 1인당 700그램정도의 넉넉한 배급을 주고 있을 때예요.

그리고 우리는 전력이 없어서 등잔불을 켰지만 북은 전력이 엄청나게 남아 돌아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에요. 우리 국민소득이 얼마입니까. 78달러 정도 밖에 안됐는데 북쪽은 120달러였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김일성이는 의기양양해서 「우리가 밀고 나가면 잃는 것은 휴전선이요 얻는 건 조국 통일이다」 하고 큰 소리를 뻥뻥 쳤습니다. 그만한 힘도 있었고 모든 여건이 김일성이 절대 유리했다고요. 왜 못나왔습니까. 6.25 때는 미군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미군 2개 사단이 버티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미군사단을 빼서 월남으로 돌리면 어떻게 합니까. 6.25 때는 3일만에 수도 서울을 뺏겼지만 이번에는 3일만에 부산까지 뺏길 판이에요. 그걸 우리 박대통령께서는 전략을 아시는 분이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는 박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박정희대통령의 전략적 선택

우리 두 개 전투부대를 보내니까 미군들은 한 명도 빼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박대통령 같은 분이 계셨으니까 그렇지, 여러분들이 박대통령을 좋아하신다고 하지만 그 분의 업적을 똑똑히 알고 좋아하셔야 됩니다. 그 분이 경제부흥을 이룩했다는 것도 큰 업적이지만 김일성이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게 제2의 6.25를 막았다는 그 이상의 큰 업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일동 박수)

전투부대를 지휘하는 최고 사령관인 나로서는 어떠한 전략 방침을 써야 됐겠느냐. 전투해 가지고 베트콩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당해낼 도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미군들은 서치 앤드 디스트로이, 탐색하고 섬멸한다. 나는 그거 가지고 안 된다, 제가 그 문제가지고도 미군들하고 한달 동안 싸웠습니다.

절대 그거 가지고 안 된다. 어떻게 탐색하겠다는 거냐. 베트콩이 계급장 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유니폼을 입거나 장화를 신는 것도 아닌데, 길가에 나가게 되면 길거리에서 11살 12살 되는 예쁜 계집애들이 광주리 놓고 바나나를 팔아요. 따이한 사라 이거야, 이게 베트콩이에요.

광주리 밑에 수류탄이 두 개 이상 들어가 있습니다. 저도 그 계집애들한테 두 번 죽을 뻔 했는데 베트콩이 정글 안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시내에 더 많습니다. 허리 꼬부라진 노인들 호주머니에 수류탄이 들어가 있다 이거예요.

어린애 업고 다니는 아낙네들 호주머니에 수류탄이 들어가 있어요. 기회를 봐서 수류탄 던지고 바람 같이 없어집니다. 잡을 수가 없어요. 아마 그들에게 가장 습격을 많이 받은 사람이 저일 겁니다. 왜냐하면 한국군을 대표하는 놈이니까 이 놈 새끼가 타겟이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싸우는 대신 선무(宣撫)하니 평정

그러나 우리는 선무 공작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식량도 가져다 주고 아픈사람은 치료해주고 그렇게 되니 베트콩이 아파서 산에서 내려오면 그 가족이 신고 해옵니다. 누가 신고하는지 아십니까? 마누라가 하고 부모가 우리한테 신고합니다. 우리 아들이 왔는데 가서 고쳐달라고. 월남 사람들 100%가 피부병이죠.

그 더운 나라에서 제대로 의료시설이 없는 데다가 우리 위생병 3-4명이 총도 가지지 않고 완장만 차고 가서 환자를 데리고 옵니다. 가서 약을 주면 약을 안 먹습니다. 왜냐하면 그 약을 받아먹었다가는 창자가 끊어지고 고통을 받다 죽는다고 교육이 돼있기 때문에 약을 안 먹어요. 그러니까 우리 위생병들이 야,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 약을 입에다 넣고 꿀꺽하면서 이렇게 먹어, 그러면 그때야 약을 먹습니다.

