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 새로운 예술공간 ‘위플어스’ 탄생
삶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공간 새로운 명소
긴 세월 동안 방치되어 어둡고 흉물스럽던 보은읍의 한 주택에 아름다운 햇살이 들고 있다. 이곳에 아름답고 밝은 예술을 함께 꿈꾸는 김현승·안민영·강천식·오정석 작가가 삶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공간 ‘위플어스’의 문을 열었다.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오래되어 녹슨 대문이 슬며시 열려있고, 오르는 계단은 오래된 콘크리트가 빗살 못이겨 울퉁불퉁, 정리가 되지 않은 전시실에는 아직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어 노트북을 벽돌과 블록으로 쌓은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하지만, 한 점 한 점의 작품을 살펴보면 감동이 절로 인다.
보은에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아니면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아름다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보은군에 새로운 예술공간 ‘위플어스’가 탄생했다.
보은에서 1년간 살았던 것이 인연이 된 김현승(44세)가 예술의 혼을 함께하는 안민영(43), 오정석(54), 강천식(53) 작가와 함께 보은읍 삼산리의 한 모퉁이에 지난 12월 20일 복합예술공간 ‘위플어스WEPLARTH (WE PLay ART with EARTH +)’ 문을 열고 집들이로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은읍의 산호장 뒷골목에 자리한 이곳은 김현승 작가가 어린 시절 당시 부친을 따라 보은에 와 1년간 삼산초를 다니고 졸업한 후, 지금까지 방치되어 있던 곳으로 김 작가의 어릴적 추억이 아련히 담겨있다.
김현승 작가는 “이곳에 조성한 위플어스는 ‘삶의 모든 것들이 예술이 되는 공간’이라는 콘셉으로 운영되는 예술공간”이라며 “고정관념이나 상식 속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숨겨진 가치를 주목하고, 예술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계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도시의 경쟁에 밀리거나 실패해서 돌아오는 고향이 아닌,도시가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하는 가능성의 장소(로컬 local)로 지역을 인식한다.
주변성, 소수성, 다양성의 공간으로서 로컬의 힘이 확장될 수 있다면, 지역은 다양한 문화와 가치가 공존하는 대안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위플어스’는 ‘지역’ 보은이 가진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는 공간을 지향한다.
앞서 언급했듯 ‘위플어스’가 들어서 운영될 공간은 ‘위플어스’ 운영자 중 한 명인 김현승 작가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11살)을 잠시(1년) 보냈던 집이다.
보은을 떠난 김현승 작가는 다양한 지역으로 이주하며 성장했고, 집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흉물이 되어있었다.
지난 2023년 12월 보은으로 돌아온 그는 지역에서의 새로운 삶을 구상하며 동료들과 함께 1년여를 빈집을 고쳐왔다.
‘위플어스’는 로컬의 삶과 예술을 교차시키는 작품으로 기능한다. 오래된 주택에 더해진 예술가들의 작업, 생태×보은×다국적 문화가 콜라보레이션된 문화예술활동, 예술과 기술이 만나 작동되는 창작자들의 오리지널 작품이 더해져 동시대 시각 예술이 전달 된다.
위플어스 개관전에서는 이주(2weeks) 간 유목민의 나라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한 경험과 4명의 참여 작가들의(강천식·김현승·안민영·오정석) 개인적 경험이 연결되어 소개된다.
강천식 작가의 작품은 키르기스스탄의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잇는다. 전시실 전면을 가득 채운 <이주의 기억>은 키르기스스탄의 시골 마을과 그의 생활공간인 고부면을 연결하고 있다. 정주 공간(고부면)과 이주 공간(키르기스스탄)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그의 작업은 정주와 이주에서 느끼는 행복의 본질은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유목적 변화를 긍정하는 김현승 작가는 <설산의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을 주제로 이주한 사람, 이주로부터 온 사물, 이주지역의 풍경을 작품에 담았다.
키르기스스탄으로 이주한 사람의 인터뷰가 담긴 미디어 작업, ‘위플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담긴 영상과 키르기스스탄과 보은의 사물이 함께 만들어내는 오브제, 이주의 풍경을 작가의 드로잉으로 재구성한 네 컷 사진기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문화적 다양성을 지향하는 안민영 작가는 음식문화를 매개로 키르기스스탄과 보은을 연결한다. 안민영 작가의 <교차되는 부엌>에서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동질화 되고 있는 음식문화에 질문을 던지면서 다양한 정체성이 중층적으로 쌓여있었던 가정식에 주목한다. 자신의 어린시절과 키르기스스탄의 가정식을 소개하는 그의 작업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간직한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의미화하고 있다.
오정석 작가의 <이주된 역사(站史), 이주간의 Fantasy(幻他地)>는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노마드를 상징하는 여행 가방과 벼룩시장의 오브제들을 통해 시대의 편린들을 보여주는 한편, 천산산맥과 호수 바다 이식쿨의 경이로운 풍경을 담은 드로잉은 실제와 환상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김현승·안민영·강천식·오정석 ‘위플어스’ 운영팀은 “이번 집들이 전시를 통해 ‘좋은 삶은 무엇이며, 삶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질문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한국의 작은 도시 보은에서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 키르기스스탄을 잇는 이번 전시가 흥미롭고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보은군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의 말을 전했다.
지난 12월 20일부터 시작된 전시회는 지난 30일 막을 내렸으나 내년부터는 소소하면서도 더욱 흥미로운 문화예술 활동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