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문화유적 보존대책 시급

예산 및 인식부족으로 방치된 비지정 문화재…지방유형문화재 지정으로 보존관리에 힘써야

1993-05-15     보은신문
군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각종 문화유적이 훼손된 채로 방치되어 있는가 하면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많은 문화재에 대한 보존관리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역사적 가치가있는 비지정문화재를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 보호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들 비지정문화재에 대해서는 보호관리 예산이 전혀 책정되어 있지 않아 비지정 문화재를 지방 유형문화재로 지정, 일부 변형되고 파손되어 가고 있는 문화유산을 원형대로 보존 관리하여 선조 들의 얼이 담긴 귀중한 문화유산을 후세에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이에 군은 상현사 등 10개의 비지정문화재를 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지난 10일 도에 신청, 문화재 지정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우리 보은은 지정학정학적 특수성으로 산간내륙지역에 위치하여 민족적 정기가 전통으로 흐르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 그에 따른 많은 유물 유적들이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격조높은 문화예술 창달을 군정방침으로 세우고 있다지만 그에 맞춘 문화재 보호관리가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 군내에는 1백37개 유적과 60개의 유물 중 유적 15개, 유물 11개만이 국보나 보물, 지방유형문화재 등으로 지정되어 제대로 관리되고 있을 뿐 이를 제외한 비지정문화재의 경우 전혀 보호관리의 손길이 닿지않아 자칫 훼손으로 인해 역사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중 법주사 등 사찰소유로 되어있는 것을 비록 비지정문화재라 할지라도 관광자원 차원 등의 이유로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만, 종중이나 개인소유로 되어있는 많은 문화재들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고 보호관리가 안된 체 퇴색되어 가지고 있다. 지난해 처음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지키고 충효열행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도비와 군비, 자부담을 포함한 4천9백60만원을 투입, 16개의 정려문을 보수했지만 정려문 20개중 16개만이 보수했을 뿐이고, 정려문 외의 문화재에 대해서는 수년간 손도 대지 못한 형편이다. 효자문, 열녀문, 묘각, 부조묘, 서원, 산성, 영당, 비석, 암자, 석탑, 탱화 등의 비지정문화재는 조상의 업적과 행적을 기리고 그 역사적 가치를 후대에 잇기 위해서 문화재를 원형대로 보존시켜야 한다.

당초 문화재 관리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문화재로 지정되었을 때에만 예산이 책정돼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는 만큼 지방유형문화재 지정이 시급한 실정인 것이다. 문화재관리 예산의 부족으로 효율적인 보호관리를 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지만 주민은 물론 사유로 되어있는 문화재관리 후손들마저 고증자료를 제대로 남겨놓지 못하고 있는 데다, 그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인지하지 못한채 허술하게 방치시키고 있는 것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관리보수를 무조건 판에만 의존 하려는 의타심이 더욱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제대로된 안내간판 하나 없이 단청은 퇴색하고 기와는 떨어져 나간데다 기단마저 무너져 붕괴우려가 있는 것이 허다한 실정인데, 문화재 관리보수에는 전문관리가 필요한 까닭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고, 문화재 지정으로 도비가 지원된다고 해도 군비부담이 커 제대로 된 문화재관리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에 관계기관은 물론 의회에서도 문화재 보호관리에 대한 관심이 촉구되고 있는 가운데, 과거를 통한 오늘의 접맥은 미래를 향한 발전의 밑거름이 됨을 인지하고 우리의 뿌리는 우리가 지키고 아낀다는 측면에서 종중은 물론 주민 모두가 발벗고 나서야 하고 이에 관계부서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최근 군에서 역사적 가치순에 따라 10개 비지정문화재의 문화재지정을 도에 신청했는데 이를 사례별로 살펴본다.

상현사
회북면 애곡리에 소재해 있는 상현사는 고려의 명신인 역동 우탁, 적성군 우길생, 양호당 우현보 3대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조선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래 목조와가로 건립했었던 것을 중창시에 석즙으로 개수하였다가 1985년 지방비 보조로 와즙으로 중건돼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금화사와 계당
삼승면 선곡리에 있는 금화사 및 계당은 1815년 창건돼 삼지 최운, 대곡 성운, 남명 조식, 동주 성제원, 계당 최홍림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항하였으나 1871년에 철폐되었다가 1917년에 보수하였다. 계당은 최홍림이 을사사화 후 이곳에 은거하여 세우고 성리학을 연구하던 강당으로 1764년에 중건돼 유생들이 강학하던 곳이며 현재는 금화자 제향시 제관들의 숙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회인현감 객사와 부속채
회북면 중앙리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 회인현감이 거처하던 관아로서, 건립 년대는 미상이며 본채와 별채가 있고 별채는 관기가 거처하던 곳이다. 원형은 많이 변형되지 않은 상태로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추양정사
회남면 신추리에 있는 추양정사는 1919년 박문호가 주선하여 은사인 어당 이상수의 옛집터에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 제향을 하던 곳으로 그 후 제자 박문호, 양주승, 양주학, 박용호, 박순행, 양주하의 영정을 추가로 봉안하고 제항을 올리고 있다. 추양정사는 벽체와 기단이 남아있어 비교적 건물은 양호하지만 지붕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기와가 아닌 판석으로 지붕을 해 자치를 손상시키고 있다.

추원각과 유서각
외속리면 오창리에 있는 목조와가인데 익양공 이천의 실기비와 세종대왕 유서판을 편액한 건물로, 칸을 막아 1칸에는 유서판을 편액하였다. 실기비는 1900년대 초에 건립한 것으로 통정대부 전 성균관 대사성 원임규장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