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선일보 http://www.chosun.com 에 있고, 2004년 5우러 4일 칼럼 난에 있었던 것임.
[시론] 국가이념과 정당의 정체성
北정권·동포 구별 필요 원칙 구현할 방법론 밝혀야
▲ 남덕우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
지금 각 정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려고 고민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정당의 이념적 정체성은 국가적 정체성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국가이념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들은 마치 그들의 정책노선이 국가이념을 초월하는 것처럼 개혁 보수니 중도 보수니 실용적 진보니 개혁적 진보니 하고 떠들고 있다.
우리의 국가이념에 비추어보면 선택할 정책 노선이 자명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대북정책을 생각해 보자. 남북 통일을 가로막는 근본 요인이 이념과 체제의 차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북한 동포와 북한 정권을 구별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동포애의 견지에서는 이북 동포의 민생을 도와야 하고 남북 간의 민족적 동질성 회복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러나 북의 정권에 대하여는 개혁 개방과 민주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하고, 같은 맥락에서 북한 동포의 민주화 소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정부는 UN 대북 인권 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했는데, 이것은 민주화를 바라는 북한 동포의 비원을 배반하는 것이고, 그들의 원망과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북의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을 보수라 하고 북의 체제를 관용하거나 동조하는 세력을 진보라 하는 어법(語法)에도 문제가 있다.
시장경제주의에 관해서도 그 원리 원칙에 비추어보면 노선 선택이 자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두말할 나위 없이 시장경제 체제는 경쟁을 요건으로 한다. 경쟁이 있으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이원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국가 운영의 기본 과제다. 승자가 패자를 멸시하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부자가 빈자를 돌보지 않으면 자유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부자를 배척하면, 부자가 되어 국가 사회를 위해 큰일을 해 보겠다는 기업가 정신을 꺾게 되고 경제 사회의 발전을 제약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은 컴퓨터를 통해 지구촌의 생활방식에 혁명을 가져온 위대한 성취의 결과이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고 있다.
또 가령 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료수가를 비현실적으로 통제하면, 지금 나타나는 현상처럼 내과와 외과 지망 학생이 줄어들고 의사들이 일부 분야를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결국 의학과 의술의 발달이 저해되고 부자뿐 아니라 서민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의 개선도 바랄 수 없게 된다. 평준화의 허점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평준화를 위해 경쟁을 봉쇄하면 발전과 향상이 없는 반면, 경쟁의 공정성을 무시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사회가 된다. 이러한 이념적 시각에서 경제운용의 다섯 가지 원칙이 도출된다. 첫째는 자율과 경쟁, 둘째는 공정 경쟁, 셋째는 기회 균등과 공정 분배, 넷째는 불우자 구호, 다섯째는 시장 보완의 원칙이다.
위의 원칙들을 수용하는 정당이라면 여(與)든 야(野)든, 그들이 말하는 정체성(正體性)이란 이 원칙을 실천하는 방법과 우선순위에 관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야의 정책이 같거나 비슷하다 하여 그것을 야합이나 무정견으로 볼 필요는 없고, 정당들이 무리하게 정책을 차별화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우리가 정당들에 바라는 것은, 우리 국가이념의 원리 원칙을 어떻게 구현하고,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우선순위와 합리적 방법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은 그 후에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