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풍취리 마루뜰 반장님 박 인 원 씨

『주민의 손과 발이 되어…』 주민·행정기관의 가교역할 37년

1991-01-25     보은신문
정부가 어떤 사업을 시행하고자 할 때 수혜자인 주민들에게 그 사업내용이 적용되기까지 업무의 최후 전달자로서 분주하게 뛰어야 하는 반장(班長). 주민과 행정기관과의 적절한 가교역할을 해내야 하는, 더구나 무보수로 주민들의 발이 되고 손이 되어 봉사해야 하는 반장역할을 1,2년도 아니고 몇십년을 계속 맡아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박인원씨(67. 보은 풍취)가 반장직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사변의 화재로 집을 잃고 외가가 있는 보은읍 풍취리에 화서 단칸방에 얻어 살림을 시작하고 몇 년 뒤인 1955년부터 땅 한 평 없이 낯선 보은에 살면서도 낙천적이고 무던한 성격으로 이웃주민들과 잘 어울리고 외지인이 아닌 보은인으로서 살며 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자 반장으로 추대되어 당시 보은면장이었던 임진용씨가 임명한 것이다.

제1공화국부터 6공화국인 지금까지 37년동안 풍취리 3반인 마루뜰의 반장으로 살아와 그가 알고 있는 현대사를 모두 엮으면 한 권의 책이 되어도 족할만큼 유일무이한 존재인 것이다. 전쟁을 치르고 난 후의 경제적인 궁핍과 사회적인 혼란기 속에서 반장이란 직책은 세금고지서나 돌리면 되는 지금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버거운 것이었다.

비료배급, 소금배급 등 부족한 것을 무리없이 할당해야 했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집을 일일이 방문해 의사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저녁때는 다리가 퉁퉁 붓고 몸은 천근이 될 정도로 무거웠지만 하는 날까지는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직무에 임했다고.

또한 박인원씨는 절미저축, 새마을운동, 퇴비증산 등 주민들을 독려하며 업무를 추진했고 73년에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벼베기와 논매기 등 공동작업으로 기금을 모아 땅 2백19평을 매입하여 마을기금을 마련했고 85년에는 마을회관 부지 1백평을 매입하여 노인정과 회의실이 있는 회관을 반듯하게 짓는데 공헌, 헌신적으로 마을 일을 추진해 도지사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내일 모레면 나이 칠십인데 반장을 계속 맡아 보기도 민망해 젊은 사람한테 물려주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이 좀더 하라고 권유하고 있고 또 자식들도 힘이 들지 않으면 근력이 다할 때까지 운동삼아 계속하라고 권유한다"고 말하는 박인원씨는 박장직은 오늘 내놓아도 좋지만 마을 길 등기내는 일과 하수도 정비 후 안길 포장 등 마을 주민의 숙원사업을 자기손으로 하루속히 해결되도록 하고자 오늘도 읍사무소며 군청, 등기소 등을 찾아 뛰고 있다.

몸이 불편해 힘든 노동을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채소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간 아내에게 항상 고맙고, 또한 속썩이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한 3남3녀의 자식들이 무척 대견스럽다는 풍취리 3반 마루뜰의 할아버지 반장 박인원씨 그는 지금도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봉사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금주에 만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