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끼리 맺어진 부부
icon 보은신문
icon 2001-08-27 17:04:41  |   icon 조회: 1209
첨부이미지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이 서 있는 부근 마을을 "진(陳)터"라 부르고 그 마을에서 동쪽으로 들어간 산골짜기를 "가마골"이라 부른다. 조선 제7대 임금이신 세조대왕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어려서부터 매우 슬기롭고 영리하여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그런데 세조가 김종서 등 여러 대신들을 죽이고 마침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딸은 몹시 안타깝게 여기면서 "부왕마마 왜 어진 재상들을 모두 죽이시나이까? 그리고 어린 임금이 가엽지 않으십니까?"하고 품의하였으나 세조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성삼문 등 충신들을 잡아 죽이고 어린 단종까지 영월로 내쫓은 후에 죽여버리자 공주는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간하였다. "아바마마, 어쩌자고 충신들을 그처럼 참혹하게 죽이시고 이제 죄없는 어린 상왕마저 살해하시나이까? 후세 사람들이 아바마마를 어떻다 하오리까? 참으로 너무 하시나이다"하고는 통곡했다.

이에 세조는 크게 노하여 "참으로 방정스럽고 괴이한 계집애다. 당장 끌어내어 사약을 먹여라." 이리하여 공주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는데 왕비 윤씨가 이 소리를 듣고 자식을 사라하는 모정에 차마 그대로 둘 수가 없어 몇 번이나 남편에게 매달려 살려 달라고 하였으나 세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생각다 못한 윤씨는 마침내 금은 패물을 한 보퉁이 싸서 유모에게 맡기고 어디든지 공주를 모시고 가서 숨어 살 것을 부탁하였다.

공주와 유모는 남복으로 변장을 한 후 눈물을 뿌리며 대궐을 빠져 나왔으나 구중궁궐 깊은 속에서 살던 그들에게 세상이 넓다한들 어디로 가랴? 그저 앞이 캄캄할 뿐이었다. 그들은 낮에는 숨고 밤이면 걸어서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보은땅이었다. 두 사람은 발을 끌다시피 하면서 걸어가다가는 큰 소나무 아래 이르자 공주가 "아유, 이제 더 못 가겠우 예서 쉬어 갑시다." 하고 털썩 주저 앉아 유모도 뒤따라 쉬고 있는데 마침 그때 나무꾼 한 사람이 나무를 한짐 지고 오더니 짐을 받쳐놓고 쉬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일시에 나무꾼에 쏠렸다. 이제 한 십칠팔세 가량 되어 보이는 준수하게 생긴 총각이었다. 나무꾼도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어디를 가시는 나그네 이시온지 매우 피곤해 보이십니다." 나무꾼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약간 의아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물었다. 분명히 차림새로 보아서는 남자임이 분명한데 젊은 나그네의 아리따운 얼굴 모습이라든지 중년 객의 목소리가 여성의 음성이었다.

나무꾼은 무슨 생각을 하였던지 "오늘은 날도 저물어 가고 또 여기서인가가 있는 곳을 가려면 한참 걸어야 하니 저희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같이 가시는게 어떠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두 사람은 그 말씨나 태도가 매우 공손하고 믿음직스러울뿐더러 더 가야 남의 집에서 자기는 매일반이라 총각의 뒤를 따라가 깊은 산중 숲속 바위 밑에 자리잡은 움집으로 안내되었다.

깊숙한 산중에 외딴집에서 가족도 없이 총각 혼자 살고 있는 것이 겁도 나고 의심도 적지 않았으나 워낙 총각이 공손하고 다정스러워 그 날 밤 총각이 지어다 주는 밥을 먹고 피로에 지친 몸을 쉬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으나 피로가 겹친 공주가 병이 나자 그들은 떠나지 못하고 그 움집에서 며칠을 더 묵게 되었고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에 두 나그네가 여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모는 총각을 불러놓고 "우리들은 본시 서울 대갓집 아녀자들이온데 큰 화를 당해 변장하고 숨어 다니는 중이옵니다. 이제 다행히 당신같이 좋은 주인을 만나 토설하는 터이오니 제발 숨겨주시어 목숨만 살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목 메인 소리로 호소를 하였더니 총각의 얼굴색이 순간 달라지면서 눈물이 글썽해지며 자기도 역시 화를 피하여 이곳에 살고 있는 길이라 하며 어차피 같은 처지이니 함께 지내보자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그들은 한 솥에 밥을 먹고 한 방에서 기거를 하게 되어 부지중에 젊은 남녀는 정이 들게 되었고 이성간에 무사할 수 없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을 가려서 맑은 냉수를 떠놓고 성례를 하여 드디어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되자 총각이 먼저 물었다. "당신은 대체 어느 댁 따님이시오? 우리 기왕 한 몸이 되었으니 숨길 것이 무엇이겠소?" 그리하여 공주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을 말하였다.

한숨과 눈물 속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신랑은 갑자기 일어난 공주에게 두 번 절을 하고 목메인 소리로 자기의 신분을 밝혔다. "처음부터 귀인이신 줄은 짐작했습니다. 참으로 이런 줄은 몰랐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절재 김종서 대감의 둘째 손자올시다 집안이 온통 망하고 가족이 모두 살해될 때 하인의 친절한 주선으로 도망쳐 나와 이곳에 숨어살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공주와 유모는 깜깍놀랐다. 그리고 형용 못할 야릇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원수끼리 맺어진 신랑신부, 그러나 젊은 그들은 한껏 정답고 단란하기만 했다. 실로 꿈같은 현실 속에서 꿈같이 세월이 흘러갔다. 몇 년이 흐르자 이들은 귀여운 아들 딸을 낳았고 차츰 경계가 누그러지자 값진 보물을 팔아 마을로 내려갔다. 거기서 집과 땅도 사고 그리고 뒷산 골짜기에 숯굽는 가마를 만든 후 숯을 구어 보은 읍내에 나가 팔기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런데 이 무렵 피부병이 든 세조 임금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명산 대찰을 찾아 기도를 드리는데 마침 속리산으로 행차하게 되었다. 이들이 사는 집은 속리산 초입 길목인 정이품송 근처 마을에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공주내외는 그때 여섯살 난 아들과 네 살짜리 딸에게 꼼짝하지 말라고 부탁하였으나 세조가 그 마을 앞 큰 소나무 아래 행차를 머물게 하고 쉬자, 동네 아이들은 웬 구경꺼리냐고 일제히 내달아 와서 구경을 하게 되자 이들의 어린 두 남매도 부모님의 타이름이 있었으나 어린 호기심에 그만 구경을 하게 되었다.

그때 세조가 무심히 아들을 내려보다가 맨 앞에 서 있는 어린 두 남매를 발견하였고 생김생김이며 차림차림이 다른 아이들과 훨씬 돋보이는 데다 모습이 어쩌면 옛날에 죽었던 자기 딸의 얼굴과 흡사했다. 세조는 측근신하를 불러 저 아이들의 집을 알아보도록 지시한 후 그 곳을 떠났고 지시를 받은 신하는 두 남매의 뒤를 따라가 집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세조는 평복을 하고 두 명의 신하만 거느리고 이 집 앞에 당도하여 물을 얻어 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신하 한사람이 물 한 그릇을 청하게 되었는데 공주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본 즉 부왕마마가 문 앞에 서 있는 지라 깜짝 놀라 뒷문을 통하여 숯을 굽고 있는 남편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아이들과 함께 산을 넘어 도망을 가고 말았다.

대신 조금 전까지 인기척이 있었는데 아무리 물을 청하였으나 대답이 없으므로 의심이 더럭 나서 문을 열어보니 뒷문이 열려 있고 사람의 흔적이 없었으므로 이는 분명한 역적의 무리라 생각하고 세조를 급히 모시고 돌아간 후 군사를 이끌고 마을에 진을 친 뒤, 군사를 풀어 아무리 잡으려 했으나 잡을 수 없었고 세조는 자신의 딸이 숨어살고 있음을 알고 천륜의 정이 쏠리었으나 차마 발설을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뒤부터 군사사 진을 친 마을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진터"라고 불렀고 숯을 굽는 가마가 있었다 하여 "가마골"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2001-08-27 17:04:41
211.172.145.5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