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남면 산수리, 마을 유래비 세우고 화합과 발전 기원

양선석 이장 “비문을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자랑스런 이정표”

2025-12-24     나기홍 기자
양선석

  산과 물이 아름다운 회남면 산수리(이장 양선석) 주민과 출향인들이 지난 18일(목), 마을 초입에 마을 유래비를 세워 제막식을 갖고 주민들의 복락을 기원하며 선인들의 자취를 기렸다.
 이날 제막식에는 변인순 부군수, 보은군의회 윤석영, 최부림 의원, 박영미 회남면장 등 지역 기관장과 단체장, 종친 및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여해 산수리 마을 유래비 제막을 축하했다.
  양선석 이장은 “오늘 세워지는 마을 유래비는 우리 마을이 걸어온 소중한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그 무엇보다 뜻깊은 일”이라며 “단순한 비문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 마을의 자랑스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유래비 제막의 의미를 강조했다.
  비문을 작성하였고, 이날 제막식에서 사회를 맡은 양완석 씨는 “남원양씨대종중의 회장인데 고향 산수리 남원양씨사정공파종중에서는 총무이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 산수리는 군(軍) 장성 2명, 대령 4명, 경감 이상 직급의 경찰관이 3명, 행정고시 사법고시 합격자 각 1명, 대학교수 7명, 의사 8명, 약사 4명, 세무사, 교사 등 100여 명에 가까운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명소 중의 명소”라고 마을을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 대표적 인물이 해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양용모 장군”이라고 입증했다.
 이를 증명하듯 이날 세워진 산수리 유래비에는 “산자수명하고 배산임수한 이 마을을 산수(山水)라 부른다. 본래 백제 때 미곡현, 신라 경덕왕 때 매곡현, 고려 태조 23년 회인(懷仁)이라 하였고, 조선 고종 32년 회인군 강외면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보은군 회남면 산수리라 하였다.”고 마을 유래가 쓰여있다.
 이어 “이 마을과 양문(梁門)의 인연은 조선 태종 11년 남원군(南原君) 양구주(梁九疇)공이 옥천 지군사로 부임하여 많은 치적을 남기고 청주목으로 가면서 가거지(可居地)로 염두에 둔 곳이었다 한다.”라며 “그 아들 양성지(梁誠之 1415~1482)공은 사헌부대사헌 이조판서 대제학을 역임, 성종 2년 좌리공신에 훈봉되고 시호는 문양공(文襄公)이시다. 문양공의 현손 선략장군 양사필(梁思弼)공이 선조 13년 한양에서 청주로, 다시 이곳 산수로 이거 정착하시니 후손이 대대로 번성하여 남원양씨 집성촌이 되었다.”라고 양씨의 내촌(來村) 과정이 섬세히 쓰여있다.
 “그 후 입향한 타 성씨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지냈다. 인정 많고 마음씨 따뜻한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며 한 가족처럼 모여 살던 마을이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어 수몰되기 전의 산수골, 아랫말, 분토골, 불무골 네 곳의 자연부락 중 산수골만 남게 되었다. 대대로 바르게 살아온 분들의 지혜를 본받아 광풍제월의 산수 자연을 길이 보존하기 바라노라. 수구초심하는 출향인들이나 현재 마을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민들은 우애가 돈독하고 형제자매같이 지내니 길이 복락을 누릴 것이다. 먼 훗날에도 선인들의 자취를 머금고 여기 영원하리라. 2025년 겨울 산수리 주민 일동”이라고 쓰여있다.
 한편, 이날 마을 유래비를 세운 산수리는 남원양씨(南原梁氏) 집성촌으로 앞서 말했듯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인재 양성의 보고(寶庫)로 현재 회인면과 회남면에는 총 75세대의 양씨 문중이 거주하고 있다.

산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