그 정도로 처음에는 우리를 불신하다가 나중에는 전폭적으로 믿게 되니까 우리한테 와서 신고를 하는 겁니다. 신고 받아 가지고 완치되고 난 다음에는 자유롭습니다. 「너 산으로 올라갈래? 가겠다 이거야, 좋다. 그러나 무기만은 못 가지고 간다. 그러나 이 다음에 네가 다시 부락으로 내려오면 그때는 죽은 거다. 알겠느냐, 산에 가도 좋다」 그리고 부락에 남겠다면 양민들 괴롭히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도장이나 지장 하나만 찍을 것 같으면 무조건 다 놔줬습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피냐던 신문이

대담하게 그렇게 하니까 베트콩들이 우리 지역에 제일 귀순자가 많고 전투가 벌어졌다 하면 그냥 손들고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탄약고가 어디 있고 집결소가 어디 있고 사령부가 어디 있는가를 전부다 알고 하니까 극히 적은 희생으로 남들이 하지 못하는 평정사업이 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평정사업에 성공한 것은 우리뿐이에요. 대한민국 국군뿐이었습니다.

운이 있고, 하나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짜빙동 전투하고 두크르 전투에서 공산군하고 그 치열한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니까 월남전에서 믿을 수 없는 기적이다 라고 하면서 전세계에 퍼져나가게 됐습니다.

그때 런던 타임즈에서, 우리 신문에서도 전재가 됐습니다만 그 신문이 바로 얼마 전에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기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모욕적인 머리 기사를 써 가지고 온 국민들을 극도로 분개하게 했던 그 신문에서 뭐가 나왔습니까, 만약에 한국군에게 월남전을 몽땅 맡겼더라면 또는 미군이 한국군의 고도의 전략을 배웠더라면 월남전은 벌써 끝났을 것이다 라는 머리기사를 냈습니다.

우리가 5.16후에 거창한 경제계획을 하는데 돈이 있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IMF라고 하지만 그때는 11개 나라가 세계 금융문제를 좌지우지 할 때입니다. 그 11개 나라는 제가 일일이 거명 하지않아도 여러분들이 알만한 나라들입니다. 이 11개 나라에다가 돈을 빌려달라고 차관단을 보냈는데 거들떠보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춘궁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굶어죽는다는 가난뱅이 나라에 누가 뭘 보고 돈을 빌려줍니까. 그렇게까지 냉대하고 거들떠보지 않던 11개 나라의 재정책임자들이 그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에 서울에 오지 않았습니까. 66년 8월엔가 와 가지고 그 사람들이 당신들의 군인들이 월남에 가서 하는 것보고, 또 당신들 기업이나 근로자들이 월남에 가서 움직이는 것 보니까 대단히 장래가 있다. 앞으로 당신들이 필요한 개발자금을 우리가 대주겠다 해서 27억달라를 내놓은 것 아닙니까.



미국원조 농산물 판돈으로 나라꾸릴때

그 외에 월남 갔던 우리 군인들이 달라로 받던 퍼디움(일당)도 경제 건설에 도움이 되였습니다. 우리의 작업복이나 모든 것을 전부 한국에서 만들도록 우리 군인들이 요구했습니다. 미제 작업복 오는 것도 우리는 안 입겠다, 맞지 않아서 못 입겠다, 한국에서 만들어서 가져올 수 없느냐, 그때 우리 한국군이라고 하면 웨스트모어랜드대장이 모든 것을 들어줄 때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김치 먹게 해달라 뭘 먹고 싶다 그러면 전부다 해주고 그럴 때입니다. 김치에 대해서 한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잉여농산물 받아 가지고 그것 팔은 대금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예산으로 쓰고 그럴 때입니다.

