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금돼지와 최치원
icon 보은신문
icon 2001-08-07 16:18:36  |   icon 조회: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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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옛날이다. 호주(湖州)라는 고을에 검단산이 있었고 이 산에는 금빛을 한 돼지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이 금돼지는 몇천년을 묵은 것이어서 온갖 조화를 다 부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돼지가 고을 원이 살고 있는 마을에 내려와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온 고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고을 원의 부인을 잡아가는 일이었다.

이 호주 고을에 새로운 원이 부임하기만 하면 금돼지는 사람으로 변하여 읍내에 내려와 어떤 술책을 써서라도 원의 부인을 납치해 가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원은 온 고을안에 방을 써부팅고 현상금을 내걸었으나 조화가 무궁한 금돼지의 행방을 알아 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소문은 호주고을은 물론 머리 서울까지 퍼져 사람들은 호주고을 원으로 가기를 꺼려하였고 혹시 임명을 받아도 병이나 집아느이 일을 핑계하면서 도무지 가려고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호주고을을 폐읍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을 원을 자청하고 나서는 사람도 없는지라 무척 고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데 마친 그때 아주 담력이세고 힘께나 쓰는 장수 한 사람이 호주 고을 원을 자청하게 되었다.

이 신관사또는 호주고을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고나속들을 불러놓고 금돼지의 행패에 대하여 물어 보았지만 어느 누구한 사람 속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원은 잠시동안 이궁리 저궁리를 하다가 관속들을 향하여 "듣거라,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가서 오늘 해지기 전까지 명주실 오천발만 구해 가지고 오너라"하고 명령을 내렸다. 관속들은 도무지 영문을 몰라 궁금하였지만 신관사또의 명의 지엄하므로 그날 저녁 때까지 명주실을 구해왔다.

그날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원을 명주실을 가지고 내실로 들어가 실 한끝을 자기 아내의 치마주름 끝에 단단히 매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의 곁에서 자는 체 눈을 감고 동정을 살피고 있는데 한밤 자정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옆에 누워서 곤히 자던 아내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려 살펴보고서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원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옆에 끼고 있던 명주실을 슬슬 풀어 주었다. 명주실은 계속하여 풀려 나갔다. 오천발이 다 풀리자 실은 더 당겨지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날이 밝자 원은 그 명주실을 따라 집을 나섰다. 그 실은 검단산 깊은 골짜기로 자꾸만 뻗어 나갔다. 한참 따라가니 명주실은 어느 작은 굴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원체 겁이 없고 담력이 큰 원인지라 컴컴한 굴 속을 조심조심 걸어갔다. 얼마를 굴속으로 들어가니 그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원은 몸을 꾸부리고 살금살금 더 들어가니 촛불이 보였고 불 아래 수십명의 여인들이 수심이 가득한 채 앉아 있고 그 중에 자신의 아내도 보였다.

원은 너무나도 반가워서 "여보"하고 부르면서 아내에게 뛰어갔다. 원을 본 아내는 깜짝놀라면서 "당신이 이곳에 웬일이십니까? 만약 금돼지에게 발각되면 큰 일이나 어서 돌아가세요"하였다. 그러나 굴 속에 들어온 사람이 신관사또라는 것을 알자 먼저 잡혀왔던 여인들이 구하여 달라고 애원하는지라 원은 궁리를 한참 하다가 "자. 여러분 이렇게 하십시다. 오늘 금돼지가 들어오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알아 보십시오.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는 당신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하고 단단히 다짐을 하고 있을 때 굴 입구쪽에서 금돼지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은 즉시 몸을 피하여 숨고 여인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돌아오는 금돼지를 맞아 들였다. 금돼지는 만족한 듯 코를 벌름거리면서 원의 아내의 무릎 위에 비스듬히 드러누웠다. 여인들은 시녀처럼 금돼지의 허리며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등도 두드리자 금돼지는 흡족하여 눈을 사르르 감았다.

그때 한 여인이 금 돼지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당신도 무서운 것이 있습니까?" 금돼지는 그 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물어 본 여인을 노려 보면서 "아니 갑자기 내가 무서워 하는 것은 왜 물어 보느냐"하고 벌컥 성을 내었다. 그러나 여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이제 우리는 당신을 평생토록 모셔야 할터인데 혹시 모르고 당신이 싫어하고 무서워 하는 것이 있다면 멀리하여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물어본 것인지 별 뜻이 없으니 노여워 하지 말아요." 하자 금돼지는 껄껄 웃으며 "아. 고맙소, 나야 세상에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소마는 다만 한가지 사슴가죽만 보면 무섭단 말이요"했다.

"아이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까짓 사슴가죽이 무엇이 무섭습니까?" 여인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자 금돼지는 "그런 소리 하지마라. 나는 사슴가죽만 보면 사지가 떨리고 정신이 아득하며 꼼작할 수가 없다"하면서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옳지. 저놈이 사슴가죽을 무서워 하는구나" 원은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사슴가죽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항상 허리끈에 차고 다니는 고을원 직인주머니였다. 정신을 차려 자세히 살펴보니 천만다행으로 그것은 사슴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원은 인장주머니를 들고 뛰어 나가면서 "이놈아, 네가 무서워 하는 사슴가죽 여기 있다"라고 소리쳤다.

금돼지는 사슴가죽을 보자 정말로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하여 금돼지를 처치하고 자기의 아내와 여인들을 구해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때부터 수개월이 지나자 원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어다. 금돼지의 새끼를 밴 아내는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원의 간곡한 위안과 만류로 그럭저럭 만삭이 돼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신라 때 유명한 문장가요,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보은군 산외면 대원리 여동골 마을 뒷산인 높이 767m의 검단산에 얽힌 전설이다. 이 산은 백제때 검단(儉丹)이란 중이 살았으므로 검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고운암(孤雲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바로 최치원이 공부를 하던 곳이었다고도 한다. 이 산줄기 중에 신선봉(神仙峰)이 있다. 즉 대원리 높은 지미 마을 뒷산으로 청원군과 보은구, 그리고 괴산군 3개군의 경계에 있는 산봉우리다. 이 봉에 검단과 최치원이 신선으로 변하여 주자 내려와 놀다 갔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다. 이 마을에 젊은 나무꾼 한사람이 도끼를 가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갔다. 나무를 한참 하다 보니 두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두는지 나무꾼은 도끼를 옆에 두고 정신없이 두 노인의 바둑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해가 서산 마루에 걸치자 두 노인의 바둑은 끝났다. 그리고 두 노인은 서로 손을 잡고 하늘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정신을 차리고 옆에 놓아 두었던 도끼를 집어들고 집으로 돌아갈 양 도끼를 찾아 보았더니 어느새 도끼자루가 썩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 왔으나 아내는 온데 간데 없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 살고 있었다. 하도 기가막혀 따져 보았더니 자신의 아내는 이미 50년전에 죽고 손자 내외가 아이들과 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무하러 가서 두 노인의 바둑구경을 하는 사이에 100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더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는 후부터 바둑을 둔 두 노인은 신선이 된 검단과 최치원이고 신선이 놀다 간 봉우리라 하여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은지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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