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한류열풍 일으킨 선구자 윤 등 용 사장(보은 대야)

베비이복스 소속, 중국에 회사 설립 

2001-09-08     송진선
한중 문화교류에서 우위를 점해 중국은 한류 열풍으로 들끓고 있다.

베이비복스, 안재욱, HOT, NRG 등을 보기위해, 악수라도 한 번 하기 위한 중국 팬들의 환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들은 절대로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지 않아 한국어를 배우게 하고 한국에 대해 공부하는 기회를 갖게 한 외교의 첨병이다. 외교통상부나 산자부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한국을 중국에 알리고 대기업에서 제품을 팔기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시장을 공략한다.

일례로 안재욱의 중국 콘서트를 협찬한 삼성전자는 중국시장을 잠식한 일본 소니를 누르고 판매 1위를 차지했고 베이비복스 작년 공연을 협찬한 엘지상사가 낙타가 바늘구멍 처럼 뚫기 어려웠던 중국시장을 베이비복스 댄스 음악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에 의해 금방 공략되는 것에 놀래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

이같이 중국에 한류열풍을 불게 한 선구자는 바로 우리 보은인인 윤등용(44, 보은 대야, 아랫대미)씨로 그는 베이비복스가 소속된 회사의 사장이다. 97년 베이비복스를 픽업했을 때는 IMF로 음반시장이 침체되고 인터넷 발전으로 음악을 다운받는 등 제작사들의 수입이 급감했다.  

별 수 없이 손을 털었다. 해외시장 진출이 아니면 국내에서는 어렵다고 판단, 그때부터 한국시장에서는 먹히지 않았던 팝음악을 적용한 곡을 만들고 98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노크했다. 사물도 가르치고, 택견도 가르치고 각종 악기도 다루게 하는 등 철저하게 해외용으로 만들어갔다. 첫 시험무대가 중국. 중국시장 노크를 위해 윤사장은 한 달에 한 번이상 중국을 방문할 정도로 드나들어 중국 공안에서 감시하는 요주의 인물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북경대에서 한국인 유학생에게 통역을 요청 중국 정부를 찾아다니며 중국에서 공연기획을 하는 등 사업을 전개했다.

그렇게 하기를 3년. 철저하게 준비한 끝에 중국에서 재 탄생한 베이비복스는 지난해 계림시가 속한 광서 자치구의 민간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중국 CF시장에도 진출 1억5000만원이 개런티를 받았으며 올해 5월에는 베이비복스가 중국내 음반 관련 잡지사에서 인기도를 조사한 결과 1위를 차지하는 등 한류열풍을 강하게 일으키고 있다.

베이비복스는 8월31일 한중 수교 9주년 기념 상해 공연에 참여한 것은 물론 9월26일에 다시 상해, 27일 심양공연 등 올해 연말까지 중국 공연일정이 꽉찼다. 이밖에 대만, 베트남, 일본에서의 공연일정도 잡혀있어 윤사장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처음에 베이비복스가 중국에 진출했을 대만 해도 중국 정부에서는 한국을 자기들의 속국으로 생각하고 별 견제를 하지 않았으며 한류열풍이 처음 일 때도 그러다 말겠지 했었지만 지금은 크게 견제하는 입장으로 급선회했다. 지금은 사전 공연허가를 받기가 까다로워졌다.

일본은 문화관련 부처에서 입국 수속 등을 밟아주고 연예인들은 활동만 하면 되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개인들이 고생고생한 끝에 겨우 일궈놓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정부가 이제서야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윤사장은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체계적으로 한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중국에 중국정부와 합작사인 회사를 설립했다.

중국에서의 공연, 광고, 신인가수 선발 등을 맡게 되는데 중국에서 신인 가수를 선발해 한국스타일로 만들어 중국의 HOT, NRG로 키운다는 것.

이밖에 꼴찌였던 중국 중경의 축구팀을 1위로 끌어올린 우리나라 출신의 이장수 감독이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려 윤사장은 한국의 대중음악과 축구라는 새로운 win win 전략도 수립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 아시아계에 한류열풍을 확산시키는 윤사장이 연예계와 손을 잡은 것은 7축구 청소년 국가대표(78년)까지 지내다 인대가 끊어져 선수생활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스포츠의류 유통 관련 사업을 하다 89년 연예인 축구단에서 활동하는 가수 최백호를 만나면서 부터다.

최백호씨의 매니저 일을 하다 90년 김태욱의 음반을 제작하고 빛과 소금, 쟈니윤쇼 밴드 등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했으나 가수는 뜨는데 음반을 팔리지 않는 등 좋은 결과를 얻지못하고 정말 알거지가 될 정도로 망했다.

그러다 만난 것이 베이비복스다. 지금은 베이비복스 외에 남자 5명으로 구성된 PLT, 남자 4명인 A4를 데리고 있다. PLT도 SBS에서 20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군시절 위문편지로 만난 사이인 부인 김금선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윤사장은 한달에 한 번 집에 들어가기도 바빠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집안의 대소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형제들과 대야리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에게도 늘 죄송하다고.

이 인터뷰도 중국 계림에서 우연찮게 합석이 돼 이뤄졌다. 몸은 하나고 할 일은 많은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