국방비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 PL480에 따라서 잉여농산물을 받던 나라에서는 농산물의 가공품을 미국이 돈주고 사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김치를 먹어야 되겠다 그랬더니 하와이에서 만든 김치 샘플을 가져왔어요. 이거 못 먹겠다, 한국에서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서 웨스트모어랜드 대장이 우리한테 김치 먹이는데 얼마나 애썼습니까.

그때 서류가 이만큼 있습니다. 미국에 펜타곤과 재무성 농림성에서 왔다 갔다 한 공문, 규정 때문에 못 준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우리는 너희가 규정이고 뭐고 알게 뭐냐, 너희가 무슨 법령이나 규정 때문에 여기 온 것이 아니 잖느냐. 하여튼 우리는 김치를 먹어야 기운내서 싸울 수 있으니까 먹게 해달라 그래가지고 머리를 짜내서 한 것이 뭐냐하면 김치를 미군들이 우리한테 선물하는 절차를 밟아가지고 김치를 먹게 됐어요.



사령관님, 「이게 김칩니까, 핏물이지」

대한식품공사는 우리 한국군에게 김치를 주기 위해서 만든 건데 양국진 장군이 사장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께 전화를 걸어서 제발 김치 좀 빨리 먹게 해달라 그랬더니 양국진 장군이 깡통김치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지고 와서 따니까 깡통김치가 핏물이에요.

나는 기술적인 건 잘 모릅니다만 짜고 매운 것을 통조림에 넣을 것 같으면 안에 코팅하는 특수한 기술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없었거든요. 깡통에다 그냥 넣었으니까 오는 동안에 녹 슬어가지고 김치 쪼가리는 하나도 없고 핏물이더라고요. 양장군이 얼굴이 새파래 가지고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떡하죠? 이걸 가지고 가서 먹으라고 하는 겁니까? 아이고 이게 아닌데, 야단났어요, 우리 장병들은 김치 온다고 눈이 새빨갛게 기다리고 있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여튼 갑시다. 헬리콥터에 양국진 장군을 모시고 큰 가방에 가져온 것을 가지고 제가 가까이 있는 부대, 소총중대에 직접 내렸습니다.

「집합해라, 너희들 김치 먹고 싶지, 예, 김치 왔습니까? 응, 왔다」 따봐라고 했더니 따더니 모두 소리를 지르고 놀랍니다. 사령관님 이게 김치입니까, 핏물을 가지고 와서 김치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난리가 났어요.

「똑바로 들어, 나도 너희들과 같이 놀랬다. 핏물이지 이게 김치냐. 아니 근데 이걸 김치라고 가져오면 어떡합니까. 얘기 끝까지 들어라. 이거 못 먹겠지, 나도 못 먹겠는데 너희들은 먹겠냐, 못 먹겠지. 이걸 어떻게 먹습니까. 그래, 그러면 말이야 내가 웨스트모어랜드 대장한테 이거 못 먹겠다고 하게 되면 아마 2-3주일 정도 걸릴 거다. 입에 닿으면 살살 녹는 깡통 김치가 온다.

그런데 그 김치는 하와이에서 만들어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게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김치 값은 전부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한테 가지 고향에 있는 너희 부모들한테 안가는 거야, 어떡할래? 그러면 문제가 다르잖습니까. 다르긴 뭐가 달라, 제가 큰 소리 쳤어요, 못 먹는 건 못 먹는 거지. 당장 가서 이거 바꾸겠다.」



우리 장병들, 「녹슨 김치도 먹겠다」

내가 어디 가도 우리 군인들을 자랑하는 게 그겁니다, 여러분들 우리나라에 애국자들 많아요. 입가지고 나불나불 하는 애국자들 많습니다. 자유를 위해서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고 그런 애국자 많아요. 애국자는 뭐가 애국자입니까. 입 가지고 나불거린다고 애국자입니까? 애국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 국가나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애국자지 입 가지고 나불나불하는 사람이 애국자입니까!

