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국에 들어있는 구렁이
icon 보은신문
icon 2001-08-11 12:14:50  |   icon 조회: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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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소금장수가 인포에 소금배를 정박하고 소금을 팔려고 창말(지금의 현리)를 지나 대동리(지금의 안내면 동대리)를 거쳐 쓰리재를 넘어서 보은으로 가려고 마음 먹고 소금지게를 지고서 쓰리재를 오르기 시작했다. 때는 여름철이라 날씨는 무덥고 소금짐은 무거운데 고개마져 가파라 죽을 지경이었다. 고개 정상에 올라 좀 쉬려고 하였더니 검은 구름이 감돌며 곧 소나기가 올 것 같아 쉬수도 없이 도룡이로 우선 소금짝을 덮은 뒤 비 피할 곳을 찾아보니 바위 밑에 은신 할 곳이 있었다.

소금지게를 바위 밑에 세워 놓고 소낙비를 피해 다행이었으나 비가 멎지를 않다. 소금장수는 비를 제일 싫어하기 때문에 오도가도 못 하고 바위 밑에서 겨우 비를 피하여 비가 멎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는데 날은 저물고 번갯불이 번쩍거리며 천둥소리 요란한 가운데 꼼짝없이 바위 밑에서 밤을 지새는 수 밖에 없었는데 날이 저물고 캄캄해서야 비가 멎더니 언제 비가 왔더냐는 듯시 구름이 걷히고 별이 총총한 밤이 되었다.

소금장수는 바위 밑 소금지게 옆에서는 자리가 좁아 잘 수 없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쌍분묘 사이에 도령이를 깔고 하늘을 지붕삼아 하룻밤을 자게 되었다. 소금장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인포에서 쓰리재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피곤하여 곧 잠이 들고 말았다. 소금장수가 잠을 자는데 남자가 말하기를
"오늘이 제삿날인데 어서 가서 자식들이 잘 사는지 살펴보고 잘 먹고 오구려" 하니까 여자가,
"가 보나마나 뚝갈맞은 며느리가 하는 것 뻔하지요." 하면서 제사를 먹으로 가는지
"나, 다녀 올께요." 하고 여자가 나가는 것이다.
"비가 와서 길이 험한데 조심해서 다녀 오구려" 하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리는데도 소금장수는 피곤하여 꿈을 꾸듯 그냥 자고 있었다.

소금 장수가 얼마나 잠을 더 잤는지 모르는데 남자가
"그래 제사는 잘 먹고 왔소?" 하고 물으니까 여자는 분이 덜 풀려서 씨근덕 거리며 앙칼진 목소리로
"마당에 들어서다가 빨랫줄에 목이 걸려 뒤로 넘어져서 부아가 나는 데다 탕국에는 구렁이가 들었고 밥에는 바위덩이가 들어 있어 목 먹고 왔수다." 하며 토라진 목소리로
"괘씸하여 손자가 아랫도리를 벗고 돌아다니기에 화롯불에 떠다밀어 버리고 왔오. 며느리가 죽은 조상제사는 먹같이 지내면서 제새끼는 귀여운지 닭다리를 찢어 날름 주기에 밉쌀맞아 그랬오." 하니까 영감이 노발대발 하면서

