狐死首邱(호사수구)
이 달 홍(삼승, 달산) 재부 보은군민회 총무, 외국어학원장
2001-07-21 보은신문
생사를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몇 십년 만에 서로 만나 얼싸안고 울부짖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감동하는 장면을 보고 그는 "そんなに 感動的で うわしいですか。"(그렇게 감동적으로 기쁩니까?)라고 한마디 던졌다.
조상 중에서 할아버지 이상은 잘 모르며, 알 필요도 없다는 그네들, 고향이나 혈육을 우리만큼 동경하고 그리워하지 않는 그들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고향은 뿌리요, 생의 원천이요, 그리움의 대상이요, 언제나 가고픈 곳, 또 향수 어린 곳이며, 생을 마감할 때는 돌아 가고파 하는 마음의 안식처이다. 고향 선산에는 선조님 들이 잠들어 계시고, 부모형제 또는 친척들이 살고 계시며, 학교 선후배 그리고 어릴적 죽마고우(竹馬故友)들이 고향을 지키고 열심히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며, 언제나 포근히 맞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교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오카사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동안, 고향사람을 찾아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숫적으로는,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 다음이 충청도 출신 교포 들이었으며, 그중 한 분이 옥천 청산이 고향이며, 어릴 적에 건너와서 고향소식을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내가 수소문하여 사촌동생을 찾아준 적이 있는데, 그 고마워하는 모습에서 흐뭇한 정과 충청도 사람들의 다정다감함을 또 한번 깊이 느껴본적이 있다.
귀국하여 부산에서 생활하며 도민회, 군민회, 면민회, 동문회등 고향모임이라면 빠짐없이 나가는 가운데, 어느 날 도민회 석상에서 "충청도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報恩사람을 만나면 좋아서 정신 못 차리는 타고난 성격"이라고 했더니 큰 박수로 격려 받은바 있다. 출향인 가운데 어릴 적에 고향을 떠나, 천리타향에서 모진 세파에 시달리며 삶을 영위하여, 자수성가한 선배 한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몸은 멀리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항상 가고플 때 갈 수 있는 내 고향, 속리산 자락의 報恩이 있고, 건강하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고향 어른들의 걱정과 염려, 그리고 간곡한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성공담을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고향을 지키고 가꾸어 가는 여러분들에게 항상 감사를 드린다. 고사성어에 호사수구(狐死首邱), 혹은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는 자기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는 말로써, 근본을 잊지 않음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고향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에 앞서, 내가 고향에 대하여 무엇을 해주어야 되겠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싶다. 너무 큰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자기의 여러 가지 능력에 맞는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산다는 것은 항상 주고 받는 것이다. 서로 말을 주고 받고, 정과 사랑을 주고 받고, 금전과 물질을 주고 받는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며 고독해서 못 산다. 주기만 하고 받지못하면 마음이 섭섭하고,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면 마음이 괴롭다. 불교에 布施라는 말이 있다. 베 포, 베풀 시 字로 보통은 포시라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보시라고 읽는데, 무량수경(無量壽經)의 포은시혜(布恩施惠)에서 나온 말이다.
뜻은 탐욕이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향에서 많은 것을 받았기에, 능력대로 되돌려 주려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책 가운데 "세 가지 의문"이라는 책이 있다. 세 가지 의문이란 무엇일까? 톨스토이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냐, 둘째, 가장 필요한 인간은 누구냐, 셋째,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냐, 이 물음에 저자 자신은 다음과 같이 답을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이다. 왜냐? 인간은 현재라는 시간만을 지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필요한 인간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다.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일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바로 분간하는데 있다. 우리는 최고의 도덕가치를 선이라는 것에 둔다. 도덕적이라 할 때는 선을 행하려는 것, 바른 길을 밟으려는 것, 의롭게 살아가려는 것을 보고 이르는 말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고향에서 여러 가지로 받은 고향 報恩이 있었기에, 40여 년간이나 타향에서, 또 외국에서까지 생활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연어가 바다를 돌며 살다가도 마지막으로 고향인 하천으로 돌아오며, 狐死首邱 라는 고사성어를 되새기며, 고향에서 시작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삶의 섭리대로, 현재 종사하고 있는 평생교육의 하나인 외국어교육을, 국제화 시대에 즈음하여, 고향에서 무료로 일본 격언인 "今日が 暮たら 明日は あるが 今日のこの日は まう歸らない。" 오늘이 저물면 내일은 오지만, 오늘의 이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즉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뜻을, 후학들에게 깊이 있게 강의하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이며 머지않아 이루어지기를 기도해본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