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민족의 얼 

2025-03-13     오계자 (소설가)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수화기에서 절규 같은 히틀러의 목소리가 극장 안을 휘젓는 장면이 오래 전이었지만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다. 그날 비로소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문화재든 예술이든 관심 줄 틈도 없이 살아 온 칠팔십 대 서민세대들은 가끔 살아온 것이 아니라 살려진 느낌에 자신의 무능을 비난하며 한숨 짓는다. 그 와중에 어느 날 문득 ‘지금부터라도!’ 가슴을 활짝 열어준 생각이 떠오르자 바깥세상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한심한 자신이 보였다. 청맹과니였다. 
이런 저런 책을 사들이며 독서를 하고 영화를 보고 공부하며 배움을 시작했다.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영화를 감상하면서 세계적인 주요 문화재며 예술품과 예술인들이 히틀러의 명을 불복한 콜티츠 장군의 순간 변심에 의해 보존되어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찔했다. 에펠탑이며 루브르 박물관, 셀 수 없이 많은 문화재와 예술작품들, 미라보 다리와 세느강을 걸치고 있는 모든 다리들 까지 히틀러의 명에 의해 폭파 준비가 완료 되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에 성공했으니 급박한 히틀러는 곱게 돌려주기 싫어서 파리 폭파를 콜티즈 장군에게 명했다. 콜티츠의 명만 기다리든 폭발물 설치한 이들은 뜻밖이지만 명에 따라 폭파를 거두고 진격 방향을 바꿨다. 시민과 문화재 그리고 세계적 예술인과 작품이 한 사람의 변심에 의해 살아났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소름 돋는 전율이다. 
20여 년 전 충북대 박물관대학에서 공군사관학교 박물관 답사를 했을 때. 김영환 장군의 사진이 평화롭게 미소를 주셨다. 900여 명의 공비가 숨어 활동 중이라서 해인사 폭파를 명령받고 출동했던 분이란다. 10전투 비행 편대장 김영환 대령이 해인사 하늘에서 폭탄 투하를 하려는 순간에 아차, 단순히 하나의 사찰이 아니라 팔만대장경이라는 우리 민족의 얼이 계신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편대원들에게 해인사 투하금지령을 내리고 능선을 넘어 남로당의 보급저장소만 폭파하고 하고 돌아왔다.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군인에게는 살인죄 보다 더 무거운 죄가 명령불복종이라는데 당연히 문초와 재판 등 처벌은 각오 했을 터이다. 당시 작전권을 가진 미국 고문관의 질문은 “국가보다 한낱 사찰이 더 중요하던가?” 김 대령의 답은 “아닙니다. 900여명의 공비보다 우리 민족의 문화재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고문관 조차도 “귀하와 같은 장군을 둔 건 코리아의 행운입니다.”라고 칭찬을 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영환 장군도 이순신 장군 못지않은 영웅이라 생각했다. 
이 대장경판을 일본에서 엄청나게 탐을 내고 있었다는 조선시대 기록도 있다. 일본은 조선 시대에 이런 저런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대장경판을 청을 했단다. 이 보물의 소중함을 세종 임금조차도 모르고 자칫 일본으로 넘어갈 뻔 했던 기록이 있다.   
임금께서, 대장경판은 무용지물인데 이웃나라에서 저렇게 까지 청구하니, 이를 주려고 하매 대신들이 논의하여 말하기를, "경판은 비록 아낄 물건이 아니오나, ‘왜’가 청구하는 것을 일일이 좇다가 뒷날 줄 수 없는 물건을 청구하는 것이 있게 된다면, 어쩌시렵니까? 이는 먼 앞날을 염려하는 것이 되지 못하옵니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임금이 왜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고 답한 것이란다. 
이 기록은 문화재의 소중함을 남녀노소 모든 국민이 깨우쳐 알아야 보존도 가능함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나라의 왕이 대장경판을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을 때 가정집에서 도자기 그릇을 덜그럭 거리며 설거지 하는 모양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는 뒷담이 있다. 귀한 물건도 그 귀함을 모르는 자의 손에 가면 훼손될 우려가 있고 존재가치까지 떨어진다. 
만일 김영환 대령께서 대장경판과 해인사에 소장된 보물들의 소중함을 몰랐다면 지금 대장경판은 재가 되어 우주허공을 배회할 것이다. 모든 문화재는 민족의 얼이 서려있다. 김영환 대령은 단순히 사찰을 보호한 것이라 기 보다 우리 민족의 얼을 존중하고 민족의 얼을 보존한 것이다.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의 소중함을 어릴 적부터 인식시켜서 온 국민이 깨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