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2리, 마을유래비 세우고 발전 기원

“유구한 역사 자랑스러운 교사2리, 영원무궁하리라”

2025-12-31     나기홍 기자

 보은읍 교사2리(이장 김순환) 주민들이 12월 30일, 마을경로당에서 마을유래비 제막식을 갖고 주민화합과 마을 발전을 기원했다. 
 이 자리에는 최재형 군수, 보은군의회 윤대성 의장, 김도화, 이경노, 김도화, 장은영 의원을 비롯한 내빈과 주민 등 100여 명이 함께해 유래비 제막을 축하했다.
 마을유래비에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우리 고장 교사2리는 신라의 마지막 보루인 삼년산성과 보청천을 경계로 백제의 노고산성이 있고, 천오백년의 고찰 속리산 법주사가 있음에도 전해오는 기록물이 미미하여, 이전 아쉬움을 메우고자 전 근현대사를 토대로 유래비를 제작했다고 한글 및 한자 음각으로 쓰여있다.
 이어, 원래 교사리에는 조선4대 세종대왕 시 창건한 鄕校(향교)에 공자님을 위시한 5聖(성) 10哲(철) 宋朝4賢(송조4현) 및 우리나라 18賢(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춘추제향을 지내는 유형문화재 제95호로 지정 관리하는 대성전이 있으며, 대원군 시절 서원철폐령 때 장안면 상현서원을 이축한 明倫堂(명륜당)이 있다.
 교동(鄕校), 사례(士禮)골, 보촌(洑村:춘수골), 번마루, 골안, 정현(旌峴:정문고개)등 자연마을이 있었으나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통폐합시 6개 마을을 통합해 향교와 사례골의 이름을 따 교사리(校士理)라 불려지고 있다고 마을 이름을 명명한 과정을 설명했다.
  정문고개는 마을 어귀 언덕에 전호장 이휴의 부인 김소산과 관노 청손의 처 관비 춘덕의 효(孝)와 열(㤠)을 기리는 정문이 나란히 있었으나 현재는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1944년 보은농업고등학교가 개교해 군내 처음으로 고등교육기관이 설립되고, 이어서 1961년 여자중고등학교가 개교했으며, 1962년 보은군산립조합과 보은농촌지도소 발족, 1964년 보은등기소 개원, 1966년 동광초등학교 개교, 1979년엔 2000톤 규모의 상수도 시설이 들어섰다.
1987년 군민 건강증진을 위한 보건소가 들어서고, 1991년 군민 체력 증진을 위한 실내체육관 및 도서관 건립, 1995년 충북원예농협 보은지소설립, 1997년 세계통신망을 중계하는 KT전신전화국이 개설됐다. 1998년엔 지적공사, 2008년 보은소방대 개설,  2009년 보은농협 하나로마트 등 주요 기관이 우리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고 국공유 시설을 소개한다.
 인구와 가구수 증가로 교사리는 번마루, 정문 고개 마을을 중심으로 1958년 교사2리로 분구 되었다. 이후 1990년 그린아파트 72가구, 1993년 형근빌라 32가구, 1997년 극동아파트 220가구, 2000년 에스엠아파트 90가구가 입주해 읍내 주요 마을로 급부상했다. 
 도시계획에 의한 4차선 도로가 개통되었고, 마을의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가구수와 인구 증가로 1985년 교사3리로 분구되었으며, 1995년엔 교사4리까지 분구됐다.
 2025년 6월 현재 480세대 865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마을유래비는 2001년도에 건립됐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노후되어 마을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내용의 추가 기재가 필요해 새로 건립하게 되었다고 마을유래비 재건립 사유를 밝혔다.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우리 마을은 사람들이 질박(質樸)하고 근면하며, 정현에 깃든 효와 열의 정신을 되살리고 향교에 출입하는 전통을 간직하며 상부상조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미풍양속을 지키는 자랑스러운 교사2리, 영원무궁하리라! 라고 2025년 9월 30일, 마을유래비추진위원회 이름으로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