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년, 한일 수교 60주년 - 8월에
금년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지 80주년이다. 그동안 6.25남북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 한국은 각 방면에서 세계 10위권의 나라에 진입하였다.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을 만큼 단기간의 비약적인 발전으로서 그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속 발전하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외교가 재개된 이래 환갑의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 한·일 관계는 녹록지가 않다. 우리가 일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일본인은 자잘한 듯 치밀하다. 한국인은 대범한 거 같은데 대충한다. 상대방을 대강 알아가지고서는 외교 관계가 잘 유지되기 어렵고 자국의 이익도 관철하기 쉽지 않다.
우리에게 일본은 껄끄러운 이웃이다. 역사 인식이 다르고 영토에 대한 욕심이 크다. 섬나라 일본인들은 역사적 사실로서나 심리적으로 피치 못하는 대륙에 대한 선망과 야망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런 연유로 교두보로서 한반도는 그들의 야욕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한편으로는, 지리적으로 일본열도가 지진과 쓰나미, 태풍 등 자연재해를 막는 병풍과도 같아 한반도는 그 피해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원론적 인식은 고수하면서도 현실적 실리를 추구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하겠다. 과거에 함몰되어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매번 후퇴하거나 도돌이표에 머문다. 요즘 실용 외교라는 말이 자주 거론된다. 본래 유교의 영향도 있고 우리는 명분론이 강한 나라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 얼마나 균형을 유지하느냐는 결국 힘과 일관된 의지, 설득력일 것이다.
일본은 합리적 논리성과 달리 심미적이고 보수성이 강한 나라다. 우선, 왕이 존재하는 소위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 국가다. 일본의 '천황제(天皇制)'를 알면 과거와 현재, 한일관계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삼국시대 이래 적어도 1500여년의 교류사를 시야에 두고 길게 멀리 세세하게 봐야 잘 보인다.
어느 시대이건 개혁은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도 수구파가 있었고 실학파(북학파)와 개화파도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지만, 외세(청국)를 끌어들인 조정 사대부 등 기득권 세력의 준동과 일본의 개입으로 실패했다. 개혁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충돌한다.
고식적인 사고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가 대륙의 끝에 한 면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양을 향해 3면이 열려있다는 역발상 말이다. 최근에 한미 통상 관세협상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조선업분야의 협력 제안이다.
한일 간의 격차가 여러 분야에서 많이 줄어드는 중이다. 지난해(2024년) 국민총생산(GDP)은 한국이 일본의 절반 정도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변 문물의 축적과 사회간접자본, 과학 연구, 지식 출판 등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한미관계와 더불어 한일관계는 우리나라 안보와 경제의 중요한 축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기에 무역의 파고를 넘기 위해 한일 산업 협력에 의한 공동 설계 투자 수출의 상호보완적 파트너 쉽으로 동반 성장하는데 유리하다는 진단이 양국의 전문가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단지, 이해관계 충돌과 협력 장애요인의 완화 내지 제거가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대중문화-가요와 드라마 영화, 뷰티와 음식, 문학 등 한류(韓流) K-컬쳐가 일본인들은 물론 세계인의 관심의 표적이 되었다. 교류가 활발하고 인식도 크게 개선되어 한일 남녀 간의 결혼도 증가 일로라고 한다. 한일수교 60년, 한일 정상 셔틀외교로 이웃나라와 우호협력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켜 서로 이익이 되도록 보다 진취적으로 상호 교류와 이해가 심화 발전되길 기대한다.
한·일, 한미일 관계가 원만하면 서로에게 유익하다. 한반도에서 이권을 나누어 가지려는 러시아나 중국을 시야에 두고 남북 관계를 안정시킨다는 기반 위에서 관계가 진전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세상만사가 우선순위와 동시성, 차순위에 대한 그 시대 그 때에 맞는 선택이 인생이나 국운을 좌우한다. 과거를 직시하여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한국인의 역동성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광복의 햇빛을 고대하다가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한 시인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했다. 빛을 도로 찾은 ‘8월은 광복(光復)의 달’이다. (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