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세에 받게 된 눈물겨운 국교졸업장
선친이 독립운동했다고 강제퇴학
1992-02-22 보은신문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요시찰대상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11세때인 1936년 당시 보은공립보통학교(삼산국교 전신) 2학년때 일본인 교장에 의해 강제 퇴학당해 정든 교정과 친구들을 떠나야 했던 이종락씨(69. 보은 산성)가 5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명예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다.
명예졸업장을 받게 되었다는 통보에 며칠동안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그는 지역인사, 선·후배, 친지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으며 "남들에게는 종이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동안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생에 최고의 선물"이라며 벅찬 감회에 젖는다. 그의 졸업장은 단순한 졸업의 의미를 넘어 학생들에게는 독립운동의 정신을 일깨우는 본보기가 되었으며 애국애족을 몸소 실천한 항일의사와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졸업장이다.
선친 이용기 의사는 3·1운동 당시 보은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10인의 의사 중 한사람으로 경서와 시문에 통달한 선비로서 후학양성에 힘써오다 국권을 빼앗기는 민족적 수난에 분개하여 8일 만세운동을 주도, 일본경찰에 체포된 뒤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고 만신창이가 되어 출감한 후에도 요시찰 대상이 되어 감시와 압박을 받았다.
이종락씨는 비록 요시찰 대상의 가족으로서 제한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선친의 자랑스런 항일운동 정신의 뜻을 헤아려 단한번도 원망해 본 적이 없다며 어렵고 힘든 가정형편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생활해 왔다고.
그러나 선친의 항일독립운동정신이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채 묻혀있어 자식된 도리로 안타깝게 생각했으나 얼마전 보훈청에서 보훈대상자로 선정토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소식에 뒤늦게나마 선친의 명예가 회복될 가능성이 생겨 집안에 경사가 겹쳤다며 기쁨에 젖는다.
부인 구남회씨와 함께 마을어귀에 세워져 있는 선친의 의열비를 찾아 그동안의 한을 달래는 이종락씨는 벅찬 가슴 가득 졸업장을 품에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