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빼앗기면 놀이도 빼앗긴다
올해로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였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로서의 우뚝 서기까지는 아직도 멀어 보이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하면서 셰계 경제 대국으로 발돋음하고 있는 선진국의 문턱에 와있다고 할 수 있다. 다사 다난 했던 지난 몇 개월간의 정치환경에서 벗어나 이제는 빠르게 안정되어가는 모양새이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광복절을 기해 우리의 전통 놀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지난 몇 개월에 걸쳐 보은군활력지원센터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찐이야! 전통놀이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이 놀았던 전통 놀이가 지난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사라지고, 일본의 식민화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놀이 들이 전통놀이, 전래놀이, 민속놀이 등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대한제국을 침략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는데, 우리의 전통 놀이도 그중에 하나였다. 어린아이들에게 식민지를 정당화하는 놀이, 서로 이간질하며 싸우게 만드는 놀이를 무의식중에 가르치고 배우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스스로 좀먹으며 자연스럽게 식민화 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급했던 놀이가 마치 전통 놀이처럼 인식하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이 놀이라면 일본 놀이든, 외국 놀이든 무엇이 문제가 있겠는가? 그런데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우리 전통 놀이라고 하는 것들의 80% 이상은 일본이 우리를 침략의 목적으로 퍼트린 놀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남의 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놀이를 만들어서 주입했다는 것은 오늘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초등학교 교과서 속 일본놀이 (임영수 저)> 책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쎄쎄쎄,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가위 바위 보, 줄넘기, 고무줄놀이, 딱지, 구슬치기, 사방치기, 비석치기, 땅따먹기, 말타기, 수건돌리기, 기차놀이” 등이 우리가 전통 놀이로 잘못 알고 있는 일본 놀이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우리의 전통 놀이는 1895년 미국의 저명한 민속학자이자 펜실베니아 대학의 슈트어트 컬린(1858~1929) 교수가 1893년 컬럼비아 박람회에 파견된 한국위원회의 비서관 출신인 박영규를 만나 한국 놀이의 정보를 듣고, 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세운 알렌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놀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년도부터 점차 우리의 전통놀이가 초등학교 교과에 들어간다고 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보은향교 산하 전통놀이마당 협동조합에서는 진짜 우리의 전통 놀이를 가지고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초등학교 3, 4학년을 대상으로 쌍육, 저포, 활쏘기, 마음카드 등의 전통 놀이 체험을 했는데, 모두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쾌하고 즐거워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족지원센터에서는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하였고, 마을회관과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어린이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모두가 즐겁고 신나는 모습이었다.
또한 법주사 입구와 말티재 전망대, 우당고택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체험을 실시하였는데, 꽤나 반응이 좋았다. 체험을 해본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이런 놀이는 처음 해본다. 정말 재미있다. 2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다고...” 말하였다.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를 모르고 살아왔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전통 놀이는 아직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어린 시절 놀았던 놀이를 부정하며 놀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오늘날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전통 놀이가 어떻게 만들어져 전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는 조상들의 지혜와 정신이 스며있는 진짜 전통 놀이를 계승,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듯이 이번 광복절을 기해 전통 놀이에 있어서도 “나라를 빼앗기면 놀이도 빼앗긴다”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