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읍 월송리 이상목씨
『원남참전 후유증 치료 원해』, 십여년을 함께 해온 원인모를 고통
1993-06-19 보은신문
화상치료약이 염증이 아물게 해주는 듯 했으나 또 다른 곳에서 불쑥불쑥 염증이 생겼다.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으며, 가끔씩 머리도 혼미해져 서너달 입원치료도 받았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시골이에 살다보니 고엽제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상복씨는 "더구나 당시 함께 월남으로 건너갔던 전우는 보은에서는 없고 부산과 제주에만 2명이 있어 연락이 끊긴지도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상목씨가 고엽제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였다. 몸에 나타난 증상이 아무래도 고엽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대한 해외참전전우회 군지부(지부장 류관형)의 회원들을 만나 고엽제 문제도 상의해 보았다. 고엽제 피해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이렇게 1년이 지난 지난 14일 이상목씨는 청주병무청을 찾아갔다. 일반적인 군생활기록은 모두 있었으나 월남참전기록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다른 일부 참전전우들의 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이상목씨는 전우회의 도움을 받아 청주 병원에서 진단서를 작성하고 상처사진도 찍어 정확한 검진, 치료를 위해 도지회에 서류를 제출한 뒤 많은 의문만을 안은 채 돌아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치료와 보상이 이루어 진다고 했으나, 이상목씨가 고엽제 검진을 받을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이다. '80년 수해때 가지고 있던 전우들의 사진과 전쟁기록 등 모두를 잃어버렸고, 남은 것이라곤 썩어들어가는 몸과 왼쪽 어깨에 확연하게 새겨진 백마와 66.9.20이라는 파란 문신뿐. 남의 땅을 빌려 벼농사와 양잠을 하고 영세농가로 지정돼 정부양곡을 지원받고 있는 이상목씨. 부인과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오늘도 잠실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 한때 월남의 정글을 헤쳐가던 씩씩한 병사의 모습이 겹쳐진다.
<금주에 만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