"이 망할 할망구야. 탕에 구렁이가 있고 밥에 바윗덩이가 들었으며 며느리가 잘못했지 손자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손자에게 벌을 주느냐?" 하며 할망구를 책망하니까
"죽은 조상은 푸대접하는 년이 제자식만 귀여워 하는 꼴이 밉살맞아 그랬오. 조상없는 자식 있답디까?" 하며 야멸하게 뇌까리자.
"아이구 망할 것들. 내가 살았을 때 외양간 기둥뒤에 오소리 기름을 병에 담아 걸어 놓았었는데 그것이나 찾아서 손자가 덴 곳에 발라 주면 좋으련만 철없는 것들이 그거나 찾아서 발라 줄지 모르겠네" 하면서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서 소금장수는 잠이 깼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도 없는 캄캄한 여름밤인데 하늘에는 별만 총총하고 덕대산의 소쩍새 "소쩍 소쩍" 하고 울었다. 소금장수는 꿈인지 생시인지 사방을 둘러 보아도 초저녁에 도룡이를 깔고 자던 묘의 봉분사이가 분명한데 늙은 영감 내외가 하는 이야기가 꿈결에 분명하게 들었다. 마을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모르나 새벽 닭 우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고 개 짖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소금장수는 잠을 설치고 날이 밝기만 기다리다가 속리산 천황봉 너머에서 아침 해가 밝아 올 때서야 소금짝을 지고 마을로 내려와 보은 땅으로 접어 들었다. 소금을 지고 마을에 내려 왔으나 식적부터 소금을 팔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이라 마을 가운데 소금을 내려 놓고 땀을 닦으며 아침 얻어 먹을 궁리를 하는데 식전부터 어느 집에서 어린 아이가 몹시 고통스럽고 대단히 아파 울고불고 하니까 아낙네들이 모여서 덴데다 "간장을 발라 주어라. 되장을 발라 주어라" 하며 왔다갔다 하는데 화상을 입은 어린 아이의 상처에 간장을 바르니 쓰라려서 아이는 더욱 죽겠다고 발버둥을 치면서 우는데 얼마나 악을 쓰며 우는지 곁에서 보는 이도 간장이 녹아 나는 듯 했다.

엄마가 젓을 물리로 얼러도 모두 소용이 없고 이웃 아낙네들은 물론이고 이웃집 남자들로 한마당 가득 모였으나 화상을 입고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울타리 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소금장수는 머리에 번 듯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어젯밤에 묘에서 잠을 자다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서 소금장수는 그 집으로 들어가 물었다.

"이 집에서 어젯밤에 제사를 지냈으냐?" 하고 물으니까. 낯선 사람이 묻는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경황 중에도 주인댁이
"어제 밤이 시어머니 제사는 맞는데 그걸 왜 묻소?" 하며 앞으로 나섰다. 소금장수는 맞구나 싶어
"주인 양반은 외양간 기둥 뒤에 있는 오소리 기름을 가져 오시오." 하니까
"아참, 내가 왜 그걸 생각 못했지?" 하면서 외양간 기둥뒤에 아버지가 걸어둔 오소리 기름을 가져다 불에 녹여 화상을 입은 아이의 상처에 발라주자 아이는 통증이 사라지고 젖을 물어 스르르 잠이 들자 마을 사람들이 이 낯선 소금장수가 어떻게 남의 집 외양간 기둥뒤에 오소리 기름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이 자총지종을 묻자. 소금장수는 어젯밤에 제사 상에 올렸던 메밥과 탕국을 가져 오라고 했다.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고 음복도 하기 전에 어린 아이가 화상을 입은 판이라 제사상을 치우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마을 아낙네들이 방으로 들어가 제사상을 그대로 마당에 내놓으니 소금장수는

"탕국에서 구렁이를 찾아 내고 메에서 방구(바위)를 찾아 보시오" 하니까, 좀 방정맞은 여자가
"세상 살다보니 별꼴을 다 보겠네. 탕국에 구렁이가 들고 메밤에서 방구를 찾으라니 별골이네."
"여기에 무슨 구렁이가 들었다고 하는지 내 두고 볼거여" 하며 젓던 수저를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번쩍 들자 두 뼘은 됨직한 여자의 머리카락이 수저에 감겨 나오는 것이 아닌가. 구경하던 마릉 사람들은 그제서야 혀를 내둘렀다.

여인이 또 메를 떠서 갱물에 말아 건져내고 보니 녹두 알만한 돌이 서너개나 있었다. 그러자 소금장수는 호기가 등등하니 하고서 "제사를 이렇게 모셨기 때문에 그 죄로 이집 아들이 벌을 받은 것이요." 하니까 모여 있던 아낙네들은 후들후들 떨면서 슬슬 소금장수의 눈치를 살폈고 남자들도 소금장수를 신기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소금장수는 호기에 찬 목소리로 음복술을 내오라 하여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지난 밤에 쓰리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 훠 조상모시기에 온 정성을 다하도록 이야기 하였더니 마을 사람들이 그 후부터는 조상님들 모시기를 잘하여 대성촌을 이루며 대대로 명문가를 이루며 잘 살았다고 한다.

(보은읍 죽전리, 송인성 남 56세)
2001-08-11 12: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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