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도 이제는 미덕"

김 혜 숙(보은농협, 내북지소 부녀복지과장)

2001-08-11     보은신문
지난 봄철의 유래없는 가뭄을 잘 극복해낸 들녘이, 보기에 너무 아름답고 가슴 뿌듯하여 나도 모르게 논두렁 사잇길을 따라 마냥 걷다보니 어린시절 농촌의 풍경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간다. 겨울철이면 춥기도 몹시 추웠지만 눈은 왜 그리도 많았던지. 경칩을 지나 양지쪽 언덕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 꽃을 피우는 봄에도 산깊은 응달엔 얼음과 잔설이 남아 있었지 않았던가.

얼음이 풀리고, 힘없이 무너져 버린 논두렁을 퍼올려 고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고 농부들은 풍년농사의 꿈에 부풀어 고단함도 잊은채 이웃끼리 품앗이로 어려운 농사일을 거뜬히 해냈던, 참으로 정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던것 같다. 장마철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가고나면 논 한가운데서 울어대던 뜸부기 울음이 농촌의 한가로움을 더해주고, 맹꽁이 소리 지루한 장마구름 걷히고 나면 하늘은 어느새 고추잠자리가 맴도는 가을이다.

장독대밑 맨드라미, 백일홍이 한껏 몸자랑을 하고 허수아비가 참새를 쫓기 시작한지 한달여쯤이면 또다시 품앗이 벼베기가 시작되고, 휑한 벌판에 메뚜기떼 부산스러울 때면 소등에 질마걸어 볏단을 산더미 처럼 싣고 집으로 나르던 모습들. 마당 한구석에 자리잡고 높아만지는 볏가리는 어린 마음에도 설레임에 잠을 설치곤 했다.

밤잠을 설치신 것은 부모님도 마찬가지 셨던지 내가 밤새 설친 새벽잠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에 타작을 시작하셨다. 채통 소리가 아롱아롱 힘차게 돌기 시작하고, 도리깨질 소리며 계상에 볏단 패는 소리가 점점 흥겨워 질수록 볏가리는 낮아지고 마당 한 가운데 모래성 처럼 수북이 쌓이는 낱알들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얼마나 흐뭇하였던가!

가을 짧은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하면 풍구에 낱알을 날려 알곡만을 뒤주에 퍼붓고, 텅빈 뒤주가 알곡으로 가득 채워질때면 이세상에 우리집이 제일 부자인 것만 같았던 시절.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 역사에서 쌀을 빼놓고는 그 무엇을 말할수 있을까? 시골 장정들이 3일을 죽자하고 품을 팔면 쌀 한말의 품삯을 받았고, 도시 유학길에 오른 장남의 하숙비며, 학비 모두가 쌀로 계산되던 그 시절은 쌀이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주식도 쌀 이요 농업의 주곡도 미작이 아니였는가! 농촌이 도시의 뿌리라면 벼농사는 농촌 농업의 뿌리라 할수 있겠다. 오천년 역사 이래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쌀”. 지금까지 우리나라 모든 경제의 주체로서 경제 정책에 기준이 되어 왔던 쌀이 언제 부터인가 그 자리를 잃고 홀대 받고 있는것 같다.

몇년전만 해도 7∼8월 이면 미곡처리장 수매곡이 동이 나고 정부 양곡 공매에 참가하여 원료를 매입, 도정하곤 하였는데 금년엔 아직도 절반이나 남아 있는 수매곡을 처분하기 위하여 농협의 전 임직원이 쌀 판매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다. 직원들 가정 마다 쌀을 가져다 쌓아놓고 가족들 까지 내세워 주문을 받는가 하면 친·인척 및 친구 또한 출향인사들을 찾아 고향의 쌀 판매에 적극 협조하여 줄것을 호소 하고 있다. 이처럼 쌀 소비가 부진 한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우리의 식생활 문화가 바뀌어 가고 있는 탓이 아닌가 싶다.

도시의 20∼30대 가정의 대부분은 아침식사를 빵과 우유로 대신하고 중고등학교 여학생 절반이 아침식사를 거른다고 한다. 이러한 식생활 문화가 정착이 된다면 우리의 경제 사회·문화 모든 분야에 큰 변화와 영향을 줄 것이다. 특히 농업의 주작인 벼농사에 미치는 영향은 그야말로 농업기반을 뿌리채 흔들어 놓는 결과를 보일것은 눈에 보이듯 뻔한 노릇이다.

이제는 쌀 소비도 미덕인 시대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멀지 않았던 지나날 “보리혼식”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분식먹는 날이다 하며 혼분식을 장려하고 매일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하던 시절이 얼마나 되었는가! 이젠 그 반대로 쌀 소비 촉진 운동을 적극 펼쳐 나가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들어 눈길이 닿은 가까운 논 한귀퉁이엔 벌써 금년 풍년농사를 알리는 성급한 벼이삭이 군데 군데 고개를 살포시 내밀고 있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