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결연지 일본 고강정 방문기
자치외교로 상호 지역발전 꾀한다 김인복(군 내무과 행정계)
1993-03-06 보은신문
하지만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도시와의 자매결연 체결을 협의하기 위해 방문하는 방문단은, 그동안의 양측관계를 인식하면서 혹시나 잘못되는 일이라도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한편으로는 큰 기대를 안고 방문일정에 나섰다. 우리 일행이 2월23일부터 27일까지 현지에 머무는 동안 일본 고장정(다카오카) 측에서는 도착 즉시의 영접에서부터 식사, 숙박에 이르기까지 국빈과 같은 융숭한 대접과 완벽한 의전행사로 우리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었다.
방일 첫날 오전 11시 일본 구주궁기현 가고시나 공항에 도착할 때는 소담스런 희눈이 내리고 있었다. 고강정(이하 다카오카)관계자는 "이번에 내린 눈이 20년만에 내리는 흰눈으로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이 될 것"이라며 환대했다. 다카오카로 가는 2시간 남짓한 길목은 우리나라의 공원 산책로같이 깨끗하고 말끔하여 정교한 각종 시설물과 조화를 이루었다. 전체 면적의 72%가 산림이라서 그런지 주변의 정취가 참으로 빼어났다. 다카오카에 들어서면서 이곳이 우리 보은과 같은 관광도시요, 농업도시라는 동질성을 실감했고 이것이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과의 관계개선 가능성을 있게 했구나 하는 것이 우리일행의 전반적인 느낌이었다.
다카오카정 전직원의 열렬한 환영속에 정청(町廳)에 들어선 우리 일행은 다카오카 관계자와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실무협의로 들어갔다. 시지시마 도시메 정장(町長)의 환영인사와 최중렬 과장의 답사이에 이어 '우호제휴 확인서'에 서명 및 날인함으로써 양국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여는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본 우리는 지금도 가슴 설레임을 억누르기 힘들다.
양국 도시의 실무협의를 통해 합의한 사항은 일반교류 분야에서 행정시책 자료를 교환하고 지역특산품 개발 정보교환과 각급 직능단체 등의 친선방문, 그리고 학생 상호방문을 하는 것이다. 또한 연수교류 분야에서 일반 행정공무원 연수, 과수원예 및 근교 농업기술 교환연수, 민간 경제기수 교류의 적극적인 지원 협력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향토 민속 예술 전시회 개최, 공동연구 분야로 환경, 관광, 문화재관리 등의 공동 관심사업 연구등에 대해 합의했다.
특히 국제도시간 자매결연 조인식을 위해 다카오카정의 시지시마 도시메 정장 일행이 우리군의 민속축제인 속리축전을 전후하여 오는 5월25일부터 29일까지 방한하는 것과 9월 초순경 보은군수 일행이 방일하는 것을 합의하게 되었다.
실무혐의를 마치고 다카오카 정청의 견학이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모든 사무실에 우리와 같은 칸막이가 없이 탁 트인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행정의 공개성을 실감할 수 있었고 모든 업무가 상부상조된다는 민의의 행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현실정을 비교하면서 의회 본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의장석을 중심으로 좌우상단에 실과소장의 자리가 있고 앞쪽으로 의원들이 원탁에 배열되어 있었다.
상호존중과 신뢰의 폭이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도한 초현대식인 사무실 집기기와 설비들을 보고 우리 군에도 최대한 발전시켜 적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방문 이튿날에는 화훼단지 견학이 있었는데 단편적으로 받아들인 느낌에 따르면 일본이 UR 협상에 대비하여 오래전부터 내심 준비해온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단지를 10년 가까이 가꾸고 있다는 후구시게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농가에 1년 취업한 후 화훼기술을 습득하여 정부로부터 시설비 3천5백만엔, 우리 돈으로 2억4천만원을 지원받아 총 면적 2천5백평에 카네이션과 미니가베라 라는 네덜란드산 화훼류 1백80만본을 재배하고 있었다.
대화도중 참으로 놀란 것은 이 시설물이 40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했고 정부지원금을 15년에 걸쳐 연리 4.2%로 상환하는 동안 커다란 소득은 없으나 향후 25년간의 소득을 내다보며 지루한 인고의 아픔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후구게씨는 "보은의 영농가가 연수를 희망한다면 1년동안 농가에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재배기술을 공개하겠다"는 약속까지 덧붙였다.
투자한 만큼의 조기소득을 바라는 우리의 농촌현실과는 너무도 달라 인내와 끊임없는 기술향상의 특유기질이 경제부국 일본의 오늘을 뒷받침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성공원으로 가는 길가엔 공동묘지 같은 곳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같은 개인묘지들이 아니라 비석아래 전 가족이 묻히는 가족묘지로 평수는 놀랍게도 0.25평이었다.
우리의 묘지실태와 비교할 때 반성과 개선책이 요구됨을 모두가 실감했다. 천성공원은 금년 3월말에 완공할 예정으로 막바지 공정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이곳은 일본내에서 영토 다툼이 있었을 때 망보던 곳으로 약 1백년간의 민속자료를 전시하는 향토민속 박물관이었다. 공사현장 역시 말끔하였고 안전시설물들로 보아 얼마나 안전에 치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 군 주최 오찬장으로 이동하면서 그곳 관계자는 "이곳도 하천의 오염과 환경문제 극심하다"고 실토하면서 다각적인 노력과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하고 나라가 부자지 국민이 부자가 아니라는 야릇한 여운을 던졌다.
그러나 우리는 거리를 달리는 많은 소형차들과 20평이 넘는 APT가 보이지 않고 상류층의 생활수준이 우리의 중류층보다도 못한 것을 볼 때 가난보다는 국민들의 검소한 생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오찬에는 우리의 술인 소주와 담배로 다카오카정 관계자와 의호 의원, 그리고 지역유지에게 대접하며 우리의 음식과 문하를 소개하는 한편 격의없는 대화를 나눴는데, 우리가 자치외교에 찬몫을 담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앞으로 우리 군과 다카오카정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자매의 우의를 두텁게 하면서 합의사항을 보완 발전시킨다면 반드시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실을 조기에 기대치말고 참고 이겨내는 인고의 고통이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됨을 우리 모두가 기억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