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 내일은 너!  

2025-08-07     김종례(문학인)    

 ‘퍽’ 나이롱 바가지 박살나는 소리가 적막한 동네에 퍼졌다. 
 상조 지도자가 낭랑한 목소리로 바가지 박살 내는 전래를 설명하였다. 
‘옛날에는 지붕에서 열린 박 바가지를 발로 밟아 쪼갰는데, 요즘은 이것도 나이롱입니다. 큰 사위분이 이렇듯 힘차게 바가지를 깨트렸으니, 망자는 이생의 모든 미련을 훨훨 털어버리고 날개옷으로 천상에 오를 것입니다.
 세상을 모두 내려놓는 순간이 얼마나 홀가분할지 상상이 되시지요?’ 영정사진이 외사촌 동서가 지내던 거실을 빠져나와 영구차로 향하고, 상주를 비롯하여 검은 옷 행렬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른다. 
 나는 화장터로 향하는 영구차에 올라가지 않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내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어제부터 발병한 배탈이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고민 끝에 내린 처사였다. 집에 돌아와 얼른 커피 한잔을 타 가지고 감나무 그늘로 숨어들었다.
 마음이 요동치거나 울적할 때마다 진정을 시키던 나만의 아지트다. 
7월의 아침 바람이 사르르 졸음을 유발하였는지~ 동서상을 당하고 숙면을 못한 탓이었는지, 장의자에서 꾸벅꾸벅 잠 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순간! 
   ‘영수엄마~, 송희엄마~. 아이고 나여 나~’ 생각지도 않은 망자의 목소리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집을 나가서 병원에 간 지가 보름전인데 정말 날 잊어버린거여?’ ‘아유머니나, 깜짝이야. 잊어버리긴 누가?’ ‘아이고 나도 따끈한 커피 한잔 먹고 싶어 죽갔네. 그저께 저녁나절쯤 숨 떨어져서 지금까지 냉동실에서 심장까지 얼어버렸지 뭐여. 뜨거운 불길속에 들어가면 냉기가 가시려는지 몰라도, 나 넘 무서울 것만 같애서 따라가지 않았어. 나 커피 한 잔 줄거지?’ ‘어휴나 이를 어쩔거나~ 그럼 영구차에는 몸만 따라간거여?’ ‘그려 맞아, 여기서 좀 쉬다가 보은 추모공원으로 쓩~ 날아가서, 애들 아부지랑 새끼들이랑 마지막 회포를 풀어야지 않겠어? 나 안 무섭지?’ ‘아유머니나, 무섭긴 뭐가 무서워 참내. 우리가 동갑내기 외사촌 동서지간으로 옆집에 붙어 산 지가 어느덧 20년 아닌가. 찬장에 숟가락 갯수까지 아는 처지인데 무섭긴? 이참에 하고 싶은 말 다 해부려 잉~’ 우리는 이렇게 따끈한 커피 1잔씩 앞에 놓고는 산자와 죽은자의 타임머신을 공유하고 말았다.     
  ‘근데 말이여 ~ 사람의 목숨이라는 게 초토와도 같고 아침이슬과도 같은거여. 내가 까짓거 건강감진 1번 게을리했다고 일찍 간다는 게 억울스럽기도 하구먼! 내가 뭔 죄를 많이 지었나 싶단 말여~’ ‘어휴나, 별소리를 다하네. 망할 놈의 죄는 무슨 죄야. 자네는 그저 자기 몸 안 돌보고 일복 터지게 고생한 죄 밖에 없제. 그것은 옆집에 사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고 훨훨 천상을 날아다니며 좀 즐기시게나. 부디 거기에 오르거든 아프지 말고 일 같은 건 하지도 말게 알았지? 편안하게 천상을 누리시게나~. 동서 잘 가시게나~’ 우리는 이승과 저승의 울타리에서 서로가 손을 흔들어주며, 이제사 정식으로 이별을 하게 되었다. 
  비몽사몽간에 감나무 잎새 하나 툭 떨어지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꿈이었다. 
반 정도 남아 있는 내 커피잔만 싸늘하게 식어 있었고, 작은 정원에는 고요와 적막함의 물결이 새떼처럼 몰려들었다. 나는 날마다 바라보던 동서네 유리창을 향하여 습관처럼 불렀다. ‘○○이 엄마~ 커피 한잔 할래?’ 대답 대신에 소란스럽게 지절대는 텃새들을 향해 푸념을 터뜨려 본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니러 우러라 새여. 너보다 시름한 나도 자고니러 우니노라. 우와~ 세월 한번 빠르게 지나갔으매 인생 칠십이 가히 무심하도다. 인생 팔십이면 누구나 천심이 될 게 뻔한 이치로구나. 구십 백은 덤으로 산다는 게 맞는 말이제~  새야!’  
  ‘독자 여러분, 그렇습니다. 흐르는 저 구름은 우리네 세월 같고, 불어오는 이 바람은 이내 심사와 같고, 지금 내 모습은 저무는 해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연중 팔랑댄다면, 우리는 꽃구경을 가고 싶을까요? 사람이 죽지도 않고 세상 구석구석 넘쳐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생지옥이 아닐까요? 그러하니 저도 오늘의 이별을 애석하게만 여기지는 않겠습니다.’ 늘상 중얼대던 3가지 문귀가 참 진리인 것만 같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디엠(carpe diem)현실에 충실하라! 아모르파티(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아니다. 이제는 죽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만 같다. 
 이 세상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문턱을 기다리며 말이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이루어진 산 자와 죽은 자의 타임머신을 남기려고 벌떡 일어섰다. 제목도 기발하게 퍼뜩 떠오른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