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구금회(보덕중학교 교사)
1996-01-27 보은신문
이제 너희들 기량을 마음껏 드높여라. 그들은 근대 산업사회가 키워놓은 경쟁원리라는 사자와 싸운다 우리는 가슴을 졸이고 박수를 치고 때로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된다. 아니 어른들이 인정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검투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이 수련과정을 다 견뎌내는 것은 아니다. 그들중의 몇몇은 그들만의 출구를 만든다. 대중 공연장의 오빠부대로, 연예인을 우상으로, 전자오락실의 우주전사로, 인터넷의 황홀한 눋의 역사속으로, 그리고 뒷골목의 떼강도로 부딪치면서 자아를 부정하고 또 그것을 찾기 위해 몸부림쳐 보지만 그들에게는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디서건 그들은 경쟁원리라는 사자를 피할 수 없다. 물론 선의의 경쟁의 논리가 나쁘다고는 hf 수 없지만, 힘의 지배논리가 관찰되는 경쟁의 원리는 불평등 구조의 약자를 딛고 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요즈음은 유치원에서조차도 힘의 지배 논리가 통한다고 한다. 처음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거의 매일 싸우고 터지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달 정도 지나면 영약스럽게도 아이들간에 누가 힘이 세고 누가 약한 지 어느정도 서열이 매겨지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싸움도 줄어들게 되고 평온(?)을 되찾게 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나 있음직한 힘의 논리가 그들 세계에도 염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무섭다고 한다. 뉴스의 강력 사진의 앞머리를 장식하는 것도 그들이고 청소년 비행문제가 사회의 제발전의 걸림돌인양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사회문제의 시발점이고 사회적 공기를 오염시키는 병원체일까? 그들의 어깨에 사회적 책임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워놓은 건 아닐까. 아이들이 어른의 아버지라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우리사회의 거울이라 할 것이다.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면 어른드르이 얼굴이 바르지 않다는 표상일 것이고 그들의 교육환경이 어둡고 절망적이라면 우리 사회의 장래 또한 순탄치만은 않은 증거일 것이다.
별을 보고 우주적 삶을 등경하고 별자리를 보며 삶의 지도를 그려가는 청소년 시기는 분명 아름다운 시절이다. 분명 그들은 기성세대가 그어놓은 삶의 자리에 안주 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가치,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간다. 그들을 다그치지만 말고 좀 더 여유를 주자. 그리하여 그들의 씩씩하고 아름다운 전진을 지켜보자.
<생각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