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
황규식(속리산 노인정 노인회장)
1993-03-13 보은신문
부부는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사람끼리의 만남이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가장 아껴주고 위해주며 사랑하면서 어떠한 고난도 같이 이겨내는 사이로서 하늘이 맺어준 아름다운 만남이다. 부자(父子)는 피와 살을 나눈 일촌(一村)이요, 형제간은 부모의 기운을 함께 받아서 이룬 동기간으로서 이촌(二村)이며, 부부는 더 이상 가까운 수 없다 하여 촌수도 없는 무촌(無村)이듯 부부의 만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인 것이다. 이와같이 아름다운 만남을 이룬 부부간에도 때로는 후회스런 이이 없을 수 없다. 늘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그 자리가 비어봐야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아웅다웅 다투며 사노라면 뒷날 남는 것은 후회뿐일 것이다.
그러기에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허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버리고 미움도 벗어 버리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네' 하지 않던가. 이와같이 청산(靑山)과 유수(流水)처럼 삶을 살았으면 싶다. 청산으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 입고 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온 세상이 다 변해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의연하고 늘름한 군자의 기상을 갖고 있고, 강물은 밤이나 낮이나 유유히 쉬지 않고 흐르는 근면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작은 시냇물이 모여서 망망대해를 이룻듯 작은 것으로 큰 거슬 이루는 불굴의 집념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순리, 또는 수십척의 벼랑에서 곤두박질 하는 용기, 깨끗한 곳이나 더러운 곳을 가리지 않고 흐리는 너그러움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일 것이다. 청산과 유수의 순리, 인내, 용기, 너그러움 등의 활력소를 받아들이며 비록 초가삼간 집이지만 절대적인 회생과 헌신적인 사랑을 서로 나눌 때 부부간의 만남은 더욱더 아름다운 꽃 봉우리로 송이송이 피어 그 향기가 이웃과 이웃에 널리 풍기게 되리라.
<생각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