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농협 부녀부장 김종예씨
지역발전 봉사에 헌신한 『여장부』 - 부녀지도 업무에 바친 이십육 성상
1992-06-27 송진선
대전에서 보은으로 시집온 후 처내때 하던 유아원 보모일을 계속하다 66년 마로면 수문1구의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다른 주부들 보다 깨어있다는 죄 아닌 죄(?)로 여자가 바깥일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의식에 빠져있던 남자들을 설득하면서 당시 왕성했던 새마을 사업 추진에 발벗고 나섰다.
주부들에게 밥을 지을 때마다 한줌 씩의 쌀을 모으는 절미저축을 권장하고, 그릇을 놓을 때마다 흙이 묻어나오던 부뚜막을 시멘트로 개량하며, 새마을 구판 사업을 벌여 월말 정산시 이용실적이 높은 사람들에게 이익금을 더 배당시켜 구판장 이용을 장려했고, 탁아소 운영으로 농번기 가정의 일손을 덜어주기도 했으며, 방학때면 학생들에게 공부도 지도해주는 등 김종예씨는 한집안의 며느리로서, 아내와 어머니로서, 또 마을의 부녀회장이요 농협 부녀부장으로서, 혼자 해내기 힘든 여러가지 역할을 거뜬히 해낸 마로면의 인물로 손꼽힌다.
김종예씨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이 72년 마로면 수문1구가 자립마을로 성장하도록 버팀목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여장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지역발전에도 협동심을 발휘해 마을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매달 20일 이상씩 출장을 다녀야했지만, 지금은 타계하여 안계신 시어머니와 남편의 많은 도움으로 힘든 줄도 몰랐다고. 늦은 저녁에야 치뤄지는 마을부녀회의 야간 좌담회에 참석하고 새벽1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던 일, 농협 업무에 너무 열중해 어느날인가 남편으로부터 밤과 낮도 못가리고 일을 하느냐고 혼났던 일, 더운 여름날 차도 안다니는 마을을 몇 십리씩 걸어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개혁 교육을 하고 돌아오다 자신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던 일, 목에 디스크가 생겨 몇년간 고생을 하면서도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농협인으로서 걸어온 긴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그러나 그때는 어려움이 많은 만큼 보람도 컸다"며 "흙 부뚜막과 장독대가 시멘트로 개선되어 깨끗하게 단장된 집을 보면 언제 어려웠었나 싶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 김종예씨는 "지금은 부녀지도 업무도 생활이 윤택해져 사실상 눈에 띄게 나타나는 효과는 없으나 농촌에 남아있는 주부,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노인대학, 주부대학은 교향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자랑.
지난 19일 서울 성북구 정릉 3동과 맺어진 도·농 자매결연의 추진을 위해 적극 나서기도 한 김종예 부녀부장은, 정년을 앞두고 농협으로서 살아온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반추하면서 3남2녀의 자녀들과 마로면 수문1구에서 보람과 행복으로 가득찬 삶을 살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