나는 우리 장병들을 애국자라고 자랑하는 건 그렇게 기대하던 김치가 기술이 없어서 그것 밖에 못 만들었는데 그거라도 먹겠다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먹느냐, 어떻습니까, 똥물이라도 먹어야 되죠. 우리 장병들이 한 얘기를 그대로 전하는 겁니다. 그래야 김치값이 고향에 있는 우리 부모들한테 갈 것 아닙니까.」

여러분 월남 가서 싸운 우리 군인들이 싸움만 잘한 게 아닙니다. 애국자입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게 애국자라고요. 희생하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애국자라고요. 나는 어디 가든 자랑을 합니다.



주월한국군에 감명받은 호주군

월남에서 우리 장병들의 그와 같은 애국적인 행동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일으킨 원동력이었고, 그것을 직접 지도하신 분은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박대통령이라고 하면 단순히 경제부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만 다 월남에서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발전 보다 더 큰 건 뭐 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그만 땅 덩어리 안에서 영남이다 호남이다, 상놈이다 양반이다, 남인이다 북인이다 서로 집안 싸움만 하던 민족성, 우물안에 개구리격인 내향적인 민족성을 전 세계로 눈을 돌리게 했고, 전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 월남파병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오스트렐리아에 가보신 분 많이 있죠, 오스트레일리아는 그 나라의 정책상 백호주의라고 해서 동양사람은 관광비자로도 못 들어갔었습니다.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오스트레일리아가 개방하게 된 이면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군인 약 5천명이 월남전에 참전했던 영향이 큽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군은 전부 영국에서 교육받은 장교들이기 때문에 아주 프라이드가 대단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군사령관이 제너럴 맥케이 소장인데 회의 같은 걸 하다가 웨스트모어랜드 대장이나 미군 공군 브라운 대장이 들어오게 되면 앉아서 하이, 별 두 개인데, 그런데 똑같은 별 두 개인데 제가 들어가게 되면 일어서서 인사를 합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기분 나쁘니까 우리 4성 장군 오는데도 인사 안하면서 어째서 한국군한테는 인사를 하느냐 그랬더니 제너럴 채한테 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한거란 거예요. 적어도 자기들은 게릴라전에서만은 전세계에서 1위라고 자신을 갖고 있었고, 또 월남에 와서도 잘 했었는데 한국군은 자기들보다 한 2단계 위여서 한국군에 대해서 경례하는 거라는 것이었어요.

「너희들 미군은 B52비행기까지 가지고 전쟁에 참가해 가지고 맨날 실패만 하고 얻어맞고만 돌아다니지 않았느냐. 너희들한테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맥케이 장군이 공개석상에서 그런 식으로 떠벌릴 정도로 한국군에 대한 칭찬을 호주군들이 했습니다.

호주에 가면 한국교포사회의 인구가 얼만지 아십니까? 내가 3년전에 가봤습니다만 한 3만5천명 정도 됐어요. 월남 참전했던 군인들이 많이 가있는데 이 군인들은 호주 군인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호주 정부에서 월남 참전했던 우리 대원들을 극진히 대우를 해요. 그리고 참전했던 군인들이 호주의 교민사회에서 완전히 중심세력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이토록 만든건…

이러한 것은 모두다 월남전에서 얻은 민족적인 긍지라고 할까 그런 결과인데 이 모든 것도 박대통령이 군사전략을 아는 분으로 월남전을 그렇게 잘 다뤘고 월남전 참전을 결심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걸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서 아무쪼록 여러분들이 박대통령을 막연하게 좋아하신다는 게 아니라 민족사적 관점에서 어떤 업적을 우리 민족에 남겼느냐 이걸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박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제대로 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박대통령이 100% 다 훌륭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토록 만든데 대한 엄청난 업적은 인정해야 됩니다. 그 분이 유신체제만 안 했던들 얼마나 좋았겠느냐, 두고두고 저는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 볼 때 참 그 분이 얼마나 자상한 분인지, 우리 집사람도 종종 얘기합니다. 제가 1년에 한번씩 공관장 회의 때 올 것 같으면 대통령께서 집사람한테 가서 옷 같은 것 칭찬도 하시고 따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주 다정다감하고 세심한 분입니다. 두고두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

결론 하나만 말씀드리고 끝을 맺겠습니다. 나나 여러분들이나 똑같은 생각이고 똑같은 걱정을 하고 계십니다만, 지금 우리나라의 안보상황, 남북문제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김대통령께서도 안보가 확고하게 돼야 된다, 통일 보다 안보가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그 말씀은 옳습니다.



