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

2025-04-03     최재철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장)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한강, 「채식주의자」) ‘소리 지르고 싶다. 튀어 오르고 싶다. 꿈틀거리고, 퍼덕이고 싶다.’(「바람이 분다, 가라」)
  살아가면서 이렇게 뭔가 간절히 외치고 싶고, 꿈틀거리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은가. 벽과 맞닥뜨린 자신이나 가족의 일로, 또는 현재와 같이 나라가 혼란한 이 시대의 안정을 갈망하며 절규하고픈 심정을 갖게 된다.
  ‘성스러움이란 뭘까, 가끔 생각해.’… ‘너덜너덜 찢어진 이 삶 가운데서/ 치욕은 너덜너덜하다./ 그 너덜너덜한 것의 밑바닥을 들여다본다./ 부릅뜬 눈이 감기지 않는다.’… ‘시간이 무한히 느려지는 이런 밤에, 기억들은 스스로 살아나 움직인다.’… ‘인간은 거대한 고통 속에 있네.’… ‘이런 이야기를 넌 이해하지 못하지./ 나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의 이야기를.’(「바람이…」)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으로 평생 고통을 끌어안고 살다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진혼하는 작품이다. 꿈을 통해 애도의 정을 드러낸다. 그 애절한 마음을, ‘작별을 고하지 않고, 작별하지 않은 상태’라고 표현한다.
  「소년이 온다」는 하나의 사건(5.18)을 ‘다초점 렌즈’로 보듯 여러 명의 화자가 시점을 달리해서 증언한다. 한을 품고 죽은 영혼도 2인칭 시점으로 등장시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게 한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굿의 초혼제 형식 같기도 하고, 아쿠타가와의 근대 단편소설 「덤불 속」을 연상하게 하는 기술 방식이기도 하다. 노벨문학상위원회의 안데르스 올손 위원장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 「안티고네」를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다중 시각과 과거-현재가 교차되고, 꿈(악몽) 등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장치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도 한다. 계엄군에게 고문당하는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 이라고 평가했다. 전통적 가부장제 가족·사회 속에서 횡행하던 폭력을 묘사하고, 조직 집단·국가의 무력에 의한 폭력을 취재하여 치밀하게 표현한다. 남북 분단 이데올로기 사상의 대립 갈등이나 민주화 과정 중 결국 군부독재의 종식으로 이어지는 무자비한 폭력과 대비하여, 한국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도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온 민초들을 서사한 점이 호평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강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비’와 눈보라,'어둠'의 표현은 작가의 성향과 현실이 반영된 자연스런 결과라고 본다. 우리 인생에 희로애락은 늘 함께 있는 것이며 맑은 날과 비오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소년이…」의 마지막엔,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꽃 핀 쪽으로.’ 가라며 맺는다.
  한강이 수상하기까지 세계 28개 언어권에 작품이 76회 번역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川端)와 오에(大江)의 작품 번역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는데, 두 작가 비슷하게 수상할 때까지 대개 30여년간 20여개 언어권에 각각 130여회 번역이 출판되었다. 번역 기간이나 번역량으로 볼 때 한강의 수상은 빠른 편이다. 소통 매체의 다변화와 전파 속도, K컬쳐의 세계화에 따라 문학 번역에도 주목을 받은 결과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시기(10월 둘째 목요일)가 다가오면, 언론사 두어 군데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일본의 유행작가 하루키(春樹)가 수상할 경우에 대비하여 사전 인터뷰 요청이다. 이번에는 황석영과 한강을 거론하며 우리나라 작가가 수상하면 좋겠다는 기대감을 표했었다. 
  한국 작가 첫 수상이며 아시아에서는 5번째, 아시아 여성작가로서는 최초 수상이다. 한강은 <수상 연설>(스톡홀름, ’24.12.10)에서,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고, ‘문학은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우리 문학을 세계에서 인정했다는 점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글 창제 이후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하고 국격을 높인 가장 큰 경사다. (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