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도 애가 잦는 이 가뭄을
조 원 진(농업/보은읍 강산리)
2001-06-09 보은신문
못자리를 만들고, 고추며 잎담배 등 모종들을 정성 들여 키워내서 봄 가뭄 중에도 그럭저럭 밭에 옮겨 심고 애타게 비를 기다렸다. 벌써 석 달 째 타들어 가는 농민들의 가슴은 아랑곳없이 바닥을 허옇게 드러내고, 마치 시신처럼 길게 드러누운 개울가에는 야윈 여뀌풀 무더기만 따가운 햇볕아래 흔들리고 있다. 지금쯤 한창 윤기 흐르며 자라야 할 길가의 잎담배와 고추들은 더께로 앉은 흙먼지에 숨이 막힌다.
한바탕 비가 쏟아져서 저 답답한 흙먼지라도 세수 시켰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하늘은 점점 높아만 간다. 그래도 큰 개울이 있는 들녘은 좀 형편이 나아서, 일찍 모를 낸 논에는 벌써 어린 모가 땅내를 맡아 퍼렇게 어울리는데, 오월 한 달이 다 가도록 천둥지기에 모 한 포기 꽂아보지 못한 농민들은 애가 잦아서, 먼지 나는 개울 바닥을 해부하듯 파헤쳐 보지만 땅속에도 물이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어서, 말라붙은 개울바닥에 혈관처럼 수십갈래의 호스를 깔아놓고, 곧 숨이 넘어갈 듯 꾸룩거리며 몇 모금 고인 물을 퍼 올리는 양수기를 향해 잰걸음을 놓는 농부들의 신발바닥에서도 푸석거리며 연기가 나는 듯 하다.
그러던 마을에 물이 올라왔다. 몇 년 전에 군에서 가뭄에 대비하여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큰 개울가에 양수장을 설치했다.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2단계 양수를 해야하는 어려운 시설이다. 그러나 퍼 올리는 물의 우선권이 개울과 가까운 아랫마을에 있기 때문에, 아래들녘의 모내기가 끝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려야 했다.
물이 아예 없을 때에는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의지가 되었는데, 언제 그칠지 모르는 그 링겔 주사액 같은 물이 올라오면서부터 사람들의 눈에는 핏발이 서고 살기가 돌았다. 차례가 되어 자기 논에 들어가는 물소리를 듣는 사람은 겨우 숨통이 트이고 화색이 돌지만,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물을 가지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피가 마르는 일이었다.
물꼬싸움에 살인난다는 옛말이 실감되었다. 이렇게 기약도 없는 가뭄의 고통 속에서도 현장을 함께 뛰면서, 아픔을 같이 나누려는 우리지역 군의원과 행정기관 관계자들의 노력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연례 행사처럼 치르는 가뭄에 대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여 주시길 부탁드린다.
우리 고향마을 산외면 장갑1구 남악리는 옛부터 물이 퍽 귀한 마을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마을의 작은 계곡아래 저수지 기초공사의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마을 원로들의 말씀으로는 일제말엽에 착공했다가 일본 사람들이 떠나면서 중단된 것이라 한다. 그만큼 저수지의 축조는 마을 사람들의 오랜 숙원이다.
고통의 당사자인 주민들이 노력할 몫도 적지 않겠지만, 고통의 현장을 함께 지켜본 군의원과 관계자들께서는 이 기회에 그 오랜 숙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러한 노력과 정성이, 깨끗한 표를 기꺼이 던져준 주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