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전성시대
빵 전성시대다. 밥과 김치와 된장찌개가 기본 식단이던 ‘슬로푸드’ 시대가 슬그머니 뒷전으로 나앉고, 언제 어디서나 빨리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는 ‘패스트푸드’ 시대가 도래한 까닭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빤히 내다보이는 카페 유리창 윈도우 안에 혼자 앉아 커피와 빵으로 식사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빠리 바게트는 2025년 전국에 3,446개소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국내 최대의 제과점 프랜차이즈로 1988년부터 체인점을 확장하였는데, 2010년경부터는 카페 형태로 빵 이외에 커피와 음료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빠리 바게트는 우리나라에 알려진 상호이자 상표다. 정작 프랑스에서는 ‘바게트 드 빠리’ 또는 ‘바게트 빠리지엥’이라고 부른다. 바게트(baguette)는 프랑스어로 ‘몽둥이’라는 뜻이다. 이 빵은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대략 1920년대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바게트 빵은 프랑스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먹는 일상적인 음식인데, 그 나라 식품위생법에 바게트는 밀가루와 소금, 물과 이스트 등 네 가지 재료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있다고 한다.
치아바타(Ciabatta)가 등장했다. 이탈리아 빵으로 ‘슬리퍼’라는 뜻이다. 슬리퍼 같은 크고 넓적한 형태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치아바타는 1980년대 초부터 선보였는데, 그 이전까지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기던 빵은 대체로 두텁고 딱딱하고 묵직한 호밀 빵이었다. 여기에 좀 더 가볍고 부드럽고 바삭한 식감을 찾아서 치아바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변화라면, 기존의 빵 반죽에 수분을 많이 추가한 것인데, 표면에 밀가루를 뿌려 굽는다고 한다. 이 빵은 1980년대 후반에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특히 샌드위치용 빵으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독일빵 쉬똘렌(Stollen)도 있다. 쉬똘렌은 으깬 아몬드나 아몬드 반죽, 설탕, 달걀흰자로 만든 말랑말랑한 과자를 지칭하는 마지팬(marzipan)을 속에 넣고 구운 후, 가루 설탕으로 겉을 뒤덮은 독일 전통 빵이다. 쉬똘렌은 손으로 반죽한 투박한 모양의 타원형으로 생겼는데, 중세의 수도사들이 걸쳤던 망토 위에 눈이 쌓인 모습으로 ‘아기 예수’를 형상화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때부터 수도원에서 만들어 먹던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빵 이름 쉬똘렌은 고대 독일어로 ‘말뚝’을 뜻하는 쉬똘로(stollo)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길쭉한 빵 모양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독일어 쉬똘렌은 영어 ‘스틸(steal)’의 과거분사 ‘스톨른(stolen)’으로 혼돈하기 쉽다. 스톨른은 ‘장물(훔친 물건)’이라는 뜻도 있다.
쉬똘렌 빵은 거친 겉모양과는 달리 내용물이 풍성하다. 브랜디나 럼주에 오랫동안 절였다가 말린 과일이 마지팬에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빵은 일반 생크림 케이크만큼 열량이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빵 속 내용물의 풍미가 깊숙이 배어 빵 맛이 더 좋아진다. 쉬똘렌은 진한 커피나 홍차와 같이 먹을 때 쓴맛을 중화시켜 주며, 건과일과 견과류 때문에 따듯하게 데운 와인 (뱅쇼라고 함)이나 찬 와인 또는 위스키와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쉬똘렌은 가운데 부분부터 썰어 먹고 남은 양쪽을 맞붙여서 밀봉 보관하면 빵이 덜 마르도록 도와 처음 먹을 때의 식감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쉬똘렌은 독일빵의 고유명사이지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빵’이라는 보통명사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래서 고려당 빵에도 빠리 바게트에도 빵 포장 박스에 쉬똘렌 표식이 발견된다.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가족들이 모여 쉬똘렌 빵을 한 조각씩 나눠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쉬똘렌은 빠리 바게트나 치아바타에 비해서 아직 생소한 이름이다. 2010년경부터 식사 대용 빵 전문점이 늘면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빵 전성시대가 분명하다. 어쩌다 주말에 대전역에 가면, 인천공항 출국장을 방불케 하는 긴 행렬에 놀라게 된다. 성심당 빵을 사 들고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다. 시대와 세대의 변화를 어쩌랴. 그러나 1984년 이래로 41년 동안 계속해서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