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권리를 위한 NGO 시대
조 원 진(농업/ 보은읍 강산리)
2001-05-12 보은신문
장판도 귀하던 시절 낡은 돗자리 위에서 뒹굴며 자란 우리는 자리 가시가 몸에 박혀 종기를 많이 앓았는데, 어느 해 방학이 되어 시골 외가에 놀러온 서울친구의 그 뽀얀 피부에도 어김없이 종기가 생겼다.
할머니께서 갖은 약을 구해와 지성으로 발랐으나 점점 땡땡하게 곪아 가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곪자 할머니는 종기의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며 상처를 정성스럽게 입으로 빨아 썩은 고름을 뱉어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태연할 수가 없는 표정으로 몇 차례 더 고름을 빨아내고 고약을 붙여주었다. 그랬더니 며칠 후 신기하게도 새 살이 돋아나고 상처가 아물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이미 뿌리가 깊이 내린 종기처럼 곪은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 것 같다. 정치가 그렇고 기업이 그렇고 사회 곳곳이 그렇다. 곪아서 터지면 그 뿌리를 뽑아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생각은 않고, 그저 흐르는 피고름이나 닦아내고 소독약이나 슬쩍 발라 덮어놓는 식의 안이한 생각들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썩은 냄새에 지친 사람들은 아직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믿고 교회와 절을 찾아가 헌금과 시주를 받친다.
그러나 선교와 사회봉사에 쓰여야 할 그 귀한 돈은 교세 확장에나 아낌없이 쏟아 부어, 비대해진 대부분의 교회는 그것이 사유재산인 양 자식들에게 세습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면서 세속의 부패를 비웃고 있다는 보도를 종종 접하면서 입맛이 쓰다. 상가(喪家)마당의 화톳불 가에나 혹은 어느 술좌석에 둘러앉아 얼큰해지면, 우리는 세상의 부정과 부패에 대하여 열을 올리며 분노하고 성토한다.
그러나 대안 없는 목소리는 아무리 크게 외쳐본들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지고 말뿐이다. 그렇게 허공에 흩어지는 목소리들도 한데 모이면 여론이 되고, 이것이 더욱 굳게 뭉치면 바로 막강한 힘이 되는 것이다. 사회의 부정과 부패는 그 누가 척결해주는 것이 아니며, 시민의 권리도 그 누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굳게 뭉쳐진 힘으로 피땀 흘려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숱한 역사를 통해서 보아왔다. 바야흐로 NGO 활동의 시대다.
활기찬 사회를 위하여 각종사회봉사 단체나 친목단체들의 활동도 중요하다. 아울러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부패하기 쉬운 사회를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할 각 분야의 건전한 시민연대의 활동도 간절히 요구되는 때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누가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노예 근성에 젖어 안주하고 있을 때 사회의 부정과 부패는 더욱 창궐하고, 그 피해는 곧바로 우리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다함께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본란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정이품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