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과 까짱

2026-01-22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우리 주변에 여러 가지 두류(豆類) 작물이 있다. 콩(大豆)을 위시하여 땅콩(落花生), 완두콩, 팥, 녹두, 동부 같은 것들이다. 서양에서 콩을 지칭하는 ‘빈(bean)’은 주로 강낭콩이다. 커피콩이나 카카오(코코아)콩처럼 콩 비슷하게 생긴 식물의 씨앗도 콩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대두(콩)가 콩의 대명사로 쓰인다. 
  그래서 음식 재료로는 콩이 가장 많은 속담의 소재가 되고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콩도 닷 말, 팥도 닷 말”(공평하게 베푼다), “콩 반 알도 남의 몫 지어 있다”(하찮은 것도 임자가 따로 있다),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 깨뜨린다”(서툰 작은 일로 큰일을 그르친다), “콩 본 당나귀처럼 흥흥한다”(좋아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 몹시 기뻐한다), “콩 심어라 팥 심어라한다”(지나치게 간섭한다),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지 않는다”(거짓말을 많이 해서 옳은 말을 해도 믿기 어렵다), “콩이야 팥이야 한다”(시비하는 말투로 꼬치꼬치 따진다) 등으로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콩하면, 누구나 땅콩을 떠올린다. 두류를 총칭하는 이 나라 말은 ‘까짱(kacang)’인데,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까짱하면 무조건 땅콩이다. 우리가 콩하면, 대두를 연상하는 것과 같다. 노랑색 콩도 까짱이라 하지만, 대개는 노랑색이라는 수식어를 써서 ‘까짱 꾸닝’ 해야 상호이해가 정확하게 이루어진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한국에서는 콩하면 대두인데, 이곳에서는 왜 까짱하면 땅콩을 연상할까. 땅콩은 음식문화에 아주 밀접하여 ‘있는 그대로’ 사용되지만, 콩은 두부나 뗌뻬를 만드는 별도의 과정이 있어서 그렇지 않겠느냐는 대답이었다. 뗌뻬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청국장의 일종이랄 수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청국장용으로 띄운 메주를 꽉꽉 눌러서 굳힌 다음 두부처럼 잘라 조리해서 먹거나 기름에 살짝 튀겨 간식으로 먹는다. 
  인도네시아 땅콩의 내피 속 껍질은 하얀색, 짙은 빨강과 옅은 빨강, 보라색 등 네 가지인데, 옅은 빨강색 땅콩이 제일 맛이 좋다. 땅콩은 모래가 많이 섞인 땅이면 어디서든지 잘 자란다. 특히 화산 자락에서 소출이 높은데, 토양이 무르고 기름지며 물이 잘 빠지면 80일 만에 수확할 수 있다. 같은 땅에 계속 심어도 잘 자란다. 수확기의 땅콩은 약 60센티의 키가 된다. 콩깍지나 콩잎과 줄기 할 것 없이 모두 가축의 사료로 그만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땅콩은 한국의 경우와 비교해서 그 쓰임새가 훨씬 다양하다. 맥주 안주나 땅콩버터용으로도 쓰이지만, 이 나라에서는 각종 요리용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 가도가도(gado-gado)라는 음식이 있다. 기름에 튀긴 두부와 여물기 이전의 연한 긴 콩깍지와 숙주나물이 주재료이고 오이나 기타 다양한 야채류가 식성에 따라 첨가된다. 이때 땅콩 소스가 듬뿍 뿌려진다. 이 소스에는 붉은 생고추와 마늘, 양파, 생새우 등을 함께 갈아 넣어 붉으레한 색깔을 띤다. 가도가도는 반찬으로 나오고, 밥 없이 가도가도로만 요기하기도 한다. 귀에 익숙한 명칭 때문에 가도가도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꽤 많다. 
  이곳의 땅콩은 아주 잘다. 한국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땅콩 크기의 절반 정도이며, 생김새도 땅콩과 콩의 중간쯤 된다. 스낵용으로 등장하는 땅콩은 속껍질을 벗겨내지 않고 그냥 먹는다. 거부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소금으로 간을 하고 약간의 양념을 하여 기름으로 살짝 볶아내는데, 맛도 좋다. 맥주 안주로 제격이다. 또한 싸고 흔하기 때문에 호텔에서 생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두세 차례 주문해도 군말 없이 듬뿍듬뿍 담아 내온다. 
  우리나라에 ‘콩’을 주제로 하는 속담에 ‘땅콩’이 등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의 속담에는 콩 대신 땅콩만 등장한다. “땅콩이 자신의 껍질을 잊어버린다(은혜를 갚을 줄 모른다), “땅콩 한 알 볶는 듯하다”(좋아서 팔짝팔짝 뛴다), “땅콩이 웃자라는 두 달”(하루가 다르게 몸집이 커지는 아이들, 또는 그 기간), “땅콩이 껍질 탓을 한다”(일이 잘못되면 조상 탓을 한다), “자란 자리를 잊지 않는 땅콩”(자신을 아는 사람) 같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