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 회남면 조곡리 2구 마을을 "麻田寺"라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 마을이 있는 곳에 마전사라는 절이 있었다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이 마전사는 세조대왕이 속리산에 오셨다가 서울로 돌아가실 때에 이 절에 오시어 며칠 계셨다고 한다. 세조는 이 절에서 옷도 빨아 입으시고 사슴사냥도 하였다고 전한다. 마전사가 마록사(馬鹿寺)라고 달리 불리는 것은 이와 같은 일이 있는 후부터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절은 간데 없고 절이 있었다는 곳에는 마을이 생겨 옛 이름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이 마전사 마을 앞 길가에 거의 반으로 갈라진 거대한 바위가 서 있는데 "벼락바위"라 부른다. 세조께서 이 절에 다녀가셨을 무렵이라 한다. 이 절의 주지승은 평소 열심히 도를 닦아 자신이 득도한 도술은 감히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하고 자부했고 세상에서는 당해낼 사람이 없다고 자신을 가질 만큼 도술에 능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절에 허름한 옷차림의 도승 하나가 찾아왔다. 주지승이 도승을 보니 눈빛이 찬란하고 온몸에 서리가 서려 있어 한눈에 보아도 보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지승은 이유없이 불쾌해졌을 뿐만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주지승은 이 도승의 재주를 시험해 봄으로서 자신의 자괴지심을 풀어 보려고 마음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주지승은 도승을 밖으로 데리고 나와 "소승이 평소 요술을 익힌 바 있으니 한번 구경을 하고 그대로 할 수 있으면 해보시 구려" 했다. 이에 도사는 "소승은 분시 탁발만 하였을 뿐 배운 것이 없어 어찌 대사와 더불어 도술을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겸손하게 사양을 했는데도 주지승은 말은 듣지 않고 말을 끌어온 후 사뿐히 등에 올라타서는 "보시오. 내가 저 앞에 보이는 바위에 말을 타고 올라가서 재주를 부릴 터이니 객승도 한번 해 보시구려" 했다.
그런데 도승이 주지승이 가리키는 바위를 보니 그 바위는 용좌바위로 용궁에 있는 용왕이 1년 한번씩 정월 대보름날 밖으로 나왔을 때 앉아 쉬는 자리였다. 도승은 크게 놀라 주지승의 말고삐를 잡고
"대사, 다른 재주는 다 하셔도 좋으나 저 바위 위에 올라가시는 일은 마시옵소서" 하고 만류했다. 주지승은 매우 아니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바위가 무슨 바위요?" 하고 물었다. "무슨 바위인 줄은 소승이 알 수 없으나 보기에 매우 신성한 바위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모르면 가만히 계시오. 쓸데없이 아는 체 하는 것은 도리가 이니요"하면서 주지승은 바위 있는 곳으로 말을 몰았다. 도승은 만류할 수 없을 알자 황급히 절안으로 도망치듯 숨었다. "보기보다는 겁이 많은 중이구나" 주지승은 중얼거리며 단숨에 바위 위에 뛰어 올라가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찢어질 듯이 들렸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졌다. 하늘은 다시 쾌청해졌고 서쪽 하늘엔 샛별이 유난히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절에 숨어 있던 도승은 비로서 밖으로 나와 바위 있는 곳을 바라 보았다. 참으로 보기에도 처절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과 말이 바위와 함께 벼락을 맞아 새카맣게 타버린 채로 두 동강이가 나 있었다. 도승은 두 손을 합장하여 주지승의 극락왕생을 빌며 조용히 그 자릴 떠나갔다. 그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중이 말타고 놀다가 벼락을 맞은 바위라 하여 "벼락바위"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