약할수록 짓밟는게 공산당 생리

안보라는 건 뭐냐, 우리의 국방력이에요. 국방력이 튼튼해야 됩니다. 튼튼한 국방력 안보의 토대 위에서만 남북문제를 앞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데, 국방력을 튼튼하게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약화시키는 움직임들이 너무나 많다 그겁니다. 요새 군 관계에 대해서 신문에 많이 나고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많이 보시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하느냐 이거예요.

공산당하고 협상하는데 있어서는 우리의 강점을 가지고 있을 때만이 협상이 가능하지, 우리가 약점을 노출했을 때는 협상이 되질 않습니다. 판문점 회담에서 그들하고 자리를 맞대놓고 2년 반동안(1951~1953) 싸운 것 아닙니까. 밀고 당기기를 2년동안 했어요. 그래가지고 불안하나마 휴전협정까지 몰고 갔는데 약하게 나가면 약할수록 더 밟는 것이 공산당의 생리입니다.

힘의 논리만이 공산당하고 협상하는데 도움이 되는 겁니다. 강하다, 이거 안되겠다, 까불다가는 내가 얻어맞겠다고 하는 상대방에 대한 힘의 논리에서 자기가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할 때 협상에 응하는 것이 공산당입니다. 한국 전쟁의 경우에도 그렇고 월남전에서도 그걸 본 것 아닙니까.

월남이 왜 망했습니까. 무기가 없어서 망했나요? 망할 당시에 월남군 250만의 무장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군들이 사용하던 무기들을 다 놓고 온건 아니지만 정묘한 최신 무기 장비들을 그대로 놓고 갔어요. 그 당시 월남군은 동남아 뿐만 아니라 아세아에서 총체적인 군사력으로 따지면 아마 최강이었을 거예요.

중공군이 그때 400만이었다고 하지만 아마 무기라든가 전체적인 전투력으로 따지게 되면 월남군이 최강이었을 거예요. 그런 군대가 왜 망했느냐, 첫째는 공산당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공산당을 몰랐다는 건 제 얘기가 아니에요. 베트콩을 조직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베트콩을 조직하고 훈련시키고 싸워서 이긴 적화통일의 1등 공신이 누구입니까, 첸뉴탄 아닙니까.



월남(공화국)이 왜 망했습니까?

이 사람이 월남 임시정부 사법상을 했고 호지명이 가장 사랑하는 수제자였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파리에 가서 전 세계에 대해 우리는 공산당의 정체를 제대로 몰라 가지고 월남전에 실패했다고 떠들고 있는 사람 아닙니까. 월남전의 주역이 베트콩인데 베트콩의 간부들을 다 없애버린 게 누굽니까. 월맹 공산당 아닙니까.

6.25 때 남로당의 박헌영 이하, 4.3제주도 공산폭동의 주모자가 누구입니까. 인민유격대장 김달삼, 이덕구 등 이사람들 다 숙청됐어요. 다 죽은 거죠. 김일성이 패전의 책임을 덮어 씨운 거죠. 공산당을 모르면 이렇게 당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모르고 힘을 기르지 않으면 전쟁이 납니다. 윈스턴 처칠경이 얘기했습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고. 요즈음 남북문제에 대해 사람마다 제 의견을 얘기하고 통일이 당장 될 것처럼 들 떠 있습니다. 그러나 안보가 튼튼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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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왜 월남은 적화되었나 - 전 駐越... 조갑제홈피독자 2004-05-06 10
2004-05-11 21: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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