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나라의 금식월 풍습

2025-12-19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달력을 들춰 봤더니 내년 설 연휴가 2월 14일부터 18일까지다. 이때쯤 가볼 데가 있어서 그곳 사정은 어떤가 알아 보았더니, 아뿔사 금식월(禁食月)이 시작될 때가 아닌가. 세계 최대의 이슬람 인구를 가진 나라 인도네시아의 얘기다.       
   인간은 누구나 순수하게 태어나지만, 속세를 살아가면서 죄를 짓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일 년에 한 번은 창조주(Allah)에게 자신의 죄를 고하고 다시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슬람력으로 라마단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식욕(食慾)이라는 인간의 본초적인 욕망을 일시적으로 중단함으로써 창조주에 대한 경외감을 높일 수 있다고 믿어서다.  
   금식월에 이슬람교도들은 무엇보다 먼저 창조주를 향한 경건함을 유지해야 한다. 새벽 3시경에 일어나서 몸을 닦고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새벽 4시 전에 이른 아침을 먹고 동네 이슬람사원에 모여 새벽 예배를 드린다. 이들의 기본적인 의무는 하루 다섯 차례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다. 새벽 예배 이외에도 정오, 오후 3시경, 5시 30분경, 7시경의 밤 예배가 있다. 
   금식월에 해가 지면, 여럿이 함께 하루 의무를 이행했음을 서로 확인하고, 식사를 같이 한다. 몇 가지 음식을 가까운 이웃이 돌아가면서 함께 준비한다. 밥과 야채 볶음, 쇠고기나 닭고기가 들어간 말간 국, 그리고 닭튀김과 쇠고기나 염소고기 요리 한두 가지가 나온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 소파에 앉아서 먹거나 삼삼오오 마당으로 나가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때는 주로 이웃과 친지와 직장 동료를 칭찬하고, 좋은 소식을 전하고, 부러움을 나누고, 부족한 살림을 꾸려 가는 안식구들의 노고를 위로한다. 남의 험담이나 좋지 않은 소식은 전하지 않는다.  
   금식월에 행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로 쟈캇(zakat)이라는 것이 있다. 쟈캇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내 재산의 일부는 ‘창조주의 소유’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이나 친지 또는 가난한 이웃이나 고아에게 당연하게 기부하여야 한다. 쟈캇을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대상은 가족이다. 그 다음 순서가 이웃과 고아와 과부다. 
   인도네시아에서 쟈캇은 대개 한 사람당 쌀 2.5 킬로가 표준이다. 그래서 4인 가족이 이슬람사원에 내는 쟈캇은 10킬로가 된다. 쌀은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양식이며, 보관과 운반이 용이하고, 도시와 시골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농업 국가이면서도 작황이 나쁘면 외국산을 수입하여 충당한다. 국내산보다 약간 비싸다. 태국산이 가장 많고, 베트남산 그리고 값이 꽤 비싼 호주산 쌀도 보인다. 한국 슈퍼에는 당연하게 한국산도 있다. 문제는 어떤 쌀로 쟈캇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이 뜻밖에도 간단명료하다. 내가 먹는 쌀과 같거나 내가 먹는 쌀보다 좋은(비싼) 쌀이어야 한다. 
   금식월이 지나면 인도네시아 최대 종교 축일(祝日)이다. 공식 휴일은 사흘이지만, 때때로 2주일까지도 연장된다. 축제 기간이 되면, 우리의 설이나 추석처럼 귀향 전쟁이 시작된다. 이 나라의 국내 교통망은 항공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미흡하다. 또 나라가 워낙 크고 넓다 보니까, 목적지까지 가는 데 보통 며칠씩 걸린다. 직행버스를 타도 아예 버스를 세워 놓고 잠을 자며 이삼일씩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선박과 버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고 귀향하는 동안 낡고 협소한 교통편 때문에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터진다. 
   해마다 금식월 축일이 돌아오면, 중앙은행에서는 대도시의 시장통에서 10만 루피아(8700원)나 5만 루피아 같은 고액권을 1만 루피아 이하의 낮은 단위의 신권으로 교환해 주는 서비스를 한다. 희망자들이 많아 항상 장사진을 이룬다. 자녀들이나 이웃 아이들에게 몇천 루피아씩 새 돈을 나누어 주는 풍습이 아직 남아 있어서다. 제때 신권으로 바꾸지 못한 사람들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웃돈을 얹어 주고 바꾸기도 한다. 소란하지만 소박한 풍경이 때때로 따듯하게 보이는 것은 나이 탓일까, 아니면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