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디로 進步하잔 말이냐 - Metternich
icon 한승조홈피독자
icon 2004-05-03 04:08:52  |   icon 조회: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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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승조 교수 홈페이지 http://www.wisemid.org 의 전문가, 명사 칼럼에 Metternich 라는 필명의 사람이 쓴 것임.

Metternich

2004-04-29


도대체 어디로 進步하잔 말이냐

요사이 눈만 뜨면 귀가 따갑도록 듣는 낱말은 ‘진보’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사람들이 너도 나도 ‘진보’를 말하되, 그 본래의 말뜻이 왜곡되어 쓰이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심지어는 ‘민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 등등 순전히 정치적 의견들이 ‘진보’의 말뜻이나 되는 듯 행세하는 사례도 많다.

進步(나아갈 진, 걸음 보)는 글자 그대로 ‘나아간다’ 또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진보의 말뜻을 제멋대로 다시 지어내서 욹어먹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에 별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고 부여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아감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하나의 주관적 행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자체보다는 과연 ‘어디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산을 오를 때 꼭대기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절벽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길을 잃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른 채 끝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면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굳은 믿음을 가지고 낭떠러지로 진보한다면 세상에 그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있겠는가? 높은 산에 오를 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실족할 위험이 없이 안전하게 등산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라 하겠다. 산길에 오르는 데조차 그 정도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거늘 하물며 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쉬지않고 “진보 진보”하면서 자꾸만 우리를 어디론가 밀어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어디로 진보하자는 말이냐고 묻는다. 해는 벌써 져서 사방이 어두운데, 우리가 위치한 곳이 정확히 어디이며, 우리가 지금 어디로 나아가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진보’만 되뇌이며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자고 재촉하는 그 사람들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한 걸음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미끄러지고 마는 상황에서 왜 무작정 진보하자고 야단들인가? 정말로 잘못디딘 발 한걸음에 굴러 떨어져 죽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가? 아니면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둘 중 어느 경우라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만일 정말 몰라서 그런다면 그것은 전문성이 결여된 무자격의 반증이니 용납할 수 없고, 알고도 그런다면 그것은 불순한 의도로 우리를 죽이려 드는 일이니 용서할 수 없다.

우리는 일단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느 쪽이 안전한 길인지에 대해 확실히 알아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움 속에서 어디론지 무턱대고 진보할 수 있겠는가. 죽음으로 나아가느니 차라리 날이 새서 모든 것이 밝히 보일 때까지 제자리에서 꼼짝말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나으리라.

소위 진보주의자들에게 분명히 묻노니 과연 우리더러 ‘어디로’ 진보하자는 것인지 답하라. 법이 지배하는 자유민주 질서 수호로 진보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선동과 모략이 지배하는 민중주의 사회변혁으로 진보하자는 것인지 밝히라. 공산주의 배격을 통한 자유통일로 진보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공산주의와의 연합을 통한 용공통일로 진보하자는 것인지 밝히라. 진보한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광명과 삶으로 이르는 진보는 좋으나 어두움과 죽음으로 이르는 진보는 나쁘다. 상식적으로 간단한 물음이다. 방향이 틀린 진보라면 이는 결단코 중단되어야 우리가 산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 내세우는 진보의 방향과 목적지가 어딘지부터 드러내라. 아무것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 보여 달라.

Mettern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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