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욕하면서 닮는다 - 盧정권 세력의 타도대상들
icon 조선일보독자
icon 2004-05-04 11:23:08  |   icon 조회: 890
첨부파일 : -
이글은 조선일보[디지틀] http://www.chosun.com 에 있으며.2004 년 4월28일 조선일보에도 게재되었던 것임.


[김대중 칼럼] 욕하면서 닮는다

盧정권 세력의 타도대상들

비판 거부하는 독선의 답습

4·15 총선 결과가 나온 지 불과 닷새 만인 4월 21일, 조선일보사 근처에서 온갖 저속한 용어를 총동원한 안티조선 시위가 있었다. 총선의 승리감에 도취한 일부 세력이 첫 번째로 가진 정치적 시위가 비판언론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무게와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집회였다.
노무현 정권이 집권한 지난 1년여 세월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타도 대상이 대체로 세 가지로 집약됐음을 알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이고, 경제적으로는 대기업 또는 재벌이며, 사회적으로는 조선·동아로 대변되는 비판언론이었다. 한나라당은 결국 크게 위축됐다. 이번 선거에서 살아남았지만 한나라당은 지금 흔들리고 있고 ‘변신’의 요동으로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 셈이다. 대기업은 숨을 죽이고 있다. 걸려면 언제든지 걸 수 있는 약점을 수없이 지닌 대기업들은 안으로는 노조, 밖으로는 사정(司正)에의 공포로 어느 정도 잠재워진 상태다. 이제 저들의 공세는 비판언론에 집중될 것이다. 총선 승리 후 첫 번째 ‘행사’가 조선일보 공격에 맞춰졌다는 것은 그런 관점에서 시사적이다.

심히 우려되는 것은 현 정권세력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싹쓸이 의식이며 그들이 만끽하고 있는 보복심리와 오만함이다. 오늘의 상황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과거 주류(主流) 세력의 싹쓸이 방식과 오만함에 대한 시대적 심판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냉전적 상황하에서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고 해도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일절 용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매도해버렸다. 독선과 오만이 막은 비판의 숨통은 언젠가 폭발하게 돼 있고, 그것이 노 정권의 탄생과 새로운 집권세력의 등장으로 현실화됐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욕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이들은 그들을 오늘에 있게 한 원인과 교훈을 벌써 잊고 과거 주류세력이 빠졌던 오류에 스스로 탐닉하고 있는 양상이다. 자신들의 진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자신들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거세하려는 독선에 길들여지고 있다. 어쩌면 과거 총선에서 승리한 여당(민정당)이 당선자들에게 같은 색깔의 유니폼을 입혀 학생들처럼 연찬회를 갖게 한 것까지 닮았다. 어느 틈에 20~30년 집권을 거론하며 (과거 신군부정권도 그런 소리를 했다) 개혁의 미명하에 자신과 다른 생각을 수구니 요괴니 악마니 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오늘날 한나라당이 존재하는 것조차 죄악인 것처럼 타기하는 대상이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이 있었을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의 전통야당임을 자처하는 DJ의 민주당이 이 모양 이 상태로 몰락하리라고 감히 예언한 사람이 있었을까.

이들의 위축과 몰락은 세상이 언제까지나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그 속에서 비판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기만이 선(善)이고 다른 사람은 모두 악(惡)으로 몰았던 결과라고 본다. 오늘날 조선일보가 안티의 대상이 된 것이 지난날 독선과 편향성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조선일보는 그것을 거울삼으며 똑같은 소리를 오늘날 독선과 오만에 빠진 친노세력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지금 진보나 보수가, 여(與)나 야(野)가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계에 있으며 궁극적으로 보완의 관계에 있다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자기가 오늘 상대방을 말살하려 한다면 언젠가 자기가 상대방에 의해 말살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비판을 수용하며, 그 속에서 선택으로 차선(次善)을 공유(共有)하는 합리(合理)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누구도 몇 년 앞을 장담할 수 없다. 노 정권과 집권세력도 예외가 아니다.

(리사 기자)


입력 : 2004.04.30 19:22 32'












Copyright (c) 2004 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chosun.com for more information.
2004-05-04 11:23:08
211.63.150.15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