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기 물씬!

보은 서예협회를 가다

1992-08-22     송진선
검은 먹물이 하얀 화선지에 한 획 한 획 그어질 때마다 채워지는 충족감과 여백이 주는 안정감을 읽으며 평온함에 젖을 수 있는 서예. 그 옛날, 맑은 물이 세월을 따라 흐르고 지칠 줄 모르게 푸르름을 간직한 노송들이 운치를 더해주는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선비들이 운(韻)을 맞춰가며 서예를 하였으나, 하루를 숨가쁘게 보내는 오늘날에는 사방이 꽉 마힌 학원에서나 해볼 수 있는- 배워도 되고 배우지 않아도 되는 닫힌 세계의 선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온갖 세상사를 잊고 문방사우(文房四友)를 벗하며 점입가경으로 서예에 몰입하는 서도인들은 타인에게 있어 그야말로 신선놀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분명 서예는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동호인이 많지않은 보은에서 문화공간이 적은 보은에서, 보은서예협회(회장 김준식)는, 세상의 어지러운 소리도 순하게 듣는 이순(耳順)을 넘은 회원들이 대부분으로 우리 것에 대한 애착심이 강해 지금까지도 서예협회를 유지해가는 중추가 되고있다.

보은서예협회는 각자 나름대로 오랜동안 서에와 벗하며 세상을 노래하던 서예가들의 서로의 서체를 평가해주고 또한 배우기 위해, 지난 1984년 2월2일 발기총회를 갖고 초대회장에 노인구씨(79. 마로 원정)를 선출하면서 출범했다. 회원들은 창립 당해부터 글쓰기에 진력했고 시간나는대로 보은읍 삼산4구에 있는 현재의 서에학원(☏2-4775)에 모여 곧 개최될 서예대회 등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며 각자 습작한 것을 모아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함께하면서 점점 수준을 높여나가고 이다.

경력이나 나이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고 다만 서예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서예협회는 현재 30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30년이상 붓을 잡고 꾸준히 글을 닦아와 각종 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찍힌 낙관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돋보인다.

△ 춘헌 명대세씨와 김태환씨는 충북도전입선, 국제예술제 특선을 차지한 바 있고 △ 박지현씨와 현 회장인 김준식씨는 한양미술 작가협회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한일 국제전 초대작가, 한국 문화예술 종합대상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이고 △ 방일석씨는 신라 서예 대상전 입선, 국제예술 대상전 특별상 △ 송원헌씨는 시카고대학 미술상, 신라서예 대상전 입선, 국제예술 대상전 특선 △ 김광수씨는 한국서화작가협회 회원, 한국 서화전시회 17회 입상, 한국 1백선 초대전 출품, △ 김동기씨는 국제예술 작가협회 우수상, 한양 미술작가협회 입선, △ 이원기씨는 한국 서화예술대전 특선2회, 국제 현대 미술대전 우수상, 국제예술 서화대전 은상, 신라예술대전 대상, 한국 서화대전 특선 △김교석씨는 한국 문화예술종합대상전 특별상 △안영구씨는 대한민국 서예공모대전 입선, 국제예술대상전 특선, 국제 서화예술 문화대상전 특선 2회, 한국문화진흥 우수작가상 등 △육홍균씨는 한국서예인연합 회원전 입선, 한국 서화작가 협회전 입선, 국제예술 대상전 입선 등 △정기정씨는 한국 문화예술 종합대상전 특별상을 받았고, 그외 서명환씨, 김지형씨, 최용운씨, 한오현씨 등도 나름대로 서예의 세계를 구가하고 있다.

이와같이 회원들은 이미 각종대회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고, 창립할 때부터 주민들의 문화적 정서를 함양시키고 서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서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매년 속리축전 기간중에 서예전을 갖고 주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서예가들이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장의 화선지가 버려지고 벼루가 닳도록 심혈의 기울인다. 여기서 얻은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무아의 경지에 오른 작가의 평온함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비록 해서, 행서, 초서, 예서, 전서는 물론 서당체, 송가정체 등 서체들이 워낙 다양해 서예를 접하지 못한 문외한으로서는 무슨 ㄱ르자인지 도저히 알아보지 못하는 작품도 있으나 관객들은 그 작품속에서의 작가의 생각, 정서 등 작가의 특징을 발견한다. 김준식 회장은 "사실 보은에는 서예를 접하는 인구가 적어 서예협회전을 가질때 관직들이 매우 적어 아쉽다"며 "심신을 안정시키고 조상들의 슬기와 예지를 배우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서예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협회의 문을 개방해 놓아도 관심이 부족해서인지 배워보겠다고 가입하는 경우가 거의 드문 형편"이라고. 그래서 김준식 회장이 생각해낸 것이 바로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로 보내고 난 뒤 한가해진 주부들을 위한 무료 서예강좌이다. 관심있는 주부들을 상대로 시작한 서예강좌에는 처음 배우기를 쑥스러워 하기도 하였으나 차츰 수효가 늘기 시작해 1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붓을 벗하고 있다.

배우기 시작한 지 20년 정도밖에 안되었지만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는 회원들이 생기자, 이제는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묵향에 흠뻑 빠져 있다.

김준식 회장은 "서구문화의 마구잡이식 도입으로 특히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크게 혼동되어 각종 범죄가 무성하고 사회가 혼란을 겪고 있는데, 서예는 정신을 수양시켜 참된 인간상을 구현하는데 도움을 주고 올바른 사회건설에도 일익하는 도요, 예술인 만큼 이 사회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회원들의 완숙에 가까운 솜씨가 극에 달하고, 살아있는 동안 내내 묵향기를 맡으며 도를 닦는다고 누가 뭐랄까. 삶의 여유를 만끽하는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