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가! 연송의 슬픈 노래소리가…

최 동 철(전 언론인/ 산외면 장갑리)

2001-06-23     보은신문
요즘 들어 속리산 연송의 슬픈 노랫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옵니다.
600여년을 살아오면서 볼 것 못 볼 것 모두 봐왔으니 하고 싶은 말도 무척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연송이 60년정도 살았을 때 나이가 엇비슷한 조선 임금 세조가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연송은 당초 조카를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세조의 과거사를 나뭇가지로 길을 막아 꾸짖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늙고 병든 인간 세조를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어 길을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조는 이를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고 '소나무조차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다'며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2품의 벼슬을 내렸습니다.

연송은 이로 인해 유명해졌지만 인간들 하는 짓이 너무 어이없어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들은 맹목적이든 뭐든 간에 자신에게 충성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보은군내 공직사회에서도 안동수 전 법무장관 같은 해바라기성의 충성파는 곳곳에서 쉽게 눈에 뜁니다.

그들은 보은군 발전에 고심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윗사람의 눈에 들까를 노심초사하며 밤새워 고민하곤 합니다. 한자리에 묵묵히 서서 600여년을 살아온 연송으로서는 이런 인간들의 행태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채100년도 살지못하는 인간들이 서로 아옹다옹하는 모습이 재밌다기 보다는 측은하다는 것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오가는 것을 숱하게 보아온 연송은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듯 했습니다. 시인답지 않은 시인이 정치인처럼 자신을 내세워 시인들을 망신시키고, 승려답지 않게 법주사 인근 불야성을 방문해 식욕과 주색을 탐하는 일부 땡추들의 행각이 슬프다고 연송은 노래합니다. 정치인들의 끝없는 당리당략적 소모성 정쟁과 1년 앞으로 다가온 선거의 승리준비에만 골몰하는 일부 선출직 지도자들의 위선과 무능력 그리고 자꾸만 뒷걸음치는 보은군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안타깝다고 연송은 노래합니다.

병자호란으로 이 땅에 '화냥년'이 생긴 것과 임진왜란과 보은동학농민혁명으로 외세에 의해 민중이 처참하게 학살당한 것이 슬펐고, 일제 강점기 '종군위안부'를 비롯해 6.25동란으로 인한 민족상잔 등이 이 땅에 태어난 연송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고 합니다.

6세기 동안 슬프게만 살아온 연송은 그러나 류시화의 '나무는 자살을 꿈꾸지 않는다'는 시처럼 죽어 버릴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기나긴 세월을 견뎌야만 했던 연송은 이제서야 수명이 다해 그냥 잎을 버리고 죽을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사는 연송에게 있어 일종의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만한 인간들은 이마저도 제멋대로 하고 있습니다. 대자연의 이치가 모든 생명은 때가 되면 죽는다는 것인데 인간들은 링겔주사를 놓거나 장가를 보내 씨를 받아 내겠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더구나 나뭇가지를 볼썽사납게 흉측한 쇠파이프로 받쳐놓아 자연스럽게 죽고싶은 연송을 더욱 슬프게 합니다. 그래서 한 밤중 주변이 조용해지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눴던 연인들의 흐느낌처럼 연송은 조용히 노래를 부릅니다. 수세기 동안 지켜보았던 인간세계의 부귀영화 부질없는 인생사를 가르침처럼 들려주는 것입니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