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斷腸)의 메아리

김홍춘(편집국장)

1996-02-03     보은신문
중국 낭송시대 유의경이란 사람이 촉나라로 삼협(三峽) 이란 곳을 지날 때이다. 수행원중 한사람이 배로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 왔다. 그런데 어미 원숭이가 그들의 뒤를 쫓아오다가 강물 때문에 길이 끊겨 따라오지 못하고 마냥 슬퍼 울기만 했다. 그러나 어미 원숭이는 언덕을 따라 배가 떠내려가는 방향으로 어디까지나 쫓아왔다.

천리남짓 이르는 곳에서 배가 슬쩍 언덕가까이로 다가가자 어미 원숭이는 잽싸게 배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원숭이는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수행원들이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너무나도 큰 슬픔 때문에 창자가 가닥가닥 끊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일컬어 단장(斷腸), 단장의 사연이라 말해왔다.

목민심서에는 관리는 백성을 자기 자식과 같이 사랑하며 기르라는 말이 있다. 자치시대를 맞아 이제는 우리의 손으로 수령을 선출하고 모든 살림을 위탁한 시대에 참으로 시원한(?) 소식을 접하였다. 전라남도 영광군은 오는 2천년대부터 우리 나라 전력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게될 영광원전 5, 6호기의 건축허가를 전격 취소해 3조 2천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대형 국책사업이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에 의하여 건축허가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취소된 것은 전국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문제가, 국가적인 손익과 관련부처간의 차후 법적 처리 문제는 차제하고 감히(?) 국책사업에 일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요구에 따라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우리도 한번 음미해 분만 하다. 사안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난 1월 16일부터 물전쟁을 치르던 산외면 이식리 일대가 현재까지도 불씨를 남겨놓은 상태이고, 학술적으로 지하수 개발은 삼사숙고해야 함이 입증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처하는 자치단체의 대응 태도가 영광군의 소식을 접하면서 허탈감이 드는 것은 자신의 자괴감일까?

여기에 덧붙여 군에서는 자체경영수익사업으로 구병산 자락에 속리산감로수라는 상표로 먹는물 생산을 추진중에 있다니 우리 후대를 위하여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수령은 고을의 백성에 대하여 진정 단장의 사연으로 대해야 하며 형식적인 정책은 위선을 낳고 위선적인 형식은 자만을 낳기 마련이며 자만은 논쟁과 시비를 부르기 마련이다. 곡학아세(곡학阿世)란 말인즉 신념 따위는 아랑곳 없이 세상의 속물들에게 추종하는 무리들을 말함인데, 이런류의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며 단장의 메아리를 기대해 본다.


<데스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