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갱이속 춤추는 벌새
보은이 고향인 장은수 시인이 시집 '핸드폰 속에 거미가 산다'를 발간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송희 시인은 ‘부저갱이 속에 춤추는 벌새’를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시평(詩評)했다.
장은수 시인의 시에는 소멸하거나 잊혀가는 존재들에 관한 애틋하고 애처로운 시선이 머물러 있다.
그것은 단순히 '슬픔'이라는 감정을 넘어 내면화의 과정 혹은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소멸하거나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환기한다.”
소멸의 죽음은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만 닥치는 숙명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게 될 때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장은수 시인의 시집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가을과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과 햐잘무렵 혹은 밤의 이미지는 위채로운 길을걷는 이들의 발과 주름진 구체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가을은 곡식이나 열매를 거둬들이는 계절이면서 한편으로는 잎이 지는 상실과 소멸의 계절이라는 점에서 해 질 무렵의 풍경과 닮았다.
또한, 겨울은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양분을 저장하며 부활과 재생을 준비하는 계절이지만, 춥고 어두운 속성이 있어 밤의 이미지와 닮았다.
장은수 시인은 우리곁에 쉽게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을 주체의 곁에 앉히며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비춰보개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다짐 혹은 당부를 이어 간다.
“식어가는 샘방마다/ 왕소금 뿌려가며/ 거품 문 세상을 향해/ 파도 소리 되작이며/ 내 가슴 깊은 곳에/ 소금창고 짓고 싶다.”는 열망을 <소금인간>이라는 시를 통해 고백한다.
들고 나는 파도의 속성은 심장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온몸에 혈액을 돌게 허는 펌프질과 닮았다.
그렇다면 파도도 일종의 펌프질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생명이 살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펌프질'의 연료가 소금이다.
장은수 시인은 세상에 헌신 혹은 봉사하는 '소금인간' 같은 존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코시안(Kosian)들이 아버지의 나라에 정착해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이슬 사다리>에서 처럼 “낯선 땅 너덜겅에 촉을 틔운 홀씨 하나”를 품는 것도 우리의 역할임을 그는 안다.
“폭풍우 가로지르는 어둠의 귀퉁이에서/ 흐린 눈빛 담금질로 재촉하는 삶의 행로(뭍으로)”찾아가는 뱃사람들도 매일의 삶을 길어 올리는 우리의 이웃임을 기억한다.
새벽녘 집어등을 켜고 나간배가 뭍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풍경은 “고층 건물 허리춤에 대로 대롱 사는 사내(벌새, 벌새)”가 아파트 외벽을 도장(塗裝)하거나 청소하는 작업과 무었이 다를까.
“부서진 삶의 조각이 파일을 다독이며/ 눈사람 서 있듯이 곱은 손이 시려오면/ 하늘가 햇살 한 줌이 압축을 풀어준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이 시련을 더 견뎌낼 수 있다.”면서
장은수 시인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이 움트려는 초봄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장은수 시인의 시집은 평범한 듯 익숙한 우리의 일상과 풍경을 읽어내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 짧은 순간을 오래 응시하는 애잔한 눈빛으로 가득하다.