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다리 긁기
icon 보은신문
icon 2001-08-11 12:43:57  |   icon 조회: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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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두메 산골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동네에서는 그래도 잘 사는 사람이었는데 서울에 꼭 가야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며칠 동안 서울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나 무서운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 코 베이는 곳이라는 등, 서울 사람은 남을 속이길 잘하니 또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서울 길을 떠났다. 며칠이 걸려 서울 문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은근히 시장기가 들어 무엇인가 요기할 것이 없나 두리번두리번 거리를 걷고 있는데 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시골 사람은 가게 앞으로 갔다.

여러 가지 물건이 놓여진 앞에 물을 담은 용기 속에 시골에서 먹던 송편보다는 조금 크고 마치 개피떡과 닮은 것이 잠겨 있었다. 이것을 본 시골 사람은 혼자 중얼거렸다. "참 서울 사람들은 희한하군, 개피떡을 물 속에 넣어 놓다니" 그러면서 맛이나 한번 보아야겠다고 주인에게 다섯 개를 샀다. 가게 주인은 물에서 개피떡 모양의 것을 떠서 종이에 올려놓고 종이 양쪽을 잡아서 시골사람에게 주는 것이었다.

시골사람은 그것을 손바닥으로 받아서는 쪼그리고 앉아 한 개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그런데 이것을 떡이 아니라 풀을 저며서 물 속에 넣어둔 것이었다. 결곡 시골 사람이 먹은 것은 떡이 아니라 빨래에 먹이는 풀을 사 먹은 것이다. 이 모양을 본 가게 주인은 어이없다는 듯 시골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고 금방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그런 모습이기도 했다.

시골 사람은 창피한 생각이 들어 얼른 그 자리를 뜨며 "서울 사람에게 속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단단히 속았군. 그게 개피떡이람"하고 쩝쩝 입맛을 다시는 것이었다. 그 날은 그럭저럭 서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날도 저물어 주막을 찾아들었다. 저녁밥을 시켜 먹고 나서 조그만 객방에 들었다. 잠을 자려고 이불을 깐 다음 옷을 벗어 둘둘 말아 허리끈으로 한데 묶어 베개삼아 베고 자기로 마음먹었다. 잠을 자는 사이에 도둑이 든다 해도 옷 보따리를 잃어버릴 염려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옷을 베고 누은 시골 사람은 그래도 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만약 곤히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 도둑이 들어 밑의 옷 보따리를 살짝 빼어 간다면 그냥 당할 것 같기만 했다. 그런데 이 때 벽장문이 있는 것이 보였다. 시골 사람은 벌떡 일어나며 "옳지 벽장에 넣고 고리를 걸면 되겠군"하며 옷 보따리를 집어 들고는 벽장문을 열고 벽장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고리를 걸고 다시 대님 끈으로 꽁꽁 고리를 묶어 놓았다. 시골 사람은 비로소 안심하고 잠에 푹 빠져들었다.

날이 밝고 밖이 시끌시끌할 때서야 시골 사람은 이불 속에서 빠져 나와 벽장문 고리를 맨 끈을 끄르고 문고리를 벗긴 다음 문을 열어 젖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벽장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보이는 것은 골목길뿐이었다. 넋이 나간 시골 사람은 한참 만에야 한숨 섞인 소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서울 사람이 용하긴 용하군, 밤사이에 벽장까지도 몽땅 뜯어 갔으니 말이야" 그러나 시골 사람이 벽장문인 줄 알았던 것은 골목길로 나있는 창문이었고 컴컴한 밤이라 창문을 열었어도 밖이 보이지 않아 골목길을 벽장으로 잘못 알았을 뿐인 셈이다.

결국 시골 사람은 옷 보따리를 밖으로 버린 셈인 것이다. 이렇게 옷까지 잃어버린 시골사람은 어떻게 간신히 볼 일을 보고 이번에는 싸구려 주막에 들었다. 밤이 깊어오니 길손이 자꾸 늘어서 한 방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다. 즐비하게 누워 있는 터라 잠이 들은 뒤로는 이 사람 다리가 저 사람 다리에 얹히고 저 사람 팔이 이 사람 가슴에 얹히는 따위로 서로 뒤엉클어져서 잠을 자는 것이다.

시골 사람도 그 틈에 끼어 얼마나 잤는데 다리가 몹시 가려워 와서 잠결에도 다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나 긁어도 긁어도 시원하지를 않았다. 자꾸 자꾸 다리를 긁었지만 가렵긴 마찬가지일 뿐 아니라 다리에 손이 닿는 느낌마저 없었다. 시골 사람이 긁은 다리는 자기 다리가 아니라 옆 사람이 걸쳐 놓은 남의 다리를 열심히 긁고 있었던 것이다.

(마로면 관기2리(사여리) 송재덕 남 44세)
2001-08-11 12: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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