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효(孝)
개는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동물이다. 그래서 개는 최초의 가축(家畜)이다. 시기도 농업혁명 이전이라고 한다. 인간과의 친함이 유난히 강한 개는 사냥과 싸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활용 가치가 매우 높았다. 인간과 소통이 가장 잘되는 동물로 주인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존재였다. 언제나 살갑게 대하면서 개는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와 짐승 중 가장 친숙한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고고학적 유물뿐만 아니라 고대인(古代人)들의 회화에서도 볼 수 있는 개는 인간과 유독 친밀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옛날에도 개가 죽으면 사람처럼 예식에 따라 매장(埋葬)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안 간다는 속담도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애완견(愛玩犬)에 대한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회적 동물 인간의 역사(歷史)와 개의 역사는 동반자(同伴者) 관계로 유서가 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도 여러 가지 종류(種類)가 있고, 그 종류에 따라서 대접도 달랐다. 마치 그 옛날 신분(身分)에 따라 대접(待接)이 달랐던 인간(人間)처럼 개도 일상 속에서 견(犬)과 구(狗)로 구별되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견(犬)과 구(狗)를 달리 사용한 것은 흥미롭다. 견공(犬公)이란 의인화(擬人化)된 표현을 써가며 그 풍채와 지조를 강조했던 진돗개와 풍산개가 있고, 줏대 없이 마구 짓다가도 무서운 존재가 나타나면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는 일명 황구(黃狗)와 백구(白狗)도 있다.
아무튼, 이제 개는 한갓 동물이나 가축이 아닌 가족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칭도 개가 아닌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인생의 반려견(伴侶犬)이다. 애완견을 자식처럼 대우하며 부르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 독거노인의 반려자 견공(犬公)들의 감동적인 활약상은 사람보다 낫다는 칭송도 많이 듣는다.
개를 위한 놀이터, 병원, 카페, 유치원, 호텔은 물론이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례식장, 납골당까지 있으니 사람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 분위기이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도리가 효(孝)이고 그 전제조건 부모의 자식 사랑이 가족문화의 중심이라면, 엄연한 가족의 일원이 된 개가 효(孝)와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을 어색하다고 할 수만은 없겠지만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자식(子息)들이 못하거나 안하는 일들을 개가 묵묵히 대신(代身)한다면, 그것은 통탄(痛歎)할 일인가. 아니면 고마운 일인가. 여기서 인간(人間)의 많은 고민(苦悶)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랑과 공경의 효(孝) 자리에 애완견(愛玩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오늘의 상황이 서글프고 안타깝다. 그래도 사랑과 공경의 효(孝) 개념 중심에는 당당히 인간이 있고, 이를 끝까지 고수하며 추구해야 할 사명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도, 애완동물(愛玩動物) 1000만 시대이다.
애완견 한 마리 키우는데 한 달에 50만원 정도 드는데 매월 100만원 이상의 용돈을 부모에게 드리는 자식은 얼마나 될까?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애완견은 똥 치우고 목욕시키지만, 대부분 부모의 대소변은 받아내지 못하고 목욕도 못 시킨다.
부모가 죽으면 수목장이나 잔디장을 하여 부모의 흔적은 없어지지만, 애완견이 죽으면 애완견(愛玩犬)의 유골은 납골당(納骨堂)에 안치하여 보존한다.
부모가 아프면 노환이라고 병원에 안 가지만 애완견이 병나면 급히 병원에 가고, 노인은 개만도 못한 세상이라는 어느 노인의 절규가 가슴 아프다.
나를 낳아 길러준 부모보다 애완견이 우위에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며 송강 정철이 무덤에서 나와 대성통곡할 일이다.
애완견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효(孝)에 대해 깊이깊이 다시 생각해야 